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선 Oct 20. 2023

우붓의 컬러들

망고스틴의 흰


  아침 8시 30분이면 숙소를 나와 15분쯤을 걸어 요가원에 갔다. 한국 같으면야 오전 수련에 맞춰 향과 음악을 준비하기 위해 내 요가원으로 나갈 시간이었다. 하지만 우붓에서 나는 누군가의 평온을 위해서 무얼 준비하는 사람이 아닌, 그냥 어슬렁거려도 되는 여행자였다. 일체 별다른 일정을  잡아놓지 않았기에 수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또한 마냥 느긋했다.


  요가원과 숙소 사이에는 '코코 슈퍼'라는 그 이름도 코코넛스러운 대형 마트가 있었다. 먹을거리며 각종 열대 과일에 소소한 장식품까지 잘 구비가 되어있어 쇼핑하기가 편했다. 게다가 나는 열대 과일에 질릴 일이 없는 사람 아닌가. 싱싱한 '망고스틴'과 비건 빵 한 덩이를 사는 일이 일상이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탁한 붉은빛의 투박해 보이는 망고스틴은 반전이 있는 과일이다. 귤껍질보다는 조금 더 단단한 껍질을 벗기면 크림 빛 띈 마늘 모양의 과육이 나오는데 향긋하고도 부드럽다. 한국에 비해 가격이 어찌나 착하던지(?) 다람쥐처럼 야금야금 잘도 먹었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코코슈퍼의 망고스틴 


 코코넛 워터의 흰

  

   'Yoga Barn 요가 스튜디오'에서 운영하는 비건 카페 한쪽에 수북이 쌓여있던 빈 코코넛 . 요가 수련을 마친 후 코코넛 한 통씩을 앞에 놓고 있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느긋해지는 풍경이었다. 우붓 시내의 어느 카페에서건 쉽게 주문해 먹을 수 있는 천연음료다. 나 역시 수련을 마치고 나면 코코넛 한 통을 주문해 마시곤 했다.


  아름답다고 소문난 곳일수록 쓰레기로 몸살을 앓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 늘어나는 관광객들과 함께 늘어나는 쓰레기를 줄이려는 노력들이 우붓의 곳곳에서 느껴졌다. 오래전인데도 플라스틱 빨대가 아닌 식물성 빨대를 썼던 우붓이었다. 

우붓에서 유명한 비건 식당 카페 우붓, 주로 요가 수련을 마친 백인들이 많이 와서 진을 치고 있다. 물론 나도 혼자 가서 먹고 왔다.
백인들의 흰


  날마다 코코 슈퍼에 들러 저렴한 가격에 망고스틴을 먹어대는 것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우붓에 와서 세상의 백인들을 다 만나고 가는 것처럼 우붓 곳곳에 그들이 있었다. 요가 스튜디오에서도 그렇고, 식당가에서도 그랬다. 우붓의 유명 요가원의 요가 티쳐들도 주로 백인들이었고, 오너도 미국인이라 들었다.


  이와 대비를 이루어 아침 8시 무렵 길에서 만나는 우붓 현지인들은 초콜릿 색 피부의 체구가 작은 사람들이었다. 요가 스튜디오 증축 공사 현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노동자들도 당연히 현지인들이었다.


  백인과 그들 사이, 그들보다 조금 흰 나 또한 망고스틴을 까먹듯 발리 우붓을 너무 쉽게 누리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막연한 가책이 느껴졌지만 그래봐도 별 수 없는 관광객일 뿐. 숙소에 비치된 여러 장의 흰색 수건을 다 사용하지 않는다든가 정도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두운 우붓 거리를 떠도는 굶주린 개와 마주치는 일만큼이나 때로 그 흰 빛은 불편한 진실이었다.        


자세히 보면 오리들이 보인다.
유명한 크리스피 덕 식당
흰 오리를 몰고 가는 남자  


  이른 아침이면 밀짚모자를 쓴 마른 남자가 흰 오리들을 몰고 멀리 보이는 논길로 나갔다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근처에 있는 꽤 유명한 오리요리 전문점에서 논에 풀어 기르는 사육 오리들이라는 걸 후에 알게 되었다. ‘크리스피 덕’이라는 요리로 유명한 숙소 근처 유명식당에서 키우는 오리들이란다. 아마도 좁은 우리에서 사육하는 것이 아닌 야생에서 운동도 시켜가며 키워 잡는 게 크리스피 덕의 마케팅 포인트로 짐작이 된다.


  우붓엔 유명 비건 Vegan식당들 못지않게 다양한 종류의 식당들이 있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초록 논 사잇길 흰 오리를 몰고 가는 밀짚모자를 쓴 사람의 풍경은 짐짓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논 오리들 산책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건 ‘크리스피 덕’이라는 메뉴를 위한 한 과정일 것이다.  ‘크리스피 덕’ 전문 식당의 메인 재료가 될 오리들의 흰 실루엣들은 곧 죽을 줄도 모르는 채 재잘대는 어린애들처럼 ‘꽥 꽥’ 아침의 고요함을 깨트리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속으로 외쳤다.

"이봐, 너는 지금 여기에 즐기러 온 거야, 환대받으러 온 거라고!"     

    




이전 06화 바나나 잎의 쓸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