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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Nov 02. 2023

짙은

고양이와 도마뱀 사이

   고양이


  익숙한 울음소리에 잠 깬 새벽, 창밖을 보니 안개가 짙었다. '우붓까지 와서도 고양이 울음소리에 잠을 깨다니, 중간에 깨지 않고 잠 좀 자고 싶다'는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반면 '누가 뭐래도 나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고양이 둘의 집사이자 거리의 길 친구들 밥을 주는 캣맘이 된 거 아니냐고?' 나도 모르게 문을 열고 울음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높은 담장 위에 고양이가 웅크리고 앉아있다.

 

  "너는 왜 거기 올라가 우는 거니?" 작은 소리로 물어보았다. 당연히 돌아오는 건 무시와 관심 그 중간쯤이었다. 결국엔 캣맘의 본능이 살아나기라도 한 듯 한국서 가져간 무염 통밀 과자를 잘게 잘라서 물과 함께 들고나갔다. 한국식 두부곽이 있을 리가 없는 우붓의 새벽, 어떻게든 고양이의 식사를 마련해 주고 나서야 시끄럽던 시간을 가라앉힌다.


  하지만 고양이는 결코 자신이 왜 울었는지 말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배가 고파서 운 것인지, 만약 랬다면 먹이가 마음에 들어 할 것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때론 이런 행위들이 나를 위해서인지, 고양이를 위해서인지 혼동스럽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바깥이 잠잠해졌다. 고양이는 그 자리를 떠나갔다. 나중에 보니 내가 준 밥에는 입을 대다 만 것처럼 보였다.



PM 9시


  해가 지고 지고 난 직후나, 자정이 아닌 ‘밤 9시’라는 시간은 때론 개성이 없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시간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도,  끝내고 잠자리에 들거나 정리하기에도 적당치가 않다. 그렇다고 사색에 잠기기에는 더더욱 애매한 시간이라는 생각. 그리고 밤 9시는  우붓의 여행자로 살던 내가 정한 통행금지시간이기도 했다.


  적어도 그 시간 안에는 호텔 방 안으로 돌아와 있으려 했다. 밖에서 보면 나는 영락없이 용기 있는 나 홀로 여행자임에 틀림없다. 가정도 일도 다 팽개치고 어느 날 훌쩍 혼자 떠나는 여행을 감행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철두철미한 겁쟁이, 아니 그냥 안전에 철저한 편이라고 해두자. 그리하여 밤 9시는 스스로에게 내린  금족령의 시간이었다. 뭐랄까. 남국의 밤 9시는 시공간을 잊게 해 줄 만큼 짙은 어둠 속이었다.  창 밖 어둠의 저 끝에 펼쳐진 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울음소리는 신기할 정도로 낯익게 들렸다. 어릴 때 살았던 시골동네 생각도 났다.


  그 시간이 오면 나는 '차단' 만을 생각하는 사람처럼 창이란 창에 드리워진 커튼들을 꼼꼼히 풀어내렸다. 창밖의 어둠과 창 안의 불빛 사이를  완전히 가렸다. 불빛이 새어나가기라도 하는 날엔 지구의 종말이라도 온다는 듯, 밤 9시의 공간은 완전한 차단속이었다.  그리고 그 시공간의 유일한 방문객이 있었으니 천장 위의 산책자인 작은 도마뱀이 그였다. 마치 그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 밤 9시만 되면 홀연히 나타나 힐끗 천장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유유히 제 갈 길로 사라져 가곤 했다.  



  고양이도, 도마뱀도, 우붓 거리의 떠돌이 개들도 하나같이 떠나는데 익숙한 존재들이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듯, 밤 9시의 공간도, 지고지순했던 너의 사랑도, 우붓에서의 이 날들도 그렇게 다 흘러갔고, 흘러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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