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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Feb 13. 2024

발리에서 생길 일

청천벽력을 경험하다

  단조롭다 느끼는 삶이라 할지라도 날마다의 삶은 1분 1초가 같을 리가 없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카드를 태그 하고, 전철역 계단을 내려가는 삶이라도 말이다. 문득 그 길을 떠올리다 보면 수많은 스침 속에서 매 순간의 감정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수련'이라 이름 지을 만큼의  움직임에 해당되는 '요가 수련 시간'에도 그것은 다르지가 않다. 가부좌로 앉아서 현재 자신의 호흡만을 인식하는 일이 쉽지 않은 까닭은, 금세 치고 올라오는 생각 들 때문이다. 심지어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과거의 한 때까지 떠오르는 것을 보며 든 생각이다. 


  나는 결코 약속 시간을 두고 여유를 부리는 인간형이 아니다. 대범보다는 소심함 쪽에 속하는 인간이 타고 갈 비행기를 놓치게 되다니,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불과 공항 도착 1시간, 아니 30분 전에도 나의 삶은 평화로웠었다. 


  그렇다. 나는 발리에서 비행기를 놓쳤다. 착각은 이런 식이었다. 그러니까 오늘 2월 13일 13시 45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나는 12일 밤 10시에 도착한 셈이었다. 방금 전 폼나는 이별의식을 마치고 공항에 도착한 직후였다. 내 계산법에 의하면 자정 넘은 시간의 한국 인천행 비행기를 타려면 아직도 3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동물보호소에 기증한 50불 이외에 딱 커피 한 잔 마실 정도의 인도네시아 화폐도 남아있었다. 


  그날 그 시간 나는 '청천벽력'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경험하게 되었다. 프런트에 다가가 인터넷으로 예약한 티켓을 교환하려는 순간 직원의 말은 분명 '네가 탈 비행기는 이미 하루 전에 떠났다는 거였다. 네가 이 비행기를 타려면 어제 나왔어야 한다'는 거였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뜨갈사리에서의 마지막 날을 즐겼던 것이었다. 사소한 순간들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며 그 시간들 속에서 충분히 평화로웠다. 


  평화가 깨지는 순간은 참담했으니, 내가 진짜 이곳에 살고 싶을 정도로 좋아했었나 싶을 정도로 떠나고 싶었다. 미치도록 인천공항행 비행기를 타고 싶었다. 감정적 오류가 날 만큼 착각에 빠진 한 인간은 품위를 잃고 말았다. 그것은 엄연한 나의 착각이었건만 나는 잠시, 아니 한 동안 흥분해서 날뛰고 말았던 것이다.


  '너희들 공항 직원들은 왜 이렇게 착각에 빠질만한 시간대라는 걸 사전에 안내하지 않았냐?'를 필두로 '너희 지금 나 무시하는 거냐?' 사태를 정확히 인지하고 각성하기까지의 길지 않은 시간 조용한 품위가 있을 줄 알았던 나의 성질은 발악을 한 셈이었다. 급기야 인천공항의 직원과 통화까지 하고 나서야 상황이 정리가 되었다. 발리에서의 하루가 더 생긴 것이었다. 상황이 정리되고 나자 물밀듯이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나는 그제야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겼고, 그 좋았던 '뜨갈사리'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결국 공항 근처의 대한항공 직원들이 머무는 전용 호텔을 안내받고 거기서 하루를 더 묵게 되었다. 우붓과 달리 도심 속의 호텔은 정말이지 그냥 1인용 룸일 뿐이었다. 우울했다. 빨리 서울로 아니 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동이 트기까지는 아직도 24시간이나 남아있었다. 그렇게 더 있고 싶다고 했더니 정말이지 하루를 더 있게 된 것이다. '내일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더는 할 수가 없었다. 나의 멘털은 그 정도의 일로 지쳐있었다. 그러다 곧 나는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타라'라도 된 듯 결코 그리 되지 못할 다짐을 하고 있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니, 오늘은 다 잊고 푹 쉬기를 바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은 길었고, 복도를 지나쳐가는 항공기 직원들의 발걸음 소리도 거슬렸다. 하지만 일어날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일어날 테니까, 오늘 내가 비행기를 놓친 까닭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생각이 또렷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막막함과 설렘이 교차하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커피 한 잔 값이 모자라 결국 한 잔도 마시지 못하고 떠나온 덴파사르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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