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제리 Orangerie에서 '모네의 수련'을
이곳은 원래 온실이었다. 둥근 파노라마 형태로 걸려있던 모네의 수련은 그림이 아닌 실체임이 분명해 보였다. 석양빛이 어른거리는 수면 위로 스치는 바람결과 늘어진 버드나무 사이로 어둠이 자리 잡는 순간까지 그것은 실제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비행기 시간에 맞춰 일어서야 하는 여행자의 신분이라는 것도 잊은 채 감상용 의자에 오래오래 앉아있었다. 이 순간 차오르는 경외를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나는 외로운 혼자 여행자였지만 적어도 '모네의 수련'을 감상하기에 이만큼 완벽한 자세와 분위기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를 떠나야 하는, 당일에서야 나는 '오랑제리'에 입장할 수 있었다. '오르세'와 '루브르'와는 다른 결로서, 내가 좋아할 거라는 지인의 추천을 받고 무작정 갔던 날이 휴관이어서 발길을 돌려야 했던 쓰린 기억이 있다. 향이 날아가버린 빈 향수병처럼 비어있던 기억의 방 한편에서 '오랑제리'라는 이름의 오렌지 향기를 불러와본다.
세계인들이 좋아하는 모네의 수련을 나 역시 좋아했기에 수련 시리즈 여덟 점이 가장 자연스럽게 전시되어 있다는 이곳에 기어이 와보고 싶었다. 이 미술관의 건물은 본래 1852년 튈르리 정원(Jardin des Tuileries) 안에 지은 오렌지 나무 온실(Orangerie)이었다는 점에도 호기심이 갔다. 참고로 이 건축의 설계는 피흐맹 부르주아(Firmin Bourgeois)가 하였고, 후에 루이 비스콘티(Louis Visconti)가 완공했다고 한다. 1922년 모네가 자신의 수련 그림을 이곳에 기증하기로 계약하면서 미술관은 모네의 거대한 작품을 전시하기 위한 공간 설계에 들어간다. 이후에도 몇 차례의 리노베이션을 거쳐 2006년에 재개관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나는 그때 ‘수련’ 연작의 배경이 된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에 까지 다녀온 상태였다. 그러나 오랑주리 지하 관람실에서 본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오귀스트 르누아르, 폴 세잔, 앙리 루소,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그림들을 볼 때는 꿈을 꾸는 듯한 기분에 사로 잡혀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둥근 벽에 스며들 듯 존재 그 자체로 거대한 수면에 피어있던 수련 연작 시리즈 그림이었다. 종일 그렇게 앉아 모네의 수련 속에 있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게는 여행을 좋아하면서도, 좋아하지 않는 양가감정이 있다. 이를테면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에게서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하고 끌려와 있는 순하고 귀한 영혼이 느껴졌다. 약소국가들의 보물들을 쓸어 담아다 놓은 제국주의의 폭력성에 몸서리가 쳐져 편한 감상자가 되지 못했다. 유명한 미술관일수록 콧대가 높아 살아생전 그림 한 점 팔지를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다 생을 마친 '고흐'가 떠오를 땐 쓸쓸한 기분은 더 짙어지곤 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이상할게 분명한 여행기의 쓸모에 생각이 머문다. 여행자들에게 어떤 정보도 주지 못할 게 뻔한 이 여행기는 향이 날아가버린 빈 향수병처럼 덤덤하기만 하다. 여행을 하고 싶어서, 혹은 떠나고 싶은데 떠나지 못해서 답답해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 들어가는 나의 고양이님을 잘 돌보며 소소하게 흘러가는 일상을 누리고 사는 나날에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 파리여행의 기회가 생긴 다면 '오랑주리 미술관' '모네의 수련' 앞에 꼭 다시 앉아보고 싶다. 시공이 사라지는 듯한 그 기분에 사로잡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