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 살아서, 특별히 물가가 싼 족자카르타(Yogyakarta)에 살아서 좋은 점 몇 가지 중 하나는 한국의 지방 원룸 월세 가격으로 땅이 넓은 2층짜리 집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자카르타 근교인 경우엔 방 두 개짜리 아파트 월세도 한화 백만 원은 족히 넘지만 주택의 렌트 가격은 그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아파트에 비해 주택이 가지는 다른 장점은 정원을 가꿀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겨울과 봄은 이곳의 우기인데, 우기에는 모든 식물이 정말로 잘 자란다. 그러다 보니 가벼운 마음으로 여러 열대식물들을 정원에 심을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망고나 바나나, 파파야 나무 등을 심어 열매를 따 먹을 수도 있다. 풀이 많이 자랐을 때는 풀을 깎으러 다니는 뚜깡(기능공)들에게 부탁을 하면 된다. 지금 집은 뒷마당이 넓은 관계로 한번 풀을 깎을 때마다 한국돈 만원 정도를 내는데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깎으면 충분하다. 풀이 너무 길게 자라면 뱀이 나오기도 하는데 혹시 집에 뱀이라도 들어오면 멘털이 나갈 수 있으니 풀은 너무 길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좋다.
한국으로 떠나시던 지인께서 키우던 화초 몇 개를 주고 가셨었는데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화초도 먼거리를 같이 이동했다. 우리 가족은 이삿짐을 미리 보내고 자카르타에 두 주 정도 머물다 왔기 때문에 먼저 보낸 화초 걱정을 했었는데, 새로운 집에 두 주 늦게 도착해보니 화초들이 거실에 놓여있었다. 우기였으니 밖에다 두기만 했으면됐었는데 집 안에 둔 관계로화초들이 비 한 방울 못 맞고 두 주를 버티고 말았다. 다행히도착하자마자 집 밖으로 화분들을 옮기니 잎들이 하루 만에 다시 푸르게 변했다. 열대지방의 생명력이 이렇게 무섭다. 이파리만 떼어서 땅에 심어두면 식물이 자란다. 망고를 먹고 씨를 땅에 던져둬도 3년이면 열매를 맺는 나무로자라는 곳이다. 그래서 아내는 늘, 이곳이야말로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하곤 한다.
하루는 장 보러 갔던 몰 중앙에 화초들을 판매하는 작은 페어가 열렸다. 아이들은 앙증맞은 화분들과 꽃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화로 몇백 원에서 몇만 원 정도 하는 여러 화초들을 둘러보다 문득 한국에서 홈가드닝이 유행이라 열대식물을 키우는 이들이 많고 가격도 비싸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찬찬히 가격표를 살펴봤다. 당연히 비싸진 않지만 마냥 싸지도 않다. 아마도 잘 키운 고급 화초들이었나 보다. 아이들이 선인장에 매료된 관계로 아이들 책상에 둘 작은 선인장 두 개를 사고 들어도 자꾸 까먹는 이름을 가진 작은 화초도 하나샀다.앙증맞은 화분들과 꼬마 삽도 같이 샀는데 그걸 가지고 딸아이와 함께 이름 모를화초를 뒷마당에 있던 빈 화분으로 옮겨 심었다. 한국이었으면 번거롭고 돈도 들어갈 취미였겠지만 여기선 일이만 원이면 누릴 수 있는 취미생활이다.
이곳에서 식물을 키우다 실패해본 적은 없다. 이번에도 그저 뒷마당에 화초를 심어두었다는 사실을 잊고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크게 잘 자라 있는 녀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생각해 보니한국에 있을 땐 겨울만 되면 죽는 화초들이 생겼었다. 뭘 대단히 소홀히 한 것도 아닌데도그랬다. 이곳에선 식물을 키우기 위해그렇게예민할필요가 없다. 우기엔 물을 줄 필요도거의 없고 날이 추워져 집안으로 화초를 옮길 필요도 전혀 없다. 햇빛 걱정도 당연히 없다. 그저 알아서 잘 자라는 아이들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이곳에 살면서 감사한 일이 한둘이 아니다. 불편한 걸 생각하다 보면 물론 끝도 없겠지만 좋은 면을 보다 보면 그 역시도 끝이 없다. 정신건강을 위해 그저 좋은 면을 보기로 결정하면 될 일이다. 화초를 키우기에 충분한 정원도 있고,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내리쬐는 햇빛으로 화초들은 알아서 잘 자라준다. 높게 자라는 풀은 적은 비용으로 깎아주는 뚜깡들이 있으니 화초의 안위를 위해 다른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조물주께서 허락하신 열대의 생명력에 대한 경탄만이 필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