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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Sep 30. 2021

인도네시아 루왁 커피(Kopi Luwak)

고급스러운 맛 뒤에 숨은, 그 씁쓸한 역사

사는 곳이 인도네시아이다 보니 커피에 관심이 많아졌다. 그리고 우연히도 업무와 봉사의 복합적인 이유로 커피를 로스팅할 일도 생기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루왁커피도 그렇게 가까워졌다.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가 자바섬에 커피를 들여와 플랜테이션에 성공한 이후 서방세계에 자바커피가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은 수마트라 북부의 아쩨(가요), 만델링, 린똥 지역 등의 커피와 슐라웨시 중부의 또라자 지역 커피, 그리고 발리의 낀따마니(블루문), NTT의 플로레스 등의 커피가 유명하다. 


여전히 스타벅스에서 마시는 아메리카노와 소울 커피라고 할 수 있는 맥심 모카골드를 사랑하지만 내가 마시는 커피의 대부분은 아체 지역의 가요 커피이다. 아체 지역의 한 커피농장에서 수확한 커피를 자카르타에 있는 한국인 도매상을 통해 들여온다. 일반적인 생두뿐 아니라 체리째 말린 후에 벗겨낸 허니커피, 그리고 그 유명한 루왁 커피도 함께 배송받는다. 


로스팅 실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상황상 루왁커피는 주로 내가 로스팅을 하게 된다. 생두를 열었을 때의 상태와 냄새가 다르고,  로스팅되는 동안의 향도 다르다. 커피가 볶아지며 터지는 파핑의 온도도 다르다. 기분 탓도 추가되겠지만 비싼 만큼의 값을 하는 것이다. 가끔은 루왁 커피를 볶은 후에 같이 봉사하는 분들과 앉아서 루왁 커피를 시음해 보기도 한다. 일반 커피를 같이 내려서 비교해가며 품평도 하고 언제 어디서 마셔본 커피가 좋았다든지 하는 각자의 기억들도 꺼내본다. 인도네시아에 와서 누릴 것은 커피밖에 없다는 생각들 때문인지 다들 커피엔 진심인 편이다.   


일반 커피와의 맛과 향 차이와 비교할 때 그 값의 차이는 훨씬 심한 편이다. 생두의 가격부터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차이가 난다. 사실 커피는 생두의 상태뿐 아니라, 로스팅(인도네시아어로는 상라이 혹은 바까르), 그라인딩(인도네시아어로는 길링), 드립, 그날의 날씨와 기분 등 여러 요소들로 인해 차이가 생긴다고 하는데 그 값의 차이만큼 커피 맛이 좋은 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렇게 마시고 싶어 하는 루왁을 쉽게 자주 마실 수 있는 것은 기분 좋은 혜택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루왁커피에는 사실 가슴 아픈 역사가 얽혀 있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사향고양이인 루왁의 배설물에서 골라낸 커피가 루왁커피이다. 루왁이 잘 익은 커피체리만 골라서 먹고 커피 열매가 고양이 뱃속에서 소화되면서 일어난 화학작용 때문에 훨씬 좋은 맛의 커피빈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 학설이다. 그러나 그 배경이 그렇게 기분 좋지는 않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인도네시아의 노동자들을 통해 커피를 생산할 때, 사실상 노예와도 같은 상태의 커피 노동자들에게 커피를 마시는 것이 허락되지는 않았다. 커피맛이 궁금했던 노동자들이 영역표시를 위해 일정한 장소에 배설하는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을 찾아 커피빈을 골라내서 마시기 시작한 것이 루왁커피의 원조이다. 이후 농장주들도 이를 알게 되었고 그들을 통해 유럽으로 수출되어 유명해졌으며 최근에는 영화로 인해 더욱 각광받게 된 것이다. 물론 우리 또한 그 유명세로 인해 루왁커피의 맛을 궁금해하고 찾아서 마시게 된 것이다. 


단순히 당시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의 아픈 역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늘날엔 동물학대가 또한 문제이다. 지금의 루왁 커피 생산량은 야생상태의 사향고양이를 통해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양이라고 한다. 오늘날의 방식은 사향고양이를 철장 안에 가두어두고 커피 열매를 준 다음 배출된 배설물 속에서 소화되지 않은 커피빈을 모아서 생산하는 것이다. 갇혀 있던 사향고양이는 몇 년 지나지 않아 생산력이 떨어지고 그렇게 다시 야생에 풀어지면 얼마 못 가 대부분 죽게 된다고 한다. 


발리에 방문했을 때 관광객을 위한 커피농장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역시나 철장 안에 사향고양이가 하나 갇혀 있었는데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정형행동이었을 것이다. 아이들과 여러 잔의 음료를 시음하고 제품 몇 개를 구입해서 나왔지만 썩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그곳을 다시 가보고 싶다고 한다. 아마도 관광 상품화된 농장의 정원에서 작은 잔에 담긴 여러 잔의 시음용 차를 마셨던 특별한 경험 때문이리라.  

  



사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많은 것들엔 그렇게 아픈 역사들이 있고, 부조리한 상황들이 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있고, 굳이 그런 일에 까지 스트레스받지 않으려고 애써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러한 부조리를 통해 많은 돈을 벌게 되는 이들도 있다. 여러 복잡한 상황 속에 있기 때문에 무엇이 옳다 그르다 말하기 쉬운 것은 아니지만 어떠한 것을 탐닉하고자 할 때, 그 역사와 배경을 알아보고 좀 더 나은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애쓰는 것이 좀 더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글을 쓰고 나니, 나 또한 루왁커피를 멀리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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