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ke Oct 04. 2021

몽골, 양고기의 추억

공유한다는 것

필리핀 고산 지대에 사는 원주민 마을에서 식사를 한 후에 며칠 동안 배탈로 인해 괴로웠던 경험이 있다. 캐나다의 원주민 마을에서도 고무장갑보다도 질길 것 같은 무스 고기를 그래이비 소스에 찍어 먹으며 턱이 빠질 것 같이 아팠던 기억 있다. 예의 바른 한국인이 음식을 거절하면 안 되지 하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지만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땐 염치 불고하고 음식을 거절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집이 아닌 곳에서 몸져누우면 정말로 큰 민폐이기 때문이다.


몽골의 울란바토르에서 한두 시간 올라가는 지역으로 아웃리치를 갔는데 이번엔 양고기였다. 마당에서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양을 한 마리 잡고 있었다. 그때 나는 양을 잡는 테이블 바로 옆에서 어슬렁거리는 중이었고, 순간적으로 잉여인력이 된 상태였기 때문에 양 잡는 바로 그곳에 나도 잡혀 있게 되었다. 이번엔 생식이다. 칼로 양의 비계 부분을 큼직하게 자르더니 먹어보라고 권했다. 30명 가까운 인원을 인솔하는 중이었고 내가 잘못되면 여러 가지가 불편해질 상황이었지만 이번에도 빠져나가는 것은 좀 무리였다. 협상을 거듭한 끝에 손바닥 반 크기만 한 양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이걸 먹고 혹시라도 잘못되면 무슨 병에 걸릴지 고민하면서 고기를 먹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양을 잡던 분들과의 친밀감이 생겼다. 그 때문인지 테를지 국립공원의 뷰와 게르에서의 모임과 같이 여러 가지 좋은 기억들이 있었지만, 몽골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바로 그 양고기를 먹었던 기억이다.     




캐나다에 있을 때 첫째를 낳았다(물론 아내가). 간호사분이 몇 번이나 아이의 발목에 있는 멍을 보며 자신들은 실수한 바가 없다고 확인을 했다. 아이 발목의 멍은 한참을 없어지지 않았다. 후에 집으로 방문해서 아이를 살피는 역할을 하는 간호사에게도 이 특이한 상황을 설명해야만 했다. 모두가 아동학대범으로 몰리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궁금증은 몇 달 후에 풀렸다. 그 도시에 한 명 밖에 없는 한국인 패밀리 닥터와 연결이 돼서 한국인에게 아이 건강을 체크할 수 있게 되었다. 없어지지 않는 멍이 걱정돼서 물었더니 의사분께서는 호탕하게 웃으며 이거 몽고반점입니다, 발목에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고 이야기했다. 한참을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공유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그렇게 때문에 특별하다. 사실 한국인과 몽골인은 몽고반점을 공유하는 사이가 아니었던가? 캐나다 원주민이나 몽골인들을 만났을 때 몽고반점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렇게들 좋아한다. 우리 한국인들도 다 갖고 태어납니다.라고 말하면 너무나도 반가워하고 긴장감을 푸는 것이다. 그들이 그것에 대해 그렇게 좋아했던 것은 바로 신체적 특수성을 공유하는데서 생긴 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몽골에서 들었던 이야기 중에 소개할 것이 하나 있다. 아련한, 그리고 아린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이다. 몽골인들은 우리 한국인을 솔롱고스라고 부른다. 솔롱고스는 무지개라는 뜻인데 한국인을 그렇게 부르는 이유에 대한 몇 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설은 공녀의 역사과 연관되어 있다. 원나라 시절 고려의 여인들은 공녀로 차출돼 원나라로 보내졌다. 그리고 공녀들이 색동저고리를 입고 몽골의 초원을 지나는 모습이 마치 무지개 같았다는 것에서 그 이름이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학술적으로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마음을 아련하게 만드는, 감정적 설득력을 지닌 설명이었다. 그 솔롱고스라는 단어, 그리고 공녀에 얽힌 역사 때문에 몽골인들 또한 한국인들을 조금은 더 특별하게 여기는 것 같다.   




똑같이 몽고반점을 갖고 태어나, 솔롱고스에 관한 역사의 공유된 기억을 가지고, 갓 잡은 양고기를 생으로 먹으면서 그곳에서 만났던 몽골분들과 더 가까워졌다. 무언가를 공유한다는 것은 그렇게 우리를 연대하게 하고, 모두를 더 강하게 만든다. 가족, 친구, 나라, 세계가 그렇게 공통점을 발견해가며 공유된 기억을 만들어 가는 것이 그러니 필요한 것이리라. 


작가의 이전글 我們心中的金牌(아문심중적금패), 타이페이에서 얻은 교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