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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Oct 03. 2021

我們心中的金牌(아문심중적금패), 타이페이에서 얻은 교훈

내 마음속의 금메달

타이베이로 혼자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대만의 고궁박물원과 지우펀이 주요 방문지였다. 혼자다 보니 먹을 때도 다닐 때도 뻘쭘하고 심심했다. 그러니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들을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때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기간이었다. 길에서나 식당에서나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올림픽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루는 보게 되는 텔레비전마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발차기를 하는 여자 태권도 선수의 모습만 중계하고 있었다. 경기 중계도, 뉴스도 온통 그 여자선수에 대한 내용이었다. 부상을 입었음에도 투혼을 발휘하여 경기에 임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거리에서는 안타까운 탄식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국기도 달지 못하고 국명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올림픽에 참가하고 있었다. 이제는 거의 잊힌 국명인 중화민국이 아닌 차이니즈 타이베이라는 이름을 달고 그들의 국기가 아닌 올림픽기를 가슴에 달고 경기에 참가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몇 안 되는 메달권에 있는 종목이 바로 그 선수가 참가했던 여자 태권도 경기와 야구경기였다. 국제사회가 하나둘 대만과 단교하며 중국의 손을 잡았다.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중화민국 혹은 대만이라는 국명을 쓰거나 자신들의 국기를 드는 것도 자유롭지 못한 나라다.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에서의 자리를 중화인민공화국에 넘겨줘야만 했던 나라다. 역시나 우리와의 관계가 썩 좋지는 못하지만, 국제사회에서 그들이 처한 상황은 분명 안타깝다. 지금의 양안관계는 우리에겐 다른 세상의 이야기이지만, 약자의 서러움은 우리의 이야기 인적도 있었기에, 그들의 간절함은 그 여행에서의 기억 속 더욱 안타깝게 저장되었다.


여행을 마치고 공항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혹시라도 몇 자 읽을 수 있을까 싶어서 신문을 하나 사서 버스에 올랐다. 아차, 간체가 아닌 번체자다. 아는 글자 맞추기라도 시도하려다 머리가 어지러워 바로 포기했다. 그렇게 신문을 접으려다가 신문의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我們心中的金牌(아문심중적금패)" 대략 이해했다. 우리 마음속의 금메달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다리를 절뚝이며 조국의 메달을 위해 사력을 다하던 그 여자 태권도 선수를 향한 대만인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대만인들은 그 선수의 간절함 만큼이나 간절하게, 그 선수를 향해 마음으로 그 격려의 말을 건네었으리라. "我們心中的金牌(워먼 신쭝더 찐파이)"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한국인 기장께서 기내방송을 켰다. 그리고 흥분한 목소리로 "승객 여러분,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 금메달을 땄습니다"라고 외쳤다. 비행기 안은 난리가 났다. 2002 월드컵 4강 이후로, 한국의 인기 스포츠가 국제 경기에서 거둔 가장 큰 업적이 아니었던가. 야구 결승전 중계를 놓친 한국인들이 하늘 위에서 들은 승리의 소식은 그렇기 때문에 특별했다. 그러나 그 감격과 기쁨이 가라앉자 절룩거리는 다리로 애를 쓰며 경기를 뛰던 태권도 선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대한민국의 성공이 기쁘면서도 왠지 그들에게 미안한 복잡한 감정이었다.


우리에게 좀 더 감정적인 여유가 있다면, 물리적 금메달뿐 아니라, 우리 마음속의 금메달도 소중히 생각해 보도록 하자. 성공에 대해서, 승리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고, 그 정도면 최고라고, 누가 뭐라고 해도 내 마음속엔 당신이 금메달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아량을 연습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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