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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Dec 20. 2021

동네 구경

차가 없는데 이사 온 동네엔 대중교통도 없다. 그랩이나 고젝을 이용해 차량이나 오토바이를 호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부르려고 해도 변두리라 그런지 차가 없을 때가 많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걷기로 마음먹고 조금은 위험하지만 아이 둘을 데리고 분 정도 떨어진 시장에 다녀왔다. 어쩌다 보니 시장 구경은 못 하고 근처 소시지를 파는 레스토랑에 들렀다가 구멍가게에 들러서 커피와 과자를 사고, 오는 길에 빗자루 두 개를 사 가지고 들어왔다.


살기 편한 곳에 있다가 와서 그런지 차를 부르는 것도, 음식 주문을 하는 것도 만만하지가 않다. 패스트푸드점도 멀어서 사테와 같은 현지 음식 외에는 익숙한 음식을 시키는 것도 어렵다. 또코페디아같은 온라인 스토어에서 물건을 시키려고 해도 배송비가 많이 붙는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아내와 상의해서 생활의 패턴을 바꾸기로 했다. 냉장고도 크지 않으니 먹을 것은 조금씩 시장에 가서 사 오기로 했다. 엊그제는 아내가 걸어서 시장에 다녀왔다. 2킬로쯤 되는 닭 한 마리, 큰 생선 두 마리, 달걀 1킬로, 다른 여러 가지 채소를 사 가지고 왔다. 마트 물가보다는 훨씬 싼 건지 아내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생선으로 밥 한 끼, 닭으로 밥 두 끼를 해결했다. 라면으로 한 끼를 더 해결하고 나니 생활비가 많이 아껴진 것 같다. 식당에서 소시지를 주문하는데 치킨으로 할 건지 비프로 할 건지 묻는다. 이슬람권이란 사실을 잠시 망각했었는데 고기를 선택하면서 다시 기억 냈다.


음식을 먹으면서 보니 맞은편에 슈퍼가 보였다. 마침 인스턴트커피가 떨어졌었는데 잘됐다 싶어서 건너가 봤다. 구멍가게인가 보다 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가게가 크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조그만 오레오 과자와 아들이 좋아하는 벌집 모양 스을 두 개 사고는 커피를 골랐다. 아무리 찾아도 커피가 없었는데 한쪽 코너에 보니 10여 종의 커피가 차례로 진열되어 있었다. 그런데 박스에 든 게 없다. 한 개 한 개 뜯어져 있다. 커피는 하나씩 파나보다. 블랙커피를 개, 믹스커피를 세 종류로 나눠서 열개 정도 샀다. 계산을 하면서 10만 루피아짜리 지폐 하나를 냈다. 71,000루피아를 거슬러준다. 계산이 잘못됐나 싶어서 자세히 쳐다봤는데 잘못된 게 없다. 거스름돈을 받으면서 뭔가 잘못한 거 마냥 죄송해하며 나왔다. 29,000 루피아면 한화로 2,500원도 안 되는 돈이다.  싸게 사서 기분이 좋다기보다 뭔가 죄송한 마음이 든다.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아내가 철물점 앞에 섰다. 집안에서 쓸 빗자루와 밖에서 쓸 빗자루를 사야 한다고 한다. 역시 싸다. 여긴 사람 손이 들어간 물건이 공장에서 만든 것보다 언제나 싸다. 손으로 만든 커다란 싸리 빗자루인데 하나는 15,000루피아 다른 하나는 16,000루피아다. 쓰레받기도 있는데  20리터 따리 식용유 캔을 대각선으로 잘라서 나무막대 붙여서 판다. 살고 있는 집과 주택단지는 좋은 컨디션이기 때문에 집안에 있을 땐 못 느끼는데 밖에 나가보면 확실히 시골로 이사 온 게 실감이 난다. 상점에서 파는 물건들이 다르다. 공산품 가격은 비슷하지만 서비스 물가는 자카르타 근처에 살 때보다  30%는 저렴해진 것 같다.

        

집에 와서 아내와 얼음을 넣은 커피를 마시며 외출은 무조건 낮에 하기로  합의를 봤다. 저녁에 나갔다가 혹시 차량 호출이 안되면 그 자리에서 발이 묶여 버리는 것이 걱정기 때문이다. 시장 가는 길이 너무 위험하니 내일은 내가 나가서 도보로 갈 수 있는 샛길이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첫 학기 공부는 온라인으로 할 것 같고 아내 역시 사이버 대학에서 다시 공부하는 중이고 아이들도 홈스쿨링이니 동네에 있는 시장과 슈퍼마켓, 식당과 카페를 이용하며 이곳에서 잘 살아가 봐야 할 것 같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타국 도시에서의 동네 구경은 모험과도 같다. 3년을 살았고 언어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만 가끔은 두렵다. 질병과 사고 등의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 청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인 건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성품이 다들 좋고 친절하다는 것이다. 빨리 이곳 친구들을 사귀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그저 이 모험이 우리 가족에게 신나고 행복한 여정일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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