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이상한 둥지
#위대한 비행 <존-날지 못하는 새>
"여보, 아무래도 새(New) 둥지가 필요하겠어요!"
나는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했고 할아버지 할머니와도 허물없이 가까워졌을 때였다.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우리가 함께 살 새로운 둥지를 만들기로 결정하셨다. 원래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주 높은 나무에 튼 둥지에서 살고 계셨었다. 아무래도 날개를 다친 내가 둥지를 오르내리기에 너무 힘들 것 같다고 할머니께서 걱정하신 탓이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말이라면 늘 'Yes!'였다. (아마도 두 분의 사이가 좋으신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새 둥지를 만드는 일은 전적으로 할아버지의 몫이었다. 다음날부터 바로 '새 둥지 만들기 작전'에 돌입한 할아버지는 아주 바빠지셨다. 병원에는 가끔 들르셨는데 그때마다 신기한 먹이들을 선물로 물어다 주셨다. 그야말로 신기한!
"존, 이건 꼭 먹어야 해! 건강에 아주 좋다는구나. 맛은 좀 없을 게다. 좀 쓸 거야."
한 날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작은 열매를 물어 오셨다. 나는 처음 보는 신기한? 열매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할아버지는 다짜고짜 코를 막고 얼른 삼키라고 했다. 부러진 날개 회복에 아주 효과가 좋다고 하시면서 강제로 내 입을 열어 쑤셔 넣듯 하셨다.
"어서! 어서! 꿀꺽 삼키렴!"
"욱! 할아버지! 차라리 병원에 며칠 더 있는 게 낫겠어요! 이건 너무 쓴걸요! 냄새도 고약하고요."
그 열매의 실체가 무엇인지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몇 번을 토하고 또 토했을 테니까. 할아버지가 강제로 먹이 신건 바로 '지렁이 똥'이었다. 지렁이 똥을 뭉쳐 작은 열매로 위장한!
"이렇게 의학이 발달한 시대에 지렁이 똥이라니요! 할아버지!"
"훗. 그래도 먹을만하지 않던?"
도대체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민간요법을 들으신 건진 모르지만 분명 효과는 있었다. 그날 이후 내 부러지고 찢긴 오른 날개가 빠르게 아물어 갔다.
◇◇◇
병원에서는 매미가 막 울기 시작할 때 퇴원했다.
"존, 자 여기란다. 나무 위에 둥지가 보이니?"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 보듯 둘레가 아주 큰 나무 위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의 날개가 가리키는 곳을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도무지 둥지를 찾을 수 없었다.
"엥? 할아버지 둥지가 안 보이는데요?"
"허허. 그래? 그럼 대성공이구나."
"네?"
큰 나무에 가지들이 무성했기에 내가 둥지를 찾지 못하는 거라 생각했다.
"마술이지."
"네?"
"하하. 녀석 놀라긴. 자. 다시 한번 자세히 보렴. 저 나무 중턱에 뭔가 보이지?"
할아버지는 내 눈높이에 맞춰 몸을 숙이시곤 날개를 뻗어 나무 중턱 한 곳을 가리키셨다.
"아. 저기! 음... 그런데 저게 둥지라고요? 모양이..."
이상한 모양을 한 둥지였다. 우리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생김새는 마치 울퉁불퉁 한 큰 조롱박 같았다.
"특별하지?"
"네... 특이..."
할아버지는 특별한 모양이라고 하셨지만 내겐 그저 특이한 둥지로 보였다.
"우리 마을에 저런 둥지를 만드는 새는 없단다. 아마 우리가 처음일 거야."
정말 그랬다. 우리 마을 새들은 지붕이 없는 넓고 평평한 - 중간만 조금 깊은 - 둥지를 만든다. 아침에 해가 뜰 때 따스한 기운을 빨리 받을 수 있고 저녁에 해가 질 때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볼 수 있는 높은 곳의 둥지. 그게 일반적인 둥지의 모습이었다.
"그럼 일부러 둥지 모양을 저렇게 이상하... 아니 특별하게 만드신 거예요?"
혹시나 할아버지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조심스럽게 여쭈어 보았다.
"그렇지. 둥지 입구를 제외한 모든 부분을 진흙과 잔가지, 마른풀들로 덮었단다. 아주 튼튼하게 말이야! 못된 독수리나 매가 마을을 공격해도 우리는 안심할 수 있어. 나무를 기어오르는 뱀들로부터도 제법 안전하지. 입구가 좁아 머리를 들이밀기 어려울 테니까. 혹 뱀이 공격해도 문제없어. 네 방이 될 2층에 좁게 열린 창은 비상구 역할도 하니까. 어때? 이 만하면 꽤 안전하겠지? 아, 그리고 둥지 앞에는 작은 테라스도 만들어 두었단다. 아름다운 노을 풍경을 놓칠 순 없으니까."
자신감 넘치는 할아버지의 설명이 끝없이 이어졌다.
"와우! 정말 대단한 아이디어예요!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그런 생각을 얻으셨어요?"
"하하. 궁금하니?"
할아버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질문을 할 때 가장 좋아하셨다. 이번에도 이야기가 길어질 걸 잘 알지만 이번엔 저런 이상한 둥지를 어디서 보신 건지 정말 궁금했다.
"정찰 임무를 받고 아주 멀리 날아갔을 때였지. 나는 저너머 마을 숲, 그 끝까지만 날아가야 했어. 거기가 마을 끝이자 경계였지. 그 경계는 누구도 넘어선 안됐어. 그건 오랫동안 지켜온 우리 마을 법이기도 했고."
내가 끼어들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멀리 날아가신 거죠? 이젠 할아버지를 조금 알 거 같거든요. 하하."
"그래. 그래. 이제 할아버지를 제법 잘 아는구나. 아무튼 호기심이 생긴 거야. 드넓은 광야, 그 건너편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땐 할머니를 만나기 전이라 무척 자유로웠지. 그래서 지형을 따라 초저공비행을 감행했단다. 들키면 안 되니까. 뱃 깃털이 땅에 닿을 듯 말 듯 말이야! 아주 멀리멀리 날아갔지. 조금은 두려웠지만 모든 게 신기했어."
우리 곁으로 다가선 할머니가 말했다.
"으흠. 그랬군요. 폴! 무척이나 자유로웠군요!"
할아버지가 조금 당황한 듯 나와 할머니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아차, 아직 네 할머니한테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인데... 여보, 그런 뜻이 아니라 그냥 좀 자유로웠다는 뜻이야. 알지?"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호호. 그래서요?"
할아버지가 말을 이어가셨다.
"마침내 어느 이상한 마을에 도착했어. 거대한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지. 신기하게도 마치 누군가 줄을 지어 심어 놓은 듯 질서 정연하게 자라고 있었어. 그런데 그 나무는 좀 우스꽝 스럽게 생기기도 했는데 마치 나무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 같았지. 줄기에서 뻗은 뿌리가 하늘을 향하는 것처럼. 이런 모양으로 말이야."
할아버지는 정확한 설명을 돕기 위해 두 날개를 하늘로 치올려 보이셨다. 내가 말했다.
"뿌리가 하늘을 향해요? 신기한 나무네요."
"그래. 정말 신기하고 또 이상했어. 그런데 신기한 건 나무뿐만이 아니었단다. 코가 아주 길고 등치가 큰 동물도 있었고, 심지어 코에 뿔이난 가죽이 맨질맨질한 동물도 있었단다. 정말 모든 게 컸지. 하나같이 우리 마을에선 볼 수 없는 것들이었어. 아마도 거인의 마을인가 싶었지."
그때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옆구리를 쿡 찌르셨다. 살짝 놀란 할아버지는 말을 멈추셨다.
"으음. 아무래도 내가 너무 오래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구나. 존, 일단 새집을 둘러본 다음에 천천히 들려줄까? 좀 긴 이야기 거 든."
할머니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그래요. 그러는 편이 낫겠어요. 존이 피곤할 테니 어서 집을 보여주고 좀 쉬게 하자고요."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무척 재밌었지만 할머니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네. 전 좋아요. 그리고 궁금해요. 나중에 꼭 다시 해주세요. 그 나무와 둥지 이야기를!"
"그래. 그래. 그러자 무나."
내가 말했다.
"좀 특이하긴 하지만 특별한 둥지에서 살게 된다니 참 좋아요."
할머니가 말했다.
"그래. 무엇보다 네가 좋아하니까 우리 부부도 행복하구나."
할머니가 날개를 펴 할아버지 어깨에 다정히 포갰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존,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단다."
할아버지는 나무줄기로 가까이 다가가서 날개로 돌출된 부분을 가리 키셨다.
"이건 둥지에 오르는 계단이란다. 네가 둥지를 오르내리기 쉽게 만든 거지. 마음에 드니?"
"와! 그럼요! 마치 천국에 오르는 계단 같아요!"
땅에서 둥지에 이르는 작은 계단은 나무의 둘레를 따라 진흙과 마른풀들을 이겨서 만든 것이었다. 오직 나만을 위해 만들어 주신 작은 계단을 따라 한 발 한발 올랐다. 내 다리의 보폭에 맞추어 만들어주신 계단이 있어 둥지를 오르기 아주 편했다. 마침내 둥지에 다다랐고 둥지 앞 테라스에 꽤 넓게 만들어주신 테라스에 올라섰다. 서쪽 하늘을 향한 테라스였다. 할아버지가 '놓칠 수 없는 노을'을 위해 만들어 두신.
"아!"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좋은 전망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원한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왔다. 나무 아래에는 바람이 없었다. 높은 바람이었다. 팔랑이는 나뭇잎 사이로는 햇빛이 들었다 숨었다 했다. 커다란 나뭇잎이 여름의 더위를 가릴 넉넉한 그늘을 주었다.
"할아버지 둥지도, 전망도 정말 마음에 들어요. 여기서 내려가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오, 그래? 그거 참 다행이구나. 새 둥지를 짓기 위해 많은 나무들을 찾아다녔지만 이만한 곳이 없더구나. 물론 이보다 더 높이 둥지를 튼다면 전망이야 더 좋겠지만 너에겐 여기가 좀 더 편안하겠지. 한동안은 둥지에만 머물러야 할 거야. 땅 위에는 위험한 짐승들이 많거든."
"네. 그래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정말 지루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멀리 하늘과 닿은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푸르디푸른 하늘과 시원한 바람. 시력이 닿는 곳까지 늘어선 나무와 숲. 날아가는 새들과 날아드는 새들. 어디선가 들려오는 곤충들과 새들의 노랫소리. 나무 가지 끝에 핀 꽃들은 축복의 상징이었다.
◇◇◇
"존, 이제 들어와 보렴!"
이상한 둥지를 어서 소개해 주려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조급했다. 생각보다 넓고 아늑한 공간. 위층에는 나를 위해 만들어주신 작은 방이 있었다. 폭신한 마른 지푸라기 침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하늘로 열린 좁은 창이었다. 누워서 별을 볼 수 있는 방. 아직 별이 뜨려면 멀었지만 벌써부터 설렜다. 할아버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시고 나서 나는 내 침대에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아직 할아버지가 다 말씀해 주시 신 않았지만 그 이상하게 생긴 나무에 둥지가 어떤 모양이었을지 상상됐다. 둥지에 오르는 작은 계단, 노을 볼 수 있는 테라스, 누워서 별을 볼 수 있는 방...
'할아버지는 정말...'
생각해보니 새 둥지는 하나하나가 나를 배려한 설계였다.
'매일매일 좋은 꿈만 꿨으면 좋겠다...'
지푸라기 침대가 어찌나 폭신하고 포근한지 나도 모르게 달콤한 낮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