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별 꽃 피는 밤
#위대한 비행 <존-날지 못하는 새>
별 꽃피는 밤, 여름 밤하늘은 참 아름답다. 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쏟아지다 맑아진 하늘, 그 밤하늘에 별 꽃들이 필 때면 늘 둥지 앞 테라스에 나가 앉았다.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의 품이 그리울 땐 엄마가 불러 주셨던 자장가를 떠올렸다. 눈을 감고 허밍으로 따라 부르면 아직 엄마의 품, 그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잘 자라. 우리 아가. 예쁜 꽃들도 잠이 든다네. 노랑나비도 쉴 곳을 찾았다네...'
사실 아빠의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못하셨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서 잘 살고 계실 거라 굳게 믿었다. 엄마는 늘 아빠가 마을 최고의 비행기술을 가졌다고 했었다. 그런 아빠라면 그 폭풍우 속에서도 반드시 살아 내셨을 테니까.
◇◇◇
"오늘 밤은 별 꽃이 피었구나. 참 아름답지?"
할아버지가 조용히 다가와 내 옆에 앉으며 말했다.
"네. 아름다워요. 별들이란 참 신기해요. 스스로 빛을 발하잖아요."
"그래. 그렇지. 별들은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존재야."
할아버지가 가만히 내 어깨에 팔로 감싸셨다.
"저 별들 중 어딘가에는 네 엄마도 있을 거야."
"네? 엄마 가요?"
"응. 우리 새들은 죽으면 영혼이 저 높은 하늘로 날아 올라 별이 된다고 믿거든."
"아. 그래서 엄마가 저 별들 중 어딘가에..."
"그래. 엄마는 너의 밤을 지키는 별이 된 거야. 수호별이라고 한단다. 너는 알 수 없지만 엄마는 항상 너를 보고 있지. 그게 밤이 깊고 어두울수록 별이 더 밝아지는 이유야. 너를 더 밝게 지키려는 거지. 스스로 빛을 내서 말이야."
다시 별들을 바라보았다.
'수호별...'
그때 저 하늘 건너편에서 별똥별이 하얗고 빛나는 긴 꼬리를 그리며 떨어졌다.
"아! 할아버지. 저기 별똥별이에요!"
"오, 그래. 별똥별이구나! 어떤 영혼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어."
"영혼이요?"
"응. 영혼이 몸을 벗어나 하늘로 빛처럼 날아오를 때 별똥별이 떨어진단다."
"사실 전 영혼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 아직은 잘 모를 테지. 걱정 말거라. 차차 알게 될 테니. 다만 영혼이 있어 우리는 어디서든 연결된다는 것만 기억하렴. 이 땅에서도 저 하늘에서도 우린 영혼으로 연결되어 있단다. 영혼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지. 그래서 우린 서로를 느낄 수 있는 거야. 곁에 없지만 마치 곁에 있는 것처럼 말이야."
할아버지의 말이 잘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엄마가 내 곁에 없지만 늘 함께 였던 것 같았던 이유를.
'우리는 모두는 영혼으로 연결되어 있다...'
◇◇◇
문득 지난번에 할아버지가 해주시다만 이야기가 생각났다.
"참, 할아버지. 지난번에 말씀해 주시다 만 '거인의 나라' 이야기해주세요. 하마터면 잊고 지나갈뻔했어요!"
"하하. 그걸 여태 기억하고 있었니?"
할아버지는 뒤를 살짝 돌아보셨다.
"할머니가 십자수를 하고 있구나. 잘 됐어. 오늘은 조금 편히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
십자수는 할머니의 유일한 취미였다. 할머니는 십자수를 할 땐 누가 옆에 있어도 잘 모르실 정도로 몰입하셨다. 알 수 없는 노랠 흥얼흥얼 하시면서.
"할머니는 십자수를 참 잘하시는 것 같아요. 가끔 할머니가 십자수하시는 걸 보고 있으면 정말 신기하거든요. 어떻게 그런 그림이 또 모양이 만들어지는지!"
"애들을 잃고나서부터 였지. 그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십자수를 시작했단다. 할머니는 십자수로 그 힘든 시기를 이겨냈단다. 누구에게나 그런 것이 하나쯤은 있지. 모든 걸 잊게 해 주는, 때론 자신조차 잊게 해 주는 그 무언가가. 할머니에겐 십자수가 그런 거지."
말없이 십자수하는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흰 바탕에 문양을 한 땀 한 땀 채워가시는 모습이 참 평온해 보였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 너무 길게 떠든다고 나무랄 할머니도 없으니 말이야!"
"네. 좋아요."
"음..."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하시고는 말씀이 없으셨다.
"할아버지 왜 시작 안 해요?"
"그런데 지난번에 어디까지 이야기했었지? 요즘은 기억이 자꾸 흐려지는구나."
"아이참. 마을의 경계를 넘어 아주 크고 이상하게 생긴 나무가 있는, 거인의 마을에 도착한 것까지 말씀하셨잖아요!"
"오. 그랬구나. 그래 그럼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자꾸나."
◇◇◇
"흠. 흠."
할아버지는 겸연쩍으신 듯 헛기침을 한번 하시고는 말씀을 이어 가셨다.
"그전에 말이야..."
할아버지는 그때 다 못하신 말씀을 덧 붙여 시작하셨다.
"그때 난 너무도 먼 거리를 비행했기 때문에 완전히 지쳐있었지. 어디 쉴 곳이 없는가 하고 둘러보았지만 끝없이 펼쳐진 마른땅에는 쉴 곳이란 없었단다. 절망 적이었어. 아무래도 이러다 탈진해서 객사하겠다 싶었거든. 괜한 호기심 때문에 말이야..."
"음. 그럼 마을의 경계를 정한 게 다 이유가 있었네요. 아무것도 살 수 없는 '광야의 위험' 때문에 말이죠."
"그래. 아마도 그래서 였을 거야. 내가 비행한 광야는 우리 같이 숲과 물이 풍부한 땅에 사는 새들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단다. 오로지 태양과 마른 바위와 모래만 있는 곳이었지. 마실 물이 없었어."
'광야'라는 단어를 들어본 게 처음이었기에 할아버지의 설명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그렇지만 물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었단다. 오아시스라 불리는 샘들이 있었지. 그건 그 지역 토박이들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어."
신기한 이야기였다. 광야에는 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해주마. 오늘은 지난번에 다 못한 그 신비한 나무와 둥지에 대해서만 얘기 하자 꾸나. 그 이야기만으로도 이 밤이 짧을지도 모르니 말이야!"
"네. 그럼 오아시스 이야긴 다음에요!"
◇◇◇
할아버지는 다시 이상한 나무와 둥지 이야기로 돌이키셨다. 그 이상하게 생긴 큰 나무 가지 위에 내려앉아 잠시 쉴 때였단다. 그런데 누군가가 날 부르더구나.
"저기, 갈색 날개 아저씨!"
나는 어리둥절해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
"여기요. 여기. 가지 아래쪽이요!"
고개를 돌려 가지 아래를 내려다보았지. 자세히 보니 그제야 보이더구나. 흙으로 완전히 덮은, 마치 조롱박 같이 생긴 둥지가! 그 조롱박 같은 둥지의 좁은 입구로 머리를 내민 한 소녀가 날 부르고 있더구나. 까만 얼굴을 한 소녀였어. 눈이 유난히 반짝였지. 그 마을 풍경만큼이나 신비로운 눈 빛이었어.
내가 그 소녀에게 대답했단다.
"아! 안녕하세요. 전 폴이라고 해요. 저 멀리, 음 그러니까 아주 먼 마을에서 날아왔어요."
우리 마을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몰라 그저 저 멀리서 날아왔다고 할 수밖에 없었단다. 그러자 그 소녀가 다시 소리치더구나.
"아무튼, 지금 아지 씨가 앉아 있는 나뭇가지 위는 아주 위험해요! 어서 내려오세요!"
"네? 여기가 위험하다고요?"
"네, 아주 많이요! 이곳엔 독수리가 아주 많아요. 거기 위에 있으면 곧 독수리가 몰려올 거라고요. 어서 이리 들어오세요."
"오, 이런!"
그곳이 처음인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마치 독수리에게 바쳐진 재물처럼 그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었던 거야! 그런데 그 까만 얼굴의 소녀는 처음 보는 나를 기꺼이 둥지 안으로 초대했단다. 내가 잠시 쉬어 갈 수 있도록 말이지. 너도 알다시피 우리 마을에선 흔하지 않은 일이야. 자기 둥지에 낯선 새를 들이는 건 말이지. 그 까만 얼굴의 소녀가 말하더구나.
"이 마을은 처음이시죠? 하기야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겠어요? 먼길을 오신 것 같은데 목이나 잠시 축이시고 가세요. 돌아갈 길이 먼 듯하시니."
그 소녀의 억양은 좀 특이했지만 다행히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지.
"고맙습니다. 이 귀한걸."
귀한 물을 내밀더구나. 내가 보기엔 그 마을에는 가뭄이 든 것 같았거든. 땅이 마르고 갈라져 있었어. 그러니 아주 귀한 물이었지. 그 소녀는 생명의 은인이었어.
"꿀꺽! 꿀꺽!"
나는 일단 물을 쭉 들이켰단다. 정말 살 것 같았지.
"어휴. 천천히 마시세요. 체하시겠어요. '대접할 물'은 얼마든지 있으니 걱정 마세요."
"덕분에 살았어요. 하하."
"별말씀을요. 우리도 아주 먼 여행길에선 그렇게 대접받는걸요."
소녀는 참 친절했지. 그 소녀가 말해주더구나. '손님 대접용 물'을 따로 준비해 두는 게 그들의 예법이라고. 그 덕에 나는 생명을 부지했고. 그 소중한 '나그네 환대 예법' 덕택에 말이야.
기운을 차리고 찬찬히 둘러보니 우리가 짓는 둥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어. 우리는 잔 나뭇가지들과 진흙을 이겨 큰 둥지를 만들잖니? 지붕이 없는 시야가 확 트인 둥지를. 그런데 그들은 좁은 입구와 지붕으로 난 작은 창을 제외하고 사방이 붉은색 진흙과 지푸라기들을 이긴 흙벽으로 둘러쳤더구나. 정말 신기했지. 한 편으론 좀 답답하기도 했고.
"저, 아가씨 -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서 그냥 아가씨(파리자 - 나중에 알게 됐다)라고 했단다 - 여긴 참 신기한 마을이에요. 우선 우리 마을에 비하면 모든 게 거대해요. 여기 아가씨의 둥지가 있는 조금은 이상하게 생긴 나무도 그렇고 저 아래 사는 동물들도 그렇고요."
"아. 네. 뭐 그렇긴 하죠. 그렇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에요. 아주 작은 것들도 많이 있죠. 저처럼요."
마침내 그 소녀는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나를 바라봤단다. 신기하다는 듯이.
"아저씨는 말투가 참 부드러워요. 이 마을 새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좀 거친 편이랄까?"
"아... 하하. 그래요."
아직도 그때 그 소녀가 나를 보던 눈 빛을 잊을 수가 없구나. 할아버지의 표정이 왠지 모르게 부드러워졌다.
"잠깐만요. 할아버지!"
가끔 추임새로만 할아버지의 말씀을 따라가던 내가 첨으로 끼어들었다.
"음... 뭔가 느껴져요. 그 눈 빛이요. 두 분이 뭔가 통하셨군요!"
"하. 녀석 그런 게 아니야. 음. 음."
할아버지의 두기가 빨개지셨다. 할아버지는 애써 아무렇지 않다는 듯 서둘러 말씀을 이어가셨다.
소녀가 말했단다.
"우리가 둥지를 튼 이 나무는 바오바브란 나무예요. 우리는 이 나무에 신의 축복이 있다고 믿어요."
"바오바브? 이름이 아주 재밌네요. 무슨 뜻이 있나요? 왜 만물에는 이름이 있고 뜻이 있는 법이 잖아요."
"네. 맞아요. 바오바브는 원래 '많은 자손의 아버지'란 뜻이었대요. 신으로부터 가장 축복받은 이름 중 하나죠."
"많은 자손의 아버지라... 나무 이름치곤 정말 특이하네요. 정말 생긴 모양새만큼이나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 같군요."
나와 얼마간 거리를 두었던 소녀는 내가 앉은 탁자 맞은편에 조심스레 앉았단다. 그리곤 말을 이어갔지.
"바오바브나무는 신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제일 처음 흙으로 만드신 나무였대요. 그런데 처음에는 이런 괴상한 모습이 아니었고요. 물론 누구도 그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요. 한 날은 자신의 볼품없는 모습을 신께 불평했다는군요. 다른 나무들처럼 꽃이 피는 아름다운 가지를 가지게 해 달랬다 나 봐요. 하지만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한 나무에게 화가 난 신께서 뽑아 거꾸로 심어 버렸다지 뭐예요. 그래서 이렇게 이상한 모습이 되었다고 해요."
"음... 그럼 축복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렇죠? 그런데 나무가 반성을 하곤 용서를 구했대요. 그래서 신께서 용서하시고 다시 주신 이름이 '아부 히밥'이래요. '아부 히밥'은 '많은 자손의 아버지'란 뜻이에요. 지금은 바오바브라 부르고요. 재밌죠? 지금 우리가 둥지를 튼 이 나무는 이천 년을 넘게 살았어요. 정말 신의 축복이 없이는 불가능한 나이죠. 그래서 우리는 믿어요. 이 나무는 신령한 능력이 있다는 걸. 아저씨가 먼 곳에서 날아왔다면 아마도 이 나무가 당신을 불렀는지도 몰라요. 이 나무는 그런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 소녀의 말에 동의되는 부분이 많았단다. 생각해보니 단지 호기심 만은 아니었지. 특별한 힘이 나를 이끌지 않았다면 그 먼 곳까지 날아가지 못했을 거야. 그 거친 광야를 넘어서 말이야!
내가 말했다.
"할아버지. 솔직하게 말씀해 보세요. 그래서 그 소녀는 예뻤나요?"
"엥?"
"그러게요. 정말 나도 궁금하군요. 그 까만 얼굴을 한 소녀가 예뻤는지!"
톤을 낮게 한 할머니의 진지한 목소리가 우리 뒤에서 들렸다.
"아, 음. 뭐.. 그렇게 이쁘지는 않았던 것 같기도 해. 그래 특별히 이쁜 것은 아니었지! 아니, 그냥 고마웠던 거야. 물을 줬으니까. 그래 그 귀한 물을 줬으니까. 좋아 보였던 거지!"
당황한 할아버지는 말을 더듬더듬하셨다.
"하하. 여보. 괜찮아요. 오늘은 별 꽃이 핀 아름다운 밤이니까 다 이해해 줄게요. 걱정 말아요."
"하하하!!"
우리 모두는 다 같이 웃었다. 할머니가 내오신 차를 함께 나누며 셋이 함께 별을 바라보았다.
"아무튼 그때 이런 조롱박처럼 생긴 집을 처음 본거지. 아주 튼튼하고 안전한 둥지를 말이야."
할머니가 말했다.
"그랬군요. 난 당신이 정말 이상하게 생긴 둥지를 지을 때 노망이 난 건 아닌가 걱정을 했죠. 둥지 짓는 법을 잊어버린 건 아닌가 하고요. 하하."
"아니. 이 사람이! 하하."
할아버지의 긴 이야기는 훈훈한 마무리로 끝났다.
"정말 재밌었어요. 할아버지. 그리고 감사해요."
"그래? 고맙구나. 애청자가 있어 나도 행복했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먼저 들어가셨다.
"존, 그 까만 얼굴 소녀와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다음에 이야기해 주마. 할머니가 확실히 주무실 때. 하하"
할아버지는 들어가시면서 내게 얼굴을 돌려 살짝 말씀하셨다. 나도 조용히 대답했다.
"네. 꼭이요!"
밤은 깊어 갔고 별들은 더 빛을 발했다.
'신비한 힘...'
별 꽃이 핀 밤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직 이 세상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게 너무 많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