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운명 - 날지 못하는 새
#위대한 비행 <존-날지 못하는 새>
둥지 앞 테라스에 앉아 새들이 비행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얼마간의 자유를 느끼곤 했다. 여름을 지나 지금 가을까지. 나는 주로 이 테라스에서 시간을 보냈다.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기에 우리 마을의 시간을 마치 '타임랩스'처럼 앞뒤로 돌려가며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새였다.
'훗...'
지난봄 나를 웃게 했던, 문득 유난히 겁이 많았던 한 새가 생각났다. 겁이 많은 그 어린 새는 둥지 끝에 서서 그곳이 마치 천 길 낭떠러지 인양 바들바들 떨었다.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누구나 처음엔 두려운 거야. 자자. 한 번 날아 보자꾸나."
"싫어요! 난 그냥 둥지에서 살 거예요! 여기서 떨어지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오랜 실랑이 끝에 엄마가 아이의 등을 밀었다.
"엄마, 무서워요! 악!"
그런데 그 어린 새는 날개를 펴기는커녕 엄마의 뒷 꽁지를 잡고 둥지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가히 장관이었다.
"이 녀석! 너 정말!"
가히 봄의 대소동이었다.
"어이쿠! 우당탕!"
어떤 새들은 착지를 잘하지 못해 곤두박질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마지막 착지 때 바람을 제대로 읽지 못한 때문이었다. 배풍으로 착지하면 땅으로 몸이 '툭' 떨어지면서 얼굴을 처박을 수밖에 없다.
"풋!"
정신없이 땅바닥을 뒹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몰래 웃음이 터졌다.
비행의 계절!
꽃들에겐 꽃을 피우는 계절. 나비는 고치를 깨고 나와 날개를 뽐내는 계절. 우리가 바로 "때'라고 부르는 계절, 바로 봄이었다. 봄에 비행을 시작해야 여름과 가을을 지나면서 성장하고 삶의 배움을 얻었다. 그래야만 혹독한 겨울을 지날 수 있었다.
첫 비행은 엄마와 아이가 함께 만든 작품이었다. 어느 어린 새가 스스로 둥지에서 뛰어내리겠는가? 스스로 비행을 깨우치는 아이는 없다. 포기를 모르는 엄마와 아직 두려움이란 알을 깨지 못한 '날 때'가 된 아이! 아쉽게도 그 봄 - 그리고 지금껏 - 은 나에겐 없었던 것이었다. 오늘도 테라스에 온종일 앉아 있었다. 해가 기울고 다시 구름 아래로 붉은 노을이 잠식해 왔다.
◇◇◇
"존, 이제 그만 하렴! 세상에! 온몸이 피투성이 잖니!"
둥지로 돌아오신 할머니가 나무 아래서 비행 연습을 하는 나를 발견하곤 소리치셨다.
"할머니. 날고 싶은데. 날 수가 없어요. 날고 싶은데..."
할머니를 보자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래. 네 마음을 왜 모르겠니? 내 날개를 네게 줄 수만 있다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주고 싶구나..."
나도 날 수 있을 거란 꿈을 꾼 적이 있었다.
비록 오른쪽 날개가 반쪽이긴 했지만 노력하면 어떻게든 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내가 생각해낸 것은 나무를 오르는 계단이었다.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반대하실게 뻔했기 때문에 두 분이 외출하신 사이 홀로 첫 비행에 도전했다.
'이 정도 높이면 곤두박질쳐도 죽지는 않을 거야...'
사실 절대적인 높이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어린 나에겐 꽤나 높은 곳이었다. 늘 테라스에서 봐왔던 대로 - 아마 수백 번은 - 계단을 점프하면서 날개를 힘껏 펼쳤다. 실패. 실패. 실패...
"젠장!"
힘껏 양 날개를 펼치면 항상 오른쪽으로 핑 돌며 땅에 곤두박질쳤다.
"반드시 날아 내고야 말겠어!"
나는 날아오르는 기술을 터득하기까지 멈추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또 땅에 처박고 굴렀다. 온몸이 멍들고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날수 없는 새!
나는 '숙명'이란 단어를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숙명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오른쪽 날개가 절반밖에 없는 내가 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무기력하게 둥지로 돌아온 뒤 한 동안 내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화가 났다. 눈물이 났다. 그러다 잠들기를 반복했다.
양력 불균형!
그것이 내 숙명을 틀어쥐고 있는 공기역학의 다섯 글자였다.
"두 날개의 길이가 다르면 날 수가 없단다. 양력의 불균형 때문이지... 사실 한쪽 날개 중 날개 끝 네다섯 가닥의 깃털만 뽑아도 날 수가 없단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신 할아버지도 이번만큼은 어떻게 하실 수가 없었다.
◇◇◇
붉은 노을을 향해 한 무리의 철새들이 편대비행을 하며 날아갔다. 철새들은 신기하게도 마치 글자를 써가듯 'V자 편대'를 이루어 비행했다. 그것도 박자를 맞추듯 날개 짓을 정확히 맞추어 가면서. 가끔 제일 선두의 자리를 바꾸어 가면서 비행했는데 뒤따르는 새들은 선두보단 아주 조금 높게 비행했다.
"존, 오늘도 노을이 아름답구나. 늘 그렇듯이 말이야."
늦게 둥지로 돌아오신 할아버지가 늘 그렇듯 내 곁에 앉으며 말씀하셨다.
"네. 철새들을 보고 있었어요. 저기요."
"참 신기하지. 철새들이란. 정착해서 살아가는 우리 텃새들과는 체질이 다른 친구들이야."
"네. 저 새들은 마치 다른 세상 새들 같아요. 저 하늘 높은 어딘가에 둥지가 있을 것 같은...'
"그래. 대단한 친구들이지. 어떤 철새들은 10일 이상을 쉬지 않고 비행한단다."
"네? 10일 이상을요? 어떻게 10일 이상을 비행할 수 있죠? 잠은 안 자나요?"
"만약 잠을 잔다면 방향을 잃어버리겠지?"
맞는 말씀이었다. 눈을 감고 비행할 수는, 길을 찾을 수는 없으니까.
"철새들은 대이동 전에 몸을 최적화한단다. 몸무게를 줄이는 일이지. 어떤 새들은 장기까지 크기를 줄일 수 있다더구나. 나도 들은 바지만."
정말 신기했다. 세상은 알면 알수록 더욱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10일 이상 잠을 자지 않는, 장기 크기까지 줄 일수 있는 새라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요. 그들이 우리와 같은 새라는 걸..."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건 철새의 운명이란다. 떠나야만 사는 것! 따뜻한 봄을 찾아 떠나야 만 한 계절을 더 살 수 있는 거지. 피할 수 없는 거야. 아주 혹독한 운명이지. 많은 철새들이 끝까지 날아가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단다. 목숨을 건 비행을 하는 거야. 철새의 비행은 한편으론 운명을 거스르는 것이기도 해. 어떤 철새들은 이렇게 말한단다. '모이라이 - 운명의 세 여신'이 운명 기록부를 가지고 있다고."
"철새의 운명이요?"
"그래. 신의 섭리이기도 하고..."
"신의 섭리..."
"그렇게 타고났다는 거야. 신께서 그렇게 정하셨다는 뜻이란다. 우리가 바꿀 수 없다는 뜻이야."
"아..."
영혼, 숙명, 운명, 섭리... 아직 내겐 어려운 말들이었다. 이런 어려운 말들에 흥미를 느끼기엔 아직 어렸다.
"할아버지, 왜 철새들은 편대비행을 하는 거죠?"
나는 내가 좋아하는 비행이론으로 화제를 돌렸다.
"오! 좋은 질문이구나."
비행이론은 할아버지가 내게 설명해주기 좋아하는 분야이기도 했다.
"비행의 편의성과 효율성 때문이란다."
"에이. 좀 더 쉽게 말씀해 주세요."
"음... 쉽게 말해 리더를 따라가면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이지. 또 앞서 날아가는 새 보다 조금 높게 날면 치올라 오는 바람을 이용할 수 있어. 먼 길을 날아가야 하는 새들은 아주 작은 힘조차 아끼고 아껴야 하거든."
"비행이론은 좀 어렵지만, 뭐 이유는 간단하고 쉽네요."
◇◇◇
할아버지는 내가 궁금한 거의 모든 것의 답을 알고 계셨다. 그런 할아버지가 존경스러웠다. 더욱이 할아버지는 비행학교 출신에다 실제 전투 경험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나에게 재미있는 비행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는데 가끔은 정말 믿기 힘든 이야기들도 있었다.
“에이, 할아버지. 그건 뻥이죠?”
“이 녀석이! 무슨 뻥! 진짜 내가 독수리를 물리쳤다니까! 아, 물론 우리가. 정말 못 믿겠거든 할머니한테 물어보거라. 여보! 여보! 이리 좀 와봐요!”
그건 마을로 거대한 독수리가 침공했을 때의 전투 경험담이었다. 실제로 할아버지와 그의 편대는 용감하게 독수리를 무찔렀다. 물론 적잖은 희생이 따랐다. 두 분의 베테랑 파일럿이 목숨을 잃었다.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은 독수리에게 자신의 몸을 날려 (고공에서 수직 하강해서) 독수리 날개에 부딪힌 것이다. 다행히 독수리의 한쪽 날개가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결국 물러났다고 했다. 그때 전사한 용감한 두 분의 위패는 마을 중심 가장 높은 나무 꼭대기에 모셔져있다고 했다.(날수 없는 나는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 위패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고 한다.
‘위대한 파일럿들, 영웅이 되어 여기에 잠들다.’
‘히어로 훈장 - 마을 최고의 무공 훈장’은 할아버지의 옛 비행 제복에 자랑스럽게 달려있는 훈장이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물론 할아버지의 말씀을 완전히 의심한 건 아니었다. 다만 어느 정도는 부풀리고 과장해서 말씀했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그럼 할아버지는 정말 행운의 사나이네요! 유일하게 살아남은 새니까요."
할아버지는 조금은 쓸쓸한 표정으로 헛웃음을 터트리셨다.
"허허. 그래... 어쩜 그럴지도 모르지. 어쩜 아닐지도 모르고..."
할아버지는 가끔 먼 하늘을 바라보곤 하셨다. 특히 오늘처럼 철새들이 편대로 비행할 때면 더더욱. 하시던 일을 멈추시고 다정히 또 부지런히 날아가는 새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나는 그때의 전우들이 그리우신 거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