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할아버지의 마법 <1/2>

#위대한 비행 <존-날지 못하는 새>

by 청연

"안녕하세요. 폴 아저씨! 비행학교에서 존 앞으로 우편이 왔네요."


우리 마을 우편을 책임지고 있는 케이 아저씨가 우리 둥지로 편지 한 통을 들고 날아들었다. 마을 비행학교에서 내 앞으로 발송한 '비행학교 입학심사' 통지서였다.


보통의 새들은 집에서 기초 비행훈련을 시작한다.

그런 가장 기초적인 비행술을 기본 비행술이라고 한다. 기본 비행술은 그야말로 '새'로 살아가기 위해 배우는 가장 낮은 단계의 비행술이다. 예를 들어 먹이를 잡기 위한, 천적을 피하기 위한, 둥지로 회기 하는 방향을 잡기 위한, 또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안전하게 비행하는 기술 따위였다. 하지만 마을의 중요한 공공 임무를 담당할 새들은 따로 선발되었고, 비행학교에서 특별한 훈련을 받아야 했다.(중요한 공공 임무란 마을 정찰 및 방호, 긴급 메시지 전달, 비행 관제 같은 특별한 임무를 말한다.) 따라서 비행학교는 누구나 선망하는 마을 최고의 교육 기관이자 인재 양성기관이었다. 조금 웃기긴 하지만 '비행학교 출신은 믿고 맡길 수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쉽게 말해 개인과 집안의 명예쯤으로 생각하면 딱 맞았다. 아무튼 매년 가을이 되면 비행학교에선 신입생을 선발했다. 당해 태어나 첫가을을 맞이한 새들이라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졌다. 그래서 내게도 비행학교 입학심사 통지서가 발송된 것이다.


비행학교 입학을 위해선 먼저 기초 비행술 심사를 통과해야만 했다.

뭐 보통의 새들이라면 누구나 통과할 수 있는 간단한 테스트 정도였다. 예를 들어 안정적인 이륙과 착지. 폭풍 및 스톨(비행 실속) 같은 비상상황에서 대처하는 법, 위험한 지역에서 비상 착지하는 방법 등 아주 기초적인 비행이론과 실습평가였다. 문제는 비행이론이었다. '비행이론'은 열심히 공부해야만 알 수 있는 '어렵고 까다로운 것'이었다.


'아, 비행이론은 말랑말랑한 애벌레 먹기나 다름없는데!'


나에게 있어 그 어렵다는 비행이론은 베테랑 할아버지로부터 매일매일 들어왔던 소소한 이야기들일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실비행 테스트였다. 비행학교는 '비행할 수 있는' 새들만 선발했다. 날개의 상실은 곧 '기회의 상실'을 뜻 했다. 진작에 비행에 대한 꿈은 포기했지만 마음을 파고드는 아쉬움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


"존, 요즘은 비행 관제사가 인기라는구나. 심지어 고급 비행술을 자랑하는 새들도 관제사가 되려고 줄을 섰다는구나.”


“비행 관제사요?”


“응. 너도 아마 들어본 적은 있을 거야. 마을 비행 관제사는 비행에 중요한 기상정보를 제공하고, 우리 마을 거쳐가는 철새들에게 쉴 곳을 안내해 주거나 다시 날아갈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단다. 또 우리 같은 작은 새를 위협하는 독수리나 뱀 같은 맹수와 해로운 것들로부터의 공격을 경보하는 일도 하지. 그러니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직업이지.”


"와우! 할아버지는 관제사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응? 여기 신문에 자세히 쓰여있거든. 하하."


할아버지는 비행을 할 수 없는 나를 위해 부지런히 정보를 모아 오셨다. 매일 여러 종류의 신문을 보셨는데 주요 관심사는 새로 생긴 일자리나 전망 좋은 직업에 관한 것들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비록 내가 비행은 할 수 없어도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시길 원하셨다. 평범한 새들에겐 일자리가 늘 넘쳤지만 나같이 날 수 없는 새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허드렛일 정도였다.


“음. 괜찮은 것 같아요. 꽤 중요한 일이잖아요. 의미도 있고.”


할아버지는 내가 관심을 보이는 것에는 큰 의미를 두셨다. 뭐랄까? '존이 관심을 보인다면 뭐라도 해주겠다.' 같은...


"좋아. 좋아. 네가 좋다면 나는 항상 좋지! 음. 그런데 한 가지 문제라면..."


역시! 관제사는 마을 비행학교 출신만 가능했다! 기사에 따르면 비행학교에만 전문 관제사 클래스가 따로 편 생되어 있었다. 결국 관제사가 되려면 비행학교에 입학해야 했다. 다시 '불가능'의 원점. 마치 비행학교 입학자격심사 통지서가 왔을 때처럼 아쉬움만 남을 뿐이었다.


◇◇◇


“일단 내가 비행학교 교장선생님을 만나 뵙고 오마!"


할아버지가 신문을 확 접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네? 비행학교 교장선생님을 만나 보신다고요?"


"그래. 이대로 포기할 순 없잖니? 분명 비행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야.”


"그야 그렇지만... 설마 제가 날지 못한 다는 걸 잊으신 건 아니죠?"


"허, 이 녀석이. 내 기억력은 아직 전혀 문제없거든! 잠자코 있어보렴. 곧 다녀오마."


할아버지는 그동안 옷장에 걸어 고이 보관해 두셨던 비행 제복을 꺼내 입으셨다. 여전히 멋있는 제복 오른쪽 가슴에는 ‘히어로 훈장(마을 최고의 무공 훈장)’이 빛나고 있었다. 그 훈장은 늘 할아버지의 자랑이었다. 마을에서 히어로 훈장은 역사상 오직 세분에게만 수여되었다. 독수리에 날개에 부딪혀 전사하신 두 분의 전우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그 훈장을 보실 때면 늘 '내가 왕년에는...' 하시면서 무용담을 시작하셨다. 할아버지에게 저 훈장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기'의 상징이었다.


"탁! 탁!"


먼지가 조금 내려앉은 비행 베레모도 꺼내 툭툭 털고선 두어 번 '각'을 잡고 머리에 쓰셨다. 비록 얼굴의 주름은 늘었지만 여전히 히어로 파일럿의 날렵한 태는 살아있었다.


“와우! 진짜 멋있어요. 할아버지!"


"그래? 내가 왕년에는 좀 날았었지! 할아버지 아직 죽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늘 저런 농담을 하셨다. 익살스러운 손동작과 표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막내라서 늘 저런 '가벼운 모습'이라고 하셨다.


"그럼 잘 다녀오세요. 너무 애쓰시지는 마시고요."


"그래. 곧 다녀오마!"


할아버지는 평소와 다르게 말씀을 조금 아끼시는 듯했다. 어쨌거나 할아버지는 곧장 비행학교로 날아가셨고 곧 소식을 물고 오실 것이다.


"아. 할아버지는 정말..."


할아버지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할아버지밖에 없었다. 그러니 아무도 말릴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가끔 '엉덩이가 가벼운 새'라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엉덩이가 가벼운 새'는 '무언갈 생각하면 벌써 엉덩이가 공중에 떠있는 상태'를 말했다. 그건 정말 딱 우리 할아버지에게 맞는 말이었다. 좋은 말로 하자면 '엄청난 추진력을 가진 새'란 뜻이다. 조금 나쁘게 말하자면 '행동이 너무 가볍다'는 뜻이고. 물론 할아버지는 전자에 가까운 분이셨다. 그렇기 때문에 남몰래 '거인의 나라'까지 다녀오실 수 있었을 것이다. '저 너머까지'라고 생각하셨을 땐 벌써 몸이 그 경계를 넘어서고 있었을 테니까.


'할아버지가 실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될 일이 아니었다. 비행학교는 전통과 명예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예외를 둘리가 없었다. 나는 첨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할아버지가 저렇게 비행 제복까지 입고 자신 있게 나서셨는데 거절당하고 오시면 얼마나 씁쓸하실까 하는 걱정이 벌써 앞섰다.


◇◇◇


"여보, 존, 나왔소!"


밖에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먼저 달려 나와 할아버지를 맞았다.


“잘 다녀오셨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는 십자수 놓고 계세요."


이미 해는 저물었고 조금씩 어둑어둑해질 때였다.


"존..."


할아버지의 표정에서 '입학 불가'의 실망스러운 기운이 느껴졌다.


"괜찮아요. 할아버지. 비행학교에선 안 된다고 하지요?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미 예상하고 있었거든요...”


"음. 그랬구나..."


할아버지는 잠시 말없이 둥지 앞에 서 계셨다. 어떻게 말해야 내가 덜 실망할까 고민하시는 듯했다. 그러다 비행학교라고 적힌 하얀 봉투를 제복에서 꺼내어 내게 쑥 내미셨다.


“존, 받거라.”


“네? 이건 뭐예요?”


할아버지가 내미신 하얀 봉투를 손에 쥘 찰나였다.


"마법이지."


"네?"


마법 타령! 할아버지의 마법 타령(할아버지의 '마법'을 할머니는 '마법 타령'이라고 불렀다. 더 정확히는 '그놈의 마법 타령!이었다.)이 또 시작됐다. 그런데 봉투를 건네받는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자세히 보니 할아버지의 제복에 빛나던 히어로 훈장이 보이질 않았다. 나는 봉투를 받아 든 채로 말했다.


"할아버지, 그런데 왜 가슴에 훈장이 없죠?"


"아, 훈장. 비행학교 다녀오는 길에 어디선가 떨어졌나 보구나. 오래돼 낡은 제복이라 다시 단단히 고정했어야 했는데... 뭐. 이젠 없어도 괜찮아. 지난 전투 무용담도 슬슬 지겨워지던 참이었거든. 그나저나 어서 펼쳐 읽어보렴."

"그래도 할아버지껜 가장 소중한 것인데... 우리 같이 나가서 찾아봐요. 혹시 오는 길에 떨어졌는지..."


"어허. 존, 됐데두. 훈장에 미련이 없다니까. 어서 봉투나 열어보렴. 아, 어서!"


마지못해 하얀 봉투를 열어 안에 든 빳빳한 종이를 꺼내 읽었다.


이름 : 존

귀하를 우리 비행학교 관제사 클래스에 '조건부(비행 이론 평가 / 합격 시)' 입학 허가합니다.


비행학교 학교장 : 조나단 리빙 스턴



◇◇◇


그건 정말 마법이었다! 할아버지의 말처럼.


“아! 할아버지! 비행학교 입학허가서예요! 제가 잘 못 본 건 아니죠?”


"음. 거기 그렇게 쓰여있니? 괘씸한 비행학교 교장 같으니라고! 내겐 불가하다고 하더니만!"


"아이, 할아버지! 장난치지 마세요. 입학허가서라고요. 입학허가서요!"


"후후. 그래. 존, 축하한다. 비행학교 입학을."


아무리 생각해봐도 믿기지 않은 소식이었다. 할아버지가 어떤 '기적의 마법'을 부리셨는지도 모른다. 이건 정말 꿈만 같았다.


"그런데 여기 '조건부'라고 적혀 있어요! 비행이론 평가를 통과해야 한데요."


할아버지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체 연기하셨다.


“오호. 그래? 존, 이제 매일매일 비행이론 수업을 해야겠구나. 비행학교 이론 평가는 까다롭기로 유명하니까!”


“네! 그럼요. 전혀 문제없어요. 정말 감사해요.”


나는 입학허가 서류를 하늘로 번쩍 들고 폴짝폴짝 뛰었다.


'태어나 가장 행복한 저녁.'


내가 일기장에 쓴 그날의 기록이다. 할머니는 축하의 의미로 다양한 파이를 만드셨다. 밤이 늦도록 우리의 축하 파티가 이어졌다. 물론 할아버지의 무용담이 절반이었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할아버지가 나의 영웅이었다.

"그런데 비행학교 교장선생이 그러더구나. 오늘 밤에는 유성우(Meteor shower)가 내릴 거라고."


"와! 정말요? 마치 우리를 위한 축하 공연 같아요!"


"그래, 어서 담요 하나 챙겨서 테라스로 나가자!"


"전 피곤해서 좀 쉴래요. 별똥별 낭만은 두 분이 다 가지세요."


할머니는 피곤하시다면서 먼저 잠자리에 드셨다. 테라스 벤치에는 할아버지와 나만 남았다. 한 동안은 말없이 하늘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런데 할아버지 도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정말 무슨 마법이라도 부리신 건가요? 비행학교 입학허가 말이에요."


"아. 궁금하니? 그 마법이? 그래. 내겐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마법이 있지!"


"아! 정말. 진짜 어떻게 된 거예요? 빨리 말래 주세요! 안 그럼 간지럽힐 거예요!"


나는 할아버지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간 지렸다.


"오호. 오호. 그만, 그만! 알았다. 알았어. 얘기해 주마."


간지럼을 겨우 달래신 할아버지가 '비밀'을 막 풀어놓기 시작했을 때 하늘에선 별똥별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4장. 운명 - 날지 못하는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