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아이가 깨어났어요! 어서 이리 와 보세요!"
"그래?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눈을 떴을 때 왠 낯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내 곁에 계셨다.
"엄마? 엄마?"
낯 선 공간, 낯 선 새들. 생경한 모든 환경은 나를 더욱 두렵게 했다. 나는 연신 엄마를 부르며 병실이 떠나갈 듯 울어댔다. 그때 곁에 계셨던 그 낯선 할머니가 꼭 껴안았다.
"괜찮아. 아가야.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
나는 몇 날 며칠을 울고 또 울다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아무리 울어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바람이 잦아지면 돌아올 거라 했던 아빠도 끝내 내게 오지 못했다. 울고 울어 퉁퉁부은 눈과 말라버린 목소리.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고 먹고 싶은 아음도 새기지 않았다. 내 몸은 급격히 야위어 갔다. 하지만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 오른쪽 날개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는데 정확히 내 날개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고통이 점점 더 심해진다는 것으로 뭔가 크게 잘 못 됐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내 곁을 한시도 비우지 않고 묵묵히 지켜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내 날개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마 내가 - 엄마와 아빠를 이미 잃어버린 - 감당할 수 없는 더 큰 충격을 받을까 봐 그랬을 것이다.
엄마, 아빠 그리고 오른쪽 절반의 날개!
그 무시무시한 폭풍우 몰아치던 날 내가 잃은 것들이었다. 내게 가장 소중한, 어쩌면 전부 인. 병원에서 며칠이 지나 새 붕대로 갈 때 나는 보고 말았다.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처참하게 뜯기듯 잘려나간 오른쪽 날개의 절반! 나는 여태껏 그렇게 끔찍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검고 붉은 핏덩어리들과 울퉁불퉁하게 잘려나가 돌출된 날개뼈들... 그리고 아직 보드라운 깃털이 흉측하게 들러붙고 엉켜있었다.
"아!"
나는 기절하듯 잠이 들었고 다시 깨어났을 때는 내 오른 날개가 새 붕대로 감겨 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새 붕대를 감아 두었으니 한 동안은 도무지 내 것이라곤 믿을 수 없는 흉측한 날개를 보지 않아도 될 테니... 이제 겨우 알에서 깨어나 두 번째 계절을 맞이한 어린 새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들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
"나무가 쓰러졌단다..."
할아버지는 내 침대 곁으로 와 앉으셨다. 그리고 한 숨을 한 번 크게 쉬시곤 차분히 말씀을 시작하셨다. 그건 새 붕대 사건이 후 또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내 온 마음과 몸을 할퀴고 간 폭풍우의 상처가 현실로 받아들여질 때쯤이었다.
"유례없는 큰 사고였지... '우드둑!' 하고 큰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더구나. 걱정이 돼 둥지 밖을 내다보니 너희 가족이 둥지를 튼 나무가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꺾이면서 땅으로 쓰러졌어..."
그때 엄마의 품속에서 잠자고 있었던, 나는 전혀 알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그렇게 큰 나무가 폭풍에 부러질 거라곤 생각도 못했단다. 조금은 무섭더구나. 남의 일 같지가 않았어. 그런데 땅으로 기울어지는 둥지 속에서 네 엄마가 너를 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단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맙소사! 주여 보살피소서!'라고 외쳤지. 나무가 땅바닥에 '쿵'하고 닿을 때까지 엄마는 너를 품고 있었어. 너를 지키려 했던 거였을 거야. 너만이라도..."
"아..."
눈에서 뜨거운 게 느껴지더니 빗방울이 나무 잎사귀를 핥고 지나가듯 내 뺨을 타고 흘렀다. 할아버지는 잠시 말을 멈추셨다. 내게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는 걸 아신 탓이었다. 할아버지는 잠시 후 다시 말씀을 이어가셨다.
"그래. 네 엄마는 널 너무도 사랑한 게야. 기울어지는 둥지에서 너를 남겨 두고 혼자 날아올랐다면 엄마는 살았겠지. 그렇지만 끝까지 널 품고 있었어. 큰 가지가 둥지를 깔아뭉갰고 엄마는 여전히 널 꼭 안은채 그 모든 충격을 감당했단다. 연이어 또 다른 나무 가지가 너희 모자를 짓눌렀을 때 너는 엄마의 품에서 떨어져 나갔단다. 그래서 너는 살 수 있었던 거야."
숨이 멈출 듯 아프고 심장을 찌르는 듯 슬픈 이야기였다. 엄마와 함께 였으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홀로 남겨질 바엔 그 편이 나았을 것이다.
"우리 부부에게도 용기가 필요했단다. 그런 날씨에 둥지 밖으로 나선 다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거든. 그런데 할머니는 주저 없이 둥지 밖으로 날아 내렸단다. 나도 엉겁결에 따라 내렸지. 안타깝게도 네 엄마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어. 너는 무겁고 날카롭게 부러진 나뭇가지가 너의 오른 날개를 찧어 심하게 다친 상태였단다. 급히 너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워낙 상처가 깊었어. 그래도 완전히 날개를 잃어버리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었지."
"..."
절망적인 이야기였다. 내겐 절대 일어나선 안될... 할아버지의 '다행'이란 말에 조금 화가 났다. 물론 할아버지에게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모든 게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렇게 나는 둥지(Home)를 잃었다.
◇◇◇
"우린 두 아들을 잃었단다."
"네?"
할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두 분의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뱀이었어. 나무를 타고 오른. 우리 부부가 먹이를 찾으러 둥지를 비운 사이 뱀이 나무를 타고 둥지까지 올라온 거야. 만약 우리가 있었다면 무서운 뱀도 쉽게 둥지까지 오르진 못했겠지. 우리가 죽음을 각오하고 덤볐을 테니까..."
"아..."
또 다른 슬픈 이야기였다.
"그 후론 우리 부부에겐 아이가 생기지 않았단다. 할머니와 난 다시 자녀들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말이야... 나는 하나님의 벌일 거라 생각했지. 자식을 지키지 못한 죄 값을 치르는 거라고..."
할아버지의 눈이 붉게 번져갔다. 그렇지만 눈물을 보이 지신 않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자식을 잃으셨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 요동치던 마음이 고요해졌다. 그때 내 마음을 여러 번 쓰다듬은 건 아마 위로였을 것이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본 이만이 상처 입은 다른 이에게 조심스레 건 넬 수 있는...
그렇게 우리는 셋이 되었다.
소중한 두 분을 잃은 날 또 다른 두 분을 얻게 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내가 조금씩 회복되어 갈수록 마치 친 자녀의 회복처럼 기뻐해 주셨다. 그때는 어렸기에 이런 극적인 상황을 표현하는 '운명'이나 '숙명' 또는 '섭리'같은 고상한 말들은 몰랐다. 내가 떠올린 단어는 '다행'이었다. 다만 혼자가 되었지만 혼자가 되지 않은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
"*존, 존이 어떠니?"
"네?"
"네 이름 말이야."
아직 어렸던 나를 부모님은 '아가'라고 불렀었다. 우리 마을에선 보통 비행 연습 시작할 때쯤 제법 성숙한 모습을 본떠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은빛 날개 아름다운 - 에일린', '갈색 용기 - 브르노' 같이. 나는 그런 성숙한 때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부모님에 내게 준 정식 이름이 없었다.
'존...'
아주 짧은 이름. 그 한 단어에는 깊은 뜻이 있었다. 그건 이제 세상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나를 거둬들이는 두 분의 마음이었다.
"존(요나단)은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이란다."
'하나님의 선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름 '존'. 그리고 '하나님의 선물 - 존.'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나 - 우리 셋을 이렇게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말은 없었다.
* '존 - Jon'은 '요나단 - Jonathan'의 애칭이다.
히브리어 어원으로 'יְהוֹנָתָן/יוֹנָתָן - God has given - 신의 선물'이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