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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연 Jul 10. 2021

에필로그

#위대한 비행 <존-날지 못하는 새>

제니

절벽에서 자유비행을 성공했던 그 밤, 제니는 마침내 꽃으로 피었다. 그날 아름답게 떨어진 별똥별이 제니를 빨간 꽃으로 피우고 영원히 반짝이는 별로 데려간 게 분명했다. 나는 언젠가 갑자기 나타나 연중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별을 발견하곤 '제니'라고 이름 지어 줬다. 별을 볼 때면 제니가 보였다. 아픔도 슬픔도 없는 행복한 별! 그 별은 가장 늦게 피어나 밤새 가장 밝게 빛나는 꽃이었다.    


'이젠 편히 쉬렴...'


제니가 세상을 떠난 지 며칠 후 제니가 묻힌 낮은 언덕을 찾았었다. 그곳에 항상 제니의 심장을 지켜줄 비행 마크를 헌정하고 창가에 활짝 핀 꽃들을 이식해 심었다. 그 후로 나는 한 번도 비행을 하지 않았다. 그날의 비행은 오로지 나와 제니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둘 만의 소중한 약속과 비밀로 영원히 남겨두기로 했다. (물론 비공식적으론 가끔 외도를 한다. 빌리 아저씨가 그랬듯 모두 잠든 깊은 밤 절벽 위에서 점핑하는 것만큼 자유롭고 행복한 일은 없으니까! 그 비밀스러운 비행 이야긴 - 내가 사는 세상밖에는 너무도 많은 신비한 것들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보다 더 흥미진진한 또 다른 세상! 그 이야기는 정말 몇 날 며칠을 새도 모자란다. - 언젠가 다시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산티아고

소중한 친구 산티아고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부모님과는 극적으로 화해를 했다. 그것은 사랑스러운 첫 손녀를 부모의 품에 안겨 준 순간에 이루어졌다. 여전히 의사란 소명으로 살고 있는 산티아고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숭고한 새들 중에 하나다. 그는 '더 나은' 인공 날개를 개발하고 있으며 '날개 잃은 새들에게 희망'을 이란 단체를 이끌고 있다. 언젠가 그에게 나의 '은밀한 첫 비행'에 관해 말을 하려 했지만 머뭇거리는 듯한 나를 오히려 그가 말렸다.


"존, 괜찮아. 말하지 않아도. 난 그저 이렇게 너와 마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때 나는 그가 나의 '비밀스러운 비행'에 대해 어떻게든 알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비행(그가 알고 있는 한)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걸 그가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산티아고는 다만 인공 날개의 첫 이식 수술자로서 이런저런 불편함과 개선했으면 하는 점들만 말해달라고 했다. 늘 받기만 했던 산티아고에게 내가 작게나마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었다.


"어. 그런데 말이야. 요즘 늦은 밤에 어떤 이상한 새가 날아다닌다는 소문이 있던데... 존, 넌 뭐 아는 거 없니?"


그가 그 말을 할 때 내게 보낸 '찡긋 - 윙크'는 나를 웃게 했다.  


"오호. 그래? 모두가 잠든 한 밤에? 신기한 일일세.. 하하하."


할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는 여전히 서로의 가려운 등을 긁어 주시며 살고 계신다.


"아. 거기 말고 거기!"


"아니, 거기 말고 거기라니요! 도대체 거기가 어디에욧!"


"아니, 이 여자가! 몇 년을 같이 살았는데 아직도 나의 가려운 거길 몰라!"


장난과 농담이 절반이 두 분의 삶은 참 아름답다. 친구처럼 편한, 또 서로의 기댈 기둥이 되어주시는 것. 두 분이 여전히 저렇게 좋은 사이를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하시는 비결이었다. 나는 두 분이 오래오래 나의 곁에서 별처럼 계셔주길 바랐다. 하늘의 별이 되어도 나와 함께 계시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멀어지는 거니까.


빌리 아저씨

황금 깃털을 남기고 떠난 빌리 아저씨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아저씨에 대해선 의문이 많았지만 그냥 그대로 묻어 두기로 했다. 다만 아저씨가 남기고 가신 황금 깃털은 내가 아주 요긴하게 쓰고 있다. 아주 중요한 문서에 서명을 할 때만 황금 깃털 끝에 잉크를 묻혀 사용했다. 중요한 결정이 가장 진솔하고 올바른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재밌는 건 황금 깃털을 탐내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건 황금 깃털은 내가 간절한 소원을 품을 때만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즉 내가 없이 찬란한 빛을 발하지 않기 때문에 대개는 보통의 깃털에 금색 물감으로 색을 들인 거라 생각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신 건 아닐까?...'


언젠가 서쪽 하늘 붉은 노을이 유난히 짙던 날이었다. 마침 손에 쥐 고고 있던 황금 깃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아버지... 딱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아니 어찌 되신 건지 들을 수만 있어도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황금 깃털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건 좋은 싸인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나는 그 바람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나, 존

첫 비행으로부터 세월이 흘러, 그리고 나, 존은 비행을 못하는 새(세상에 알려진 바로는)로서는 첫 비행학교 교장이 되었다. 나는 다시 한번 비행학교의 역사를 새롭게 쓴 셈이다. 규정을 깨고 비행학교에 입학한 것 그리고 비행할 없는 새로선 첫 관제사가 된 것. 끝으로 '날수 없는 새'가 비행학교 교장이 된 것! 무려 3번째였다.   


'단지 하늘을 나는 것만이 새들의 일은 아니다!'


내가 교장실에 직접 적어 걸어둔 글귀다. 그건 비행훈련을 시작할 때 비행학교 교장선생님이 해 주셨던 말이었다. 어쩌면 나의 삶은 그 말의 참뜻을 이해하기 위해 돌아 돌아온 길이었다. 나는 그 가르침을 이곳 비행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심어 가고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단지 하나'가 아니라는 걸, 꿈은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반드시 길을 열어준다는 걸! 그리고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황금 깃털'이 있다는 걸 말이다.     


◇◇◇


"똑! 똑!"


집무실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여왔다.


"교감입니다.”


중요한 결정을 위해 황금 깃털을 사용한 후 케이스에 조심스레 담고 있던 차였다. 교감선생님이 노크하실 땐 늘 재미있는 일들이 있었다. 지난번 미스터리 치킨 씨의 입학 건만 해도 그렇다. 내게 가지고 오는 문제들이란 항상 결정하기 곤란한 것들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기도 하다. 케이스를 조심스럽게 서랍 속으로 밀어 넣었다.


'허. 참...'


황금 깃털을 볼 때마다 그 꿈에서 안내자가 말했듯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 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헛웃음이 났다. 중년이 된 이 나이에 아직도 철부지 소년같이 무언가에 기대어 소원을 바란다는 게 우스웠기 때문이었다.


"네, 들어오세요!"


교감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저 교장선생님. 어떤 분이 찾아오셨는데요. 노신사 분입니다."


"노신사요? 무슨 일이신지?"


교감선생님은 난처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직접 교장 선생님을 만나 뵙고 말씀드리겠다고 고집을 부리셔셔..."


"하하. 요즘은 절 찾는 분들이 부쩍 늘었군요! 그럼 들어오시라 하세요. 만나 뵈면 무슨 일인지 알게 되겠죠."

나는 집무실에서 손님을 맞을 때는 늘 일어선 채로 맞이 했다. 할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가르치신 방문자 대한 예의였다.


"딱. 딱."


제일 먼저 들린 건 지팡이 소리였다. 곧 머리에 중절모를 쓴, 흰 수염이 잘 정돈된 멋스러운 노신사 한분이 고개를 내밀며 들어오셨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쓰신 탓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한 손에는 지팡이 - 조금은 신기하게 생긴 - 를 쥔 채 걸었지만 그 조금 불편한 걸음걸이에서조차 품위가 느껴졌다.    


"어서 오십시오. 어르신. 일단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네. 교장선생님.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응? 목소리가?'


일면식도 없는 노신사의 목소리가 왠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어디선가 분명 만나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거나 아니면 순전히 나의 착각일 수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목소리를 혼동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가는 목소리에 귀가 더 기울어졌다.


"아무래도 모자는 벗는 게 예의 겠지요?"


자리에 천천히 앉은 노신사는 지팡이를 소파 옆에 기대 놓고선 천천히 모자를 벗으며 말했다.


'아! 설마...'


그런데 모자로 가려졌던 얼굴이 훤하게 드러나는 순간 나는 현기증 나듯 아찔해졌다. 내 앞에는 나와 똑 닮은 노신사가 앉아있었다. 나는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황금 깃털을 고이 밀어 넣어둔 책상 안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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