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넷 여행 이야기 37 : 2017 다시 인도
농촌 초등학교 Zilla Parishad Primary school 문화봉사활동(31일)
사람들은 표정을 잃고 삶은 메말라 보이는데, 아이들 눈망울은 맑게 빛이 난다. 생기를 저버리고 마른 장식 꽃들이 되어가는 풍요로운 내 나라 아이들을 떠올리니 혼란스럽다. 고단한 인도의 부모는 미쳐 아이를 돌보지 못하지만, 아이들은 별 불만 없이 스스로를 돌보며 명랑하게 자란다. 대가를 기대할 수 없는 일상의 자율성 때문에 종속적이고 자본적인 삶에서 자유로운 것일까. 풍선 하나로 온 세상 기쁨을 맛보고, 소박한 율동으로도 흥에 넘치는 이 아이들을 대체 어쩌란 말인가.
잘가온 넷째 날, Gandhi Research Foundation(8월 1일)
이른 아침 간디센터 정원을 걷는다. 어제의 화가 누그러지고 솟구쳤던 미움이 저만치서 뻘쭘하게 서성댄다. 명상에 잠긴 간디와 함께 여행의 시름을 잠시 내려놓는다. '왜 그래? 가 아니라, 그래 괜찮아.' 간디가 품고 있는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는 인도의 꿈이자 미래다. 큰 파도처럼 들이치는 세상의 이기와 탐욕 때문에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들의 미래와 꿈을 누군가는 지켜줘야 한다. 문득 가난한 사랑과 낡은 우정으로 함께해야 할 셋넷 아이들이 떠올랐다.
닥터 존이 일정에 없던 공연을 요청했다. 심심해하던 셋넷 참가자들은 반가워했지만, 숙소에서 와이파이를 쓰다듬던 원정대 한국 대학생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따지듯 물었다. 원래 예정에 없었잖아요.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르며 달래고 요청했다. 갑자기 만난 아이들은 어제 만난 아이들과 딴판이었다. 부와 신분이라는 최고의 영양분으로 잘 자라고 있는 인도 8 학군 청소년들은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저마다의 꿈들을 어쩔 수 없이 키우고 있었다. 해 질 무렵 펼친 공연은, 우당탕 준비와 조악한 조명으로 허전한 무대였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잘가온 마지막 날, Anubhuti International School 공연을 마친 뒤(2일)
마음이 이쁘면 예쁜 꿈 꾸고 이쁜 꿈 꾸면 하늘 높이 날아다닌다고 김창완이 노래했다. 어제 anubhuti 학생들과 교사들은 환호와 열광으로 잘가온 밤을 뜨겁게 채웠다. 우리가 이쁜 꿈을 건넨 건가. 각자의 꿍꿍이들로 인도에 온 우리가 착한 꿈이었나. 가성비 착한 여행경비에 홀려 약속했던 국제봉사활동은 대충 뒷전인 채, 와이파이 여행에 사로잡힌 우리가 맑고 다정한 꿈들이었을까. 시바신의 도움으로 뜻밖의 공연 결과를 선물로 받았을 뿐, 마음은 게으르고 꿈은 얄팍하고 이기적인 여행이었던 거야. 그건 결코 괜찮다고 두리뭉실 지나칠 너그러운 풍경이 아니다. 평화연습 한답시고 낯선 나라에 와서 어설프게 사기 치지는 말아야 해.
부끄러웠다. 마음이 불편하고 어지러웠다. 조명이 꺼진 무대에서 어색해하며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했다. 어쩌면 먼 훗날, 찌질한 인생을 살아갈 우리가 오늘의 영광과 우정을 기억할 수 있을까. 먼 나라에서 체험했던 감동의 기억들이 우리들 가여운 삶을 평화로 충만하게 이끌어줄 수 있을까. 용기를 내어 너에게로 가면 슬며시 와이파이 내려놓고 나에게로 다가올 수 있으면 좋겠다. 서로를 마주 보는 아름다움이 우리 삶의 이유가 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