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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Jun 25. 2020

뷰티플 데이즈 & 상류사회

셋넷 영화이야기 14 : 운명과 욕망


상류사회에 뷰티플 데이즈는 없다


2017년 대한민국, 두 여자의 모진 삶이 엇갈리고 그 사이로 한강이 흐른다.      

위대한 장군님이 하사한 가난에 팔려간 북조선 여자는, 중국의 변방 더 어둡고 두터운 가난 속에 되 팔린다. 그도 모자라 다시 술집에서 몸을 팔며 마약을 운반하던 그녀는 천신만고 끝에 대한(大韓)의 국민이 된다. 하지만 크고 찬란한 민국(民國)이 그녀에게 선사한 건,  조금 더 세련된 술집과 덜 상스러운 수놈이다. 초점 없이 흐릿한 일상에서 기억 없는 하루살이를 살던 그녀에게 낯선 사내애가  불쑥 나타난다.    

 

한강 건너 사는 많이 세련되어 보이는 여자는 거대한 미술관 부관장이지만, 삶은 숨 막히도록 위태롭다. 마약 같은 돈을 지혜롭게 세탁해주며 영혼을 팔고, 관장이 되기 위해 주저 없이 몸과 마음을 내준다. 그도 모자라 대중의 인기를 끌던 대학교수 남편을 타락한 정치꾼으로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더 높은 곳을 향한 욕망으로 대담하게 취해가던 그녀에게 옛 애인이 파리에서 사뿐히 날아든다.     


낯선 사내아이는 그녀가 팔려 다니던 중국 변방 어느 길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이는 병든 아비가 쥐어준 빛바랜 사진을 품고 무작정 그녀를 찾아왔다. 이렇게 살려고 날 버렸냐고 절규하는 어린 아들에게, 낡은 양말처럼 삶을 지탱하던 그녀가 줄 것이라고는 타다만 삼겹살 몇 점과 싸구려 양복이 전부였다.    

 

한강 건너편 그녀가 욕망하던 상류사회는, 관장이 되려고 옛 애인과 살을 섞고 남편의 타락을 외면하던 그녀를 비웃고 조롱할 뿐이다. 자신만이 세상에서 가장 부족해서 몸을 팔아서라도 부자가 되어야 하고, 자기만이 이 나라에서 제일 억울하기에 영혼을 팔아서라도 권력을 잡아야만 하는 대한민국 '상류사회'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그곳은 지옥의 성대한 잔치집이다. 상류사회 인간들에게 내려진 지옥의 형벌이란, 설렘 없이 먹어야 하고 부끄럼 없이 교미만을 하면서 영원히 잠들지 못하는 것이다.      


허름한 양복을 입혀 서둘러 떠나보냈던 사내아이가 다 자란 사내가 되어 다시 여자를 찾았을 때, 그녀에게는 작은 아이가 생겼다. 사내는 소박한 밥상 건너 엄마의 새 가족과 함께 뜨거운 찌개를 흠뻑 떠서 밥에 비벼먹으며, 자신을 버린 그녀의 기구한 삶을 용서한다. 비록 산산이 깨져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이지만, 초라한 연민의 조각들을 받아들이는 아들과 엄마는 아름답다. 그들이 엮어가는 시간은 이제 막 '뷰티플 데이즈'다.



*제목 사진.. 2011년 창작극 5 '이제 그 풍경을 사랑하려 하네.' 홍대 공연, 물질만능주의 세상 풍자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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