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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May 29. 2020

인어공주

셋넷 영화이야기 11 : 사랑과 결혼

         

그땐 사랑이었는데한때는 설렘이었고세상 전부였는데... 지금 그 사랑 어디 있는가. 설렘은 오간데 없고전부였던 세상 사라져 우리 사랑 초라해졌네.     

 

한때 인어공주였던 소녀의 바다는 사라지고, 파도소리 잊혀진지 오래다. 동네 목욕탕에서 한 사람당 만원을 받고 때를 밀고, 바위 틈 숨어있는 전복 대신 동네 사람들 때가 둥둥 떠다니는 탕 물에서 옛 사랑의 기억을 더듬거릴 뿐이다. 어느덧 그녀는 욕을 잘하고, 침을 곧잘 뱉고, 구운 계란 하나 값을 더 받기 위해 머리끄덩이를 잡고 드잡이를 한다. 자신을 설레게 하는 우편배달부를 만나기 위해 어린 동생에게 편지를 쓰게 하고 용돈을 주었던 그녀, 홀로 동생을 키우고 육지의 밭과 바다의 밭을 오가며 씩씩하게 까만 웃음을 쏟아놓았던 인어공주는 어디에 있는가. 그녀는 어디로 갔는가.     


인어공주를 사로잡았던 그녀의 왕자님은, 인어공주의 바닷가에서 뭍의 소식들을 날라다주는 착한 우편배달부였다. 글 못 읽고 쓰지 못하는 인어공주를 위해 책과 노트와 연필과 지우개를 장만하고, 그녀의 맑고 투명한 어둠을 환하게 이끈다. 그랬던 그가 친구 빚보증 때문에 가족의 미래를 몽땅 날리고, 유령처럼 한구석에서 줄담배를 피우다 그녀에게 사정없는 욕지거리를 듣는다. 우편물을 분류하는 너저분한 우체국 공간 한 켠에 병든 몸을 감춘 채, 낡은 티비 코미디를 보며 무채색 웃음을 흘린다. 인어공주를 사로잡았던 착한 우편배달부는 어디에 있는가. 그는 어디로 갔는가.     


오랜만에 만난 셋넷 졸업생 부부의 삶이 위태롭다. 살아보니,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거더라. 사랑이 지나가면, 봄부추 자라듯 피어나는 자식들 순한 눈망울 보며 눈물겹게 살아지는 거더라. 아이들 엄마는 바다 속 자신만의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았던 인어공주였다. 그대가 간절하게 매달렸던 인어공주가, 욕 잘하고 아무데나 침 뱉고 가족을 위해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머리끄덩이 잡으며 악착같이 사는 그녀였다는 걸 기억하는가. 그녀의 모든 걸 한때 남김없이 미치도록 좋아했다는 것도...     

 

그대가 품고 있는 가족에 대한 책임과 미래에 대한 소망이, 그녀에게도 똑같이 스며있다는 걸 기억하는가. 서울대와 돈을 부적처럼 여기며 가족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 남편과 자식을 다그치던 내 어미도 한때는 눈부신 인어공주였지. 정이 철철 넘치고 주변 사람과 이웃에게 베푸는 손이 바다처럼 컸던 인어공주였어. 돌고래처럼 생명의 바다를 거침없이 누비던 인어공주들에게 내 아비도 빠지고, 그대도 홀딱 반했던게지.


인어공주가 그녀의 왕자님에게 부치지 못했던 오래된 편지를, 그대들은 날마다 띄워야해.

‘만이 보고 싶습니다. 나의 사랑 인어공주여!'

'만이 사랑합니다. 천사가 보내준 우편배달부여!'

사랑을 얘기할 때 늦었다는 말은 없다.(레터스 투 줄리엣) 



*제목 사진..2005년 변산캠프 '하나둘 셋넷 평화의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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