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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Sep 04. 2020

건축학 개론

셋넷 영화이야기 24 :  기질(자기 사랑)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은 천천히 흐른다.


데카그램(일명 에니어그램)을 통해 자신들의 기질을 새삼 돌아보았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주도권을 쥐고 밀어붙이는 행동가 유형이 나왔다. 단도직입적이고 단호하다, 권위 있다, 자신감이 넘치고 성실하다,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안정감을 준다, 남다른 행동력이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유념해야 할 단점들도 많았다. 남을 조정하려 한다, 지나치게 반항적이고 오만하다, 고집이 세다,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신만의 정의를 너무 추구한다,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자신의 약점과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기막히게 맞는다면서 환호했다. 


영화 <건축학 개론>은 젊은 날 순수했던 사랑을 되짚어가는 남녀의 거울 이야기다. 사랑이 남긴 상처들이 어렴풋하게 아물며 바쁘게 살아가던 그들이 다시 만나고 첫사랑이었던 그녀의 부탁으로 바닷가에 집을 설계하던 주인공 남자는 젊은 날 기억 속 골목길을 떠올린다. 그 골목에는 친구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오열하는 한 젊은이의 깨진 가슴이 흩어져 있고 첫눈 오는 날 만남을 기다리다 빈 마당을 가로지르는 그녀의 차가운 입김이 허공을 떠다닌다. 스스로 계획하고 설계한 것인 양 의기양양 살아가지만 내면의 기질에 사로잡혀 고집스럽게 자기 안에 갇히고 만다. 주인공 남녀도 눈먼 기질에 사로잡혀 사랑을 잃고 시든 사랑의 황폐함으로 가슴을 다친다. 

     

영화 밖 <인생학 개론>은 뜻밖의 난처한 상황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해결된다. 가문의 영광과 품고 있는 수저의 색깔이 개인의 사랑을 조작한다. 양 극단으로 치닫는 세상은 사람의 기질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순하게 받아들이라고 명령할 뿐이다. 기질, 자기다움, 자기 사랑은 마침내 길을 잃고 도처를 떠돈다. 자신을 만날 수 없으니 나를 사랑할 수 없고 너에게로 다가갈 수 없다. 나를 나답게 하는 기질과 매번 어긋나고 사랑해야 할 기질이 낯설고 부담스러워 어쩔 줄 모른다. 주인공 남녀의 젊은 시절 사랑처럼 매번 엇갈리고 상처만 가득하다.     

  

슬픔을 기억할 골목길은 끊어진 지 오래고 마당 깊은 집도 사라졌다. 텅 빈 골목에는 자신의 기질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영혼들이 불안한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외로워한다. 알퐁스 도데의 별 같았던 사랑이 잠시 쉬어갈 내 어깨는 생존을 위협하는 거친 시련들로 앙상하다. 이제는 그대가 더 이상 새롭지 않아 습관처럼 핸드폰을 뒤적일 뿐.   

  

철없던 나의 모습이 얼만큼 의미가 될 수 있는지 많은 날이 지나고 너의 마음 지쳐갈 때 내 마음속으로 쓰러져가는 너의 기억이(기억의 습작).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은 느릿느릿 입 맞추며 수줍은 골목길을 기웃거리는데... 대체 어쩌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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