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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May 05. 2021

히말라야

셋넷영화이야기59  : 우정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생존의 조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지 않았던 군대에서 난생처음 타 본 비행기가 문짝 없는 수송기였고 함부로 지상에 던져졌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낙하산이 무사히 펼쳐지기 전 6초의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사랑해본 적 없는 낙하산에만 매달렸다. 그녀도, 부모도, 친구도 떠올릴 수 없었다. 짧은 삶을 참회할 시간조차 없었다. 생존이란 무엇인가?   

   

삶을 포장했던 대부분의 모습은 두려워했던 몸짓이었다. 한 번도 뜨거웠던 적 없이 대학에 진학해서 유행처럼 시대를 향해 적당히 개겨봤지만 세상을 대적할 용기가 없었다. 자본주의 시장은 창창한 미래를 무겁게 눌렀고 우아하게 도피했다. 쫓기듯 들어간 시민운동단체에서 화풀이하듯 동기 없는 몰입을 했다. 자본주의 시장 밖에서 명예로운 삶이라도 보상받고 싶었다.     


나에게 한껏 기대를 품었던 부모는 천천히 떠나갔고 그만큼씩 우정에 집착했다. 그리고 딱 그 정도의 외로움이 술잔을 채웠다. 낯선 길거리에서 익명의 분노를 습관처럼 배설하면서 적당히 슬픔을 방어했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미친 듯이 프로그램으로 일상을 채우며 나를 기억하지 않으려 했다.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시대를 꿈꾸며 정의로운 삶을 기웃거리다가 탈북 아이들을 만났다. 이방인 아이들과의 어색한 만남과 힘겨운 소통으로 매번 갈등했지만 늘 꿈틀거리고 새로운 길이어서 행복했다.      


힘겹게 결단한 탈서울의 삶은 적막하다. 이방인 아이들도 없고 고마운 이들도 곁에 없다. 나를 중심으로 소통하고 관계 맺기에 익숙했기에 벗들이 떠난 여백의 삶은 여전히 어색하다. 그사이 천천히 낡고 지쳐간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생존의 질문, 이제 무엇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서로에게 상처 받지 않기 위해 가족은 너무 멀리 있다. 상처 받지 않는 게 생존인가. 생기를 잃어가는 우정의 벗들은 서슬 퍼런 돈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돌보지 못한다. 살아남는 게 생존인가. 젊은 날들을 채웠던 가슴 저린 꿈들이 더 이상 우릴 설레게 하지 않는다. 근사한 일들을 벌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걸까. 걱정 말라고? 후회하지 말라고? 잊히지 않을 거라고? 헛된 꿈일지언정 멈추지 말라고?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생존하고 싶다. 지금 내게 절실한 생존의 낙하산은 어디에 있는 걸까.     


실화 영화 <히말라야>는 산중에 갇힌 동료를 구하기 위해 무모하게 도전하는 산사람들에게 생존이란 무엇인지를 처절하게 보여준다. 저들에게 높고 깊은 고독에서의 생존은 외투와 식량과 텐트가 아니었다. 생존의 마지막 조건인 부족한 산소 2/3를 대신할 수 있었던 건 동료에 대한 우직한 믿음이었다. 절대 고독으로 향하는 그들을 외롭지 않게 지켜줬던 건 계산 없이 나눈 우정이었다. 삶의 길목에서 만났던 뜻밖의 난관들을 매 순간 거역했던 건 처음 사랑을 지켜려 했던 호방한 눈물이었다. 


내 삶의 히말라야에서 지속할 삶의 이유를 지켜준 생존의 힘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그물망이었다.   



* 제목 사진 : 셋넷학교 개교 10주년 기념 여행 히말라야 랑탕(2014년 12월) 

* 셋넷 영화이야기는 61회로 마칩니다. 이 봄이 가면 여름 오고 가을 겨울이 어김없이 오듯이 영화도 우리 곁을 우직하게 지켜줄 겁니다. 나를 나답게 하고 당신과의 아름다운 소통을 이어 줄 감수성을 게을리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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