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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Jan 22. 2021

작은 신의 아이들

셋넷 영화이야기 44 : 소통


한 번뿐인 인생이다. 착한 척하지 마라.


바람결에 흐느끼듯 몸짓을 한다.두 눈을 감고 남들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흥에 취해 춤추는 그녀는 멋진 남자와 데이트 중이다. 와인을 곁들인 우아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댄스 음악이 흘러나오자 연인들이 홀에서 춤을 춘다, 여자가 먼저 춤을 청하지만 남자는 우물쭈물한다. 엉거주춤하게 춤추던 남자는 여자가 뿜어내는 황홀한 춤에 취해 그녀의 춤추는 모습을 바라만 본다.

    

춤추던 그녀는 말하지 못하고 소리도 듣지 못하는 장애인이고 장애인학교를 졸업한 뒤 학교에서 잡일을 한다. 넋을 잃고 춤을 지켜보던 남자는 이제 막 부임한 장애인학교 교사다. 그는 그녀의 길들여지지 않는 순수함에 끌리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바흐의 음악을 들으며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녀는 그에게 요구한다. ‘내게 바흐 음악을 보여줘요.’      


고집스럽게 자기 방식으로 표현하는 그녀를 정상인들의 소통 세계로 끌어내려는 남자의 시도는 번번이 빗나간다. 자신에게 익숙한 소통방식을 일방적으로 요구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지켜온 소통을 놓지 않는다. 그녀와 헤어진 남자는 한 밤중 수영장 물속으로 들어가 소리가 끊어진 세계의 소리를 듣고자 애쓴다. 두 사람은 소리와 정적 너머 제3의 소통방식을 찾아 나선다. 참된 사랑의 방식이다.


지금 여기 분단의 땅에서는 탈북해서 우리 곁에 온 사람들을 북한 사람이라는 관념의 우리 안에 가둬놓고 저들이 쓰는 말과 표현들을 이상하다고 수군댄다. 영화의 주인공 남녀가 비껴갔던 사랑의 방식을 강요하면서 상대방을 자기 스타일과 방식으 길들이려 한다. 자신에게 익숙한 오래된 습관을 누군가 일방적으로 관리하고 정체성을 조작하려 한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우리에게 익숙한 고향 말들이 있듯이 저들에게도 편안한 동네 말이 있다. 우리에게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향수 음식이 있듯이 저들에게도 고향을 잊지 못하게 하는 눈물겨운 엄마의 음식이 있다. 우리 가족을 성스럽게 만들었던 독특한 언어의식이 있듯이 가혹한 환경에서도 저들 생명을 지키던 끈끈한 표현방식들이 분명 있다. 영화 속 그녀가 보고 싶어 했던 음악처럼, 저들의 생의 음악을 귀담아듣고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사랑의 감정으로 춤추던 그녀의 얽매임 없는 몸짓에 사로잡힌다. 셋넷 아이들이 창작극 공연에서 추던 춤을 기억하며 자신이 동의한 적 없는 집단들의 시선에 쫄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들 삶에 군림하려는 권위에 위축되지 않고 자기 다운 몸짓을 당당하게 펼치기를 응원한다. 새해엔 누구를 위해서 미루거나, 비교하면서 미련두지 말자. 내게 주어진 삶을 축복하는 춤을 추고 거침없이 노래하자. 한 번뿐인 인생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 제목 사진 : 2007년 대안학교 연합캠프 '오르다'(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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