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리 Oct 14. 2019

수이와 이경 이야기

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을 다시 읽었다.


작년 이 소설을 읽으며 동네 카페에서 주륵주륵 울었던 기억이 선연하다. 수이와 이경 이야기가 내게 상기시키는 사람이 누군지는 너무 분명하다.


내게 그만한 밀도의 관계를 맺었던 사람은 분명히 너뿐이다. 모든 구절 구절이 너를 떠올리게 해서, 나는 이 단편을 읽을 때면 네게 연락하고픈 마음을 억누를 길이 없다.


어쨌든 네가 있으니까 내가 스스로를 외로운 사람이라 깎아내릴 근거가 없었다. 네가 실은 나와는 꽤 다른 사람이라 해도 그것이 너와 이미 형성된 관계에 흠을 낼 어떤 이유도 되지 못했다. 나는 네가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라 믿었다. 아마 그게 너와 내 관계가 이렇게 된 이유다. 네가 어느 날 나의 메신저와 SNS를 차단한 이유다.


네가 그 글을 내게 보냈다는 게 왜 내게 그렇게 상처가 됐는지 생각해 봤다. 네가 나를 이해해 주지 못했다고 생각해서였다. 왜 그런 오만을 부렸을까. 네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고, 혹은 네가 나를 나보다 잘 알고 있었고 오히려 그걸 내가 모르는 일일 수도 있었는데, 왜 난 좀더 내 무지를 넓은 범위에서 인정하지 못했나.


안다는 것만으로는 내 마음을 어찌하지 못했을 거다. 그 시절에 우리가 멀어진 것은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전부 다 내 탓이라는 생각마저도 오만이다. 너와의 관계는 나 혼자서 책임진 것이 아니었기에. 나 혼자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나 혼자 끝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 그래프가 아닌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