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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Mar 08. 2020

혹시 페미니스트예요?

2020.3.8.


혹시 페미니스트예요?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내 주변에는 이런 질문을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혹시 지구가 돈다고 믿어요? 이 정도 질문을 받으면 비슷한 기분이 들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는 대체 뭘까. 그럼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묻는다면 이 사람은 손사래를 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는 좀 더 극렬분자(?)인가?

어쨌든 가장 안전한 의미로서의 페미니스트든, 이 사람이 혹시라는 말까지 붙여 가며 조심스레 언급하는 ‘페미니스트’든, 나는 죄다 해당되는 것 같았다. 고민 끝에 다소 뚱한 말투로 대답했다. 어어 어이없다는 뉘앙스 한 스푼 넣는 거 잊지 말고. 네.

나머지 대화는 거의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그에게 설명하는 과정이었다. 말끝마다 내게 예쁘다는 말을 하던 그에게 ‘그거 나름 칭찬이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사실 별로 기분 좋지 않다’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여자를 너무 외모로만 평가하는 맥락이 분명 있고, 종종 나의 다른 요소들이 죄다 무시되고 예쁜 여자, 혹은 예뻐야 하는 여자로만 취급되는 상황이 있는데 나는 그것이 매우 싫다고, 외모 평가를 너무 중요하게 여기는 풍조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당장은 그 외모 평가로 받는 칭찬도 탐탁지 않다고, 나 역시 언젠가 외모주의의 맥락이 충분히 옅어져서 예쁘다는 말을 한 점의 찜찜함 없이 들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긴 설명을 끝내자 그가 말했다. 그냥, 그런 생각을 안 하면 안 돼?

이번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안 할 수 없지. 이미 생각하게 된 이상 절대 되돌아갈 수는 없거든. 계속 생각해야 내가 듣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내가 건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채고 살아갈 수 있거든. 그래야 ‘기자 아가씨가 이렇게 예뻐도 돼요?’ ‘아 이 분? 어 내 마누라’ 이런 말이 모욕이라는 걸 깨닫고 표정이라도 굳힐 수 있지. 생각을 멈추지 않을 거야. 오히려 더, 더 생각할 거야.





그 일이 벌써 삼 년 반 전이다.


그리고 작년, ‘20대 남자 현상’ 특집기사를 쓴 천관율 기자의 강연에서 조금 더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현재 한국에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인식하지 않는 여성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설마.

천관율 기자는 20대 남성의 마이너리티 정체성에 대한 긴 분석 기사를 쓰면서 ‘페미니즘 찬반 지수’라는 간이 지표를 만들었다.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지표는 아니고, 맨 처음 설문조사에 들어 있던 208개 질문 중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를 직접 물어본 질문에 대한 대답만 따로 가려 뽑은 것이다.


1. 나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
2. 페미니즘은 남녀의 동등한 지위와 기회 부여를 이루려는 운동이다.
3. 페미니즘은 한국 여성의 지위 향상에 기여해왔다.
4. 페미니즘은 여성을 피해자로만 생각한다.
5. 페미니즘은 남녀평등보다 여성우월주의를 주장한다.
6.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에 거부감이 들 때가 있다.


여기서 1~3번 문항에 강하게 긍정하면 +2로, 강하게 부정하면 -2로 매긴다. 4~6번 문항에 강하게 부정하면 +2로, 강하게 찬성하면 -2로 매긴다. 각각의 점수를 더하면 최대 +12점부터 -12점의 점수가 나온다. 20, 30대 남성을 제외한 모든 계층의 평균점수는 -1에서 1 사이였다. 20대 남성의 평균은 -6으로, 이 정도로 독보적인 수치라면 공고한 정체성 집단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게 천 기자의 주장.

그날 강연에서 천 기자는 참여자들에게 즉석으로 이 지표에 따라 점수를 매겨볼 것을 요청했다. 나는 12점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강연에 올 정도의 사람이면 아무리 낮아도 6점, 평균 10점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나를 제외한 그 자리 모든 여성들은 5, 6점이었다. 그조차도 높은 거란다.

천 기자가 설명해준 비하인드는 꽤 충격적이었다. 보통은 3, 4번 같은 문항이 정확하게 ‘페미니즘 찬반’을 가리기 힘들다는 지적이 들어오고, 이에 대해서는 동의한단다. 하지만 여성들의 점수를 일관되게 낮춘 문항은 다름 아닌 1번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천 기자가 지금껏 취재를 통해 입수해 온 데이터만 놓고 보자면 많은 여성이 페미니스트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게 됐다는 뜻이다.

이럴 때마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부둥부둥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된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안 이후로 단 한 번도 내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생각한 적 없다. 그럴 수가 없지. 언제까지나 불완전한 페미니스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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