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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것만으로 삶을 빗질하는 글

2025.6.20.

by 혜리

밴쿠버에서 맞는 세 번째 아침. 드디어 시차 적응이 됐는지 6시간 이상 자는 데 성공했고 몸도 한결 가벼웠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커피와 베이글을 챙겨 먹고, 전날 코라가 보내준 에세이집 초고를 읽었다.



그간 한국 스타트업 업계의 셀럽 코라, 채널톡의 정신적 지주 코라만 알던 내게는 낯선 이야기였다. 읽으면서 중간중간 울고, 내밀한 글을 세상에 내보이려는 용기가 멋지다는 생각도 하다가 불현듯 나도 캐나다에 머무르는 동안 이런 글을 쓰고 싶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글 써서 먹고사는 신분이 되고 나서는 한동안 손대지 못했던, 내 이야기를 하는 글이.



처음으로 세상에 글이라고 할만한 것을 내보였던 게 2018년이다.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 정기적으로 운영하던 독립출판 수업을 들으면서 몽골 여행기를 담은 책을 만들었다. 이후에 그 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박박 고쳐서 개정판을 만들고, '작가님' 소리에 기쁨을 느끼며 또 다른 책을 만들고,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북페어에 나가 책을 팔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쓰던 글은 한국에서 소위 '에세이'라고 부르는 글이었다. 누군가는 일상 감정을 담은 글을 폄하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글쓰기의 최전선' 같은 책을 읽으면서 수건으로 눈물을 닦던 인간이니까 안다. 세상에는 쓰는 것만으로도 삶을 빗질하고 치유하는 글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글은 비슷한 사람들에게 가 닿아 똑같은 작용을 한다는 것을. 최소한 나는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마다 글이 있었다. 쓰면서 울고, 읽으면서 울고, 깨끗해진 시야로 진정하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십 대와 이십 대를 보냈다. 어쩌면 그래서 글쓰기를 놓을 수 없는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 직후 나는 눈물, 감정, 에세이, 뭐 그런 것과는 정 반대편에 서 있는 글들을 쓰며 4년을 보냈다. 글 쓰는 직업을 갖는 동시에 스타트업 업계에 들어오게 됐고, 그 이후로는 원하는 궤도에 안착하기 위해 바쁘게 일했다. 나를 긴 호흡으로 돌이켜 보는 글을 쓸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좀 더 미친 기획, 쩌는 리서치, 대박 섭외를 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사실 정보성 글과 에세이의 구분이란 의미 없고 그 경계 위의 글을 쓰는 게 내 지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고요하게 글을 써 보니 알겠다. 한동안 나는 에세이의 스위치를 꺼 둔 상태였다.


덕분에 나는 독립출판 작가 시절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에세이의 아름다움과 힘만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아웃스탠딩 입사 인터뷰 때 나를 가장 두렵게 만들었던 질문이 '에세이만 썼던 것 같은데 정보성 기사를 쓸 수 있겠어요?'였던가. 실체 없이 추상적인 감정만 묘사하는 글을 쓴다는 열등감을 갖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질 사람은 없다. 그리고 지금은 오히려, 그토록 내 마음을 직시하고 고스란히 문장으로 빚어낼 줄 알던 시기의 근육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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