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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본 한국에서의 삶

2025.6.25.

by 혜리

밴쿠버에 온 지 9일째. 오전에 잠시 노스 밴쿠버 공립 도서관을 둘러보고, 주변 카페에 들어와서 노트북을 폈다.



밴쿠버에 머무르기로 한 시간이 절반 이상 지났다. 이제 슬슬 '돌아가면 어떻게 살지?'를 고민할 때가 됐다. (원래 여기서 글을 여러 편 발행하면서 다음 스텝의 단초를 찾아 보려고 했는데,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놀기만 했다...)



캐나다의 침엽수림과 공원을 돌아다니면서 머리가 깨끗해져서 그런가, 이상하게도 모든 게 그렇게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한국 스타트업 씬에서 기자/에디터로 활동하는 나? 제법 멋져 보이기까지 하다. 그대로도 멋있는데 왜 '그 다음'을 모르겠다면서 그렇게 난리쳤던 거야.


아마도 나는 초조했던 거 같다. 항상 '압도적으로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글 한 편을 쓰더라도 남들이 읽으면 '이 사람 누구야?' 이름을 찾아보고, 기억할 만하고, 남들에게 공유할 만한 그런 글을 쓰는. 평범한 콘텐츠 제작자 이상의 시도를 이어가는. 하루라도 그전에 했던 일을 똑같이 반복하면 고여 있는 것 같고, 평범해지는 것 같았다.


사실 하루 이틀, 아니 몇 년쯤 비슷한 시도를 이어가면서 그 자리에 있더라도 그게 가치 없는 삶은 아니었을 텐데. 고여있는 게 아니라 축적하고 있는 시간이었을 수도 있는데. 방향이 없으면 찾으면 되고, 나아가고 있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움직이면 됐는데. 어쩌면 다음에 또 다시 '방향 없음'의 시기가 찾아온다면, 그때는 좀 머물러서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오랫동안 내 삶의 목표는 '글 써서 먹고사는 것'이었다. 그게 이뤄진 다음에는 '쩌는 작품을 만드는 것' 외에 딱히 바라는 게 없었는데, 이제는 하나 더 생겼다. '글쓰기를 행복하게 여기면서 사는 것'. 아마도 이런 목표라면, 달성했다고 해서 막막해지지는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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