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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찌네형 Apr 03. 2021

자기 평가에 나는 최하점을 주었다

유래 없는 코로나 시대 속에서

마스크를 챙긴다.

일본의 오랜 생활에서 마스크는 왠지 독특한 일본문화를 대변하는 듯한 인상이 컸던 나에게, 마스크는 그저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의 현시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코로나는 왔고, 나를 포함 사회 전반을 바꿔놓았다. 회사는 어떠한가. 재택근무와 출근시간 조정으로 노력을 하고, 사무실에서 조차 마스크는 벗지 않는다. 모순되게도 밥 먹을 때는 마스크를 벗어야 하기에 감염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만, 지금은 그냥..... 어느 정도는 익숙해지지 않았나 보다. 코로나보다도 나의 삶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린 판단이 아닌가 한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업을 포함, 많은 회사들이 힘들어했고, 지금도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백신으로 인한 장밋빛 소식은 간혹 들려오지만, 아직은 먼 얘기가 아닌가 한다. 물론 희망을 가진다. 하지만, 내가 속한 회사는 세상의 흐름과 전혀 반대였다. 오히려 코로나가 회사의 활력을 주었고, 우리 회사는 지난 1년간 곳간에 물건이 쌓여본 적이 없다. 매일 재고가 없어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된 셈이다. 우스갯소리로, 곳간에 쓰레기조차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올해 나의 평가에 최하점을 주었다. 어떻게 점수를 넣어야 할까 고민을 계속했지만, 실상 내가 한 게 없다. 코로나를 등에 업고, 그냥 혼자 호의호식한 느낌이다. 그저, 회사가 잘되니 나에게 나오는 월급에 만족하면서 생활해야 하나... 싶기도 하면서도, 대기업의 성과급 문제나 게임업계의 임금 상승 얘기가 신문을 도배하면, '나도 저래야 하는 건가..'라고 생각하게 된다.


한동안 고민하다가, 나는 자기 평가에 최하점을 주었다. 해외영업을 담당하는 내가, 올해는 해외에 나가지도 못했다. 그 이전에, 나가봐야 팔 물건이 없었다. 팔 물건이 없으니, 왕복 자가격리 4주를 감수하며 나갈 필요가 없다. 물건을 알아서 잘 팔렸다. 임원들을 그걸 보고, '그때 깔아놓은 게 이제 빛을 발하는구나.. 우린 그냥 하베스팅(harvesting) 하면 되네.'라면 좋아하셨지만, 영업이 영업을 하지 않고 벌어들리는 수익에 대해, 내 자신에게 '그래서 너는 뭘 했느냐?'라고 자문해본다면, 난 한 게 없다. 지난 1년 동안 수량을 더 늘려달라는 컴플레인에 대응한 게 전부였다.


'지금 공장 앞으로 갈 거니깐, 최대한 물건 좀 맞춰주세요.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A사한테는 어제 컨테이너 두 개 더 나간 거 아니에요?'

'팀장님. 지금 공장 앞인데, 저 물건 못 받아오면 회사에 들어오지도 말래요. 부탁 좀 드립니다. 살려주세요.'

'진짜 너무들 하시네... 잠이 오십니까? 내일 오전에 우리 라인 멈춥니다. 사장님이 가만히 있을 거 같으세요?'  


마지막 대화는 내가 새벽 2시쯤에 받았다. 내가 잘 못 한 거라곤, 그들이 주는 분기별 예상물량치에 더 많은 재고 운용을 하지 않은 것과, 그에 맞게 우리 공장의 라인을 증설하지 않은 것이라 쓴웃음을 내본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올해도 이런 흐름은 유지될 전망이다. 전망이란 게 작년부터 올해, 그리고 내년까지, 예측하기가 너무 어렵다.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 준비가 안된다. 함부로 라인을 증설하기도, 사람을 늘리기도, 생산능력을 추가로 늘리기 위한 활동조차도 조심스럽다.


내년에도 나는 보나 마나 자기 평가에 최하점을 줄 것 같다. 그전에 금년 목표를 설정해야 하는데, 보나마나 물건은 잘 팔리겠지만, 내가 뭘 해야 할지가 보이지 않아 막막하다.

물들어왔을때 노저어야하는 걸까 하면서도 쓰잘데없이 남아있는 내 소심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배부른 소리 같아, 그렇지 않은 환경에 있는 분들에게는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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