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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찌네형 Nov 08. 2019

아이가 태어나고 자람에 있어.

나에겐 소중한 존재

예정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아내는 답답했는지, 평소 잘 하지 않는 산책을 권했다.

불쑥 나와있는 배때문에 다소 뒤뚱이는 아내를 잡고, 한발한발 걸으면서, 아주 조금한 예외라도 벌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빌어봤었던 기억이 있다. 그날 걸었던 그 길의 낙옆들의 바스락 소리조차도 혹시나 아내의 발을 통해 뱃 속으로 크게 전달되지 않을까, 그렇게 점점 나와 아내가 아닌, 또 다른 사람을 아무 무척이나 걱정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냥 모두 무사히 잘 끝나길 바라는 남편의 마음이였다.


그날, 우리의 산책에 힘을 받은 아이는 새벽부터 나가겠다고 엄마를 힘들게 했고, 기나긴 새벽시간이 흘렀지만, 아이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너무 힘들었는지, 처음부터 거부감을 보이던 무통주사도 두번이나 맞았지만, 세상은 그 아이에게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느낌이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그날 아침, 당황한 나의 모습과는 달리, 능숙한 간호사들의 움직임과 너무도 익숙하게 움직이던 의사의 몇 번의 말들이 오가며 "읍! 읍!"하는 소리와 함께, 그 아이는 세상의 문을 열고 나와주었다. 다소 긴 산통으로 인해, 아내는 무척 지쳐 있었지만, 모두가 무사히 잘 끝난 이날의 기억을 돌이키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순간인지 모른다.  


"안녕...내가 아빠란다"

.....


그렇게 아이는 자라고 자랐다. 다만 그 자람의 속도가 아빠의 생각과 많이 달랐다. 아빠의 둥근 배위에서 땀흘리며 자는걸 좋아하던 우리아이는, 아빠를 기다려주지 않고 너무 크게 자라나고 있다. 요즘도 불쑥불쑥 낫설고, 그 옛날 우리아이는 어디 갔으며, 갑자기 이렇게 큰 아이가 내 앞에 있는지, 순간적으로 당황하는 상황도 오긴 한다.


나는 그런 아이가 좋다. 이건 좋음을 떠나서, 뭔가 나와 같이 살고 있는 동일한 존재로 보는게 맞을 것이다. 나는 버릇처럼 아이에게, [아빠하고 같이 있을때는 책을 읽으면 안되고, 공부를 해서도 안된다. 아빠하고 같이 놀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또, 요즘 아빠들하고는 다를지 모르지만, [아빠는 공부를 잘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무엇보다 너가 건강한게 우선이다. 학교에서 꼴등을 해도 좋으니, 항상 건강하게만 자라달라]고 당부한다. 아마, 이 정도 얘기했으면, 그 아이의 귀에 딱하니 박혀있지 않을까 한다.


나의 어린시절은 그와 달랐다.

공부가 세상의 전부인것 같았고, 부모에게 사랑받는 척도가 성적표였다. 좋은 대학을 위해 밤낮으로 자신을 채찍질 하면 싸워야 했고, 그게 세상의 모든것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살아보니, 나의 부모들은 그렇게 생각했음직 하다. 전후세대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배움이라는 것이 밥먹고 사는데 필수조건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며, 내가 못배웠지만, 너는 배워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다는 논리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런 시대에 사셨던 분들이다.


난 근데 그게 싫었다.

그래서 내 아이만큼은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았고, 좀 더 뛰어다니고, 좀 더 많은 것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그런 세상에서 살기를 바란다.

가장 감수성이 성장하는 10대시절에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고, 그런 소중한 기억들과 겸험이, 좀 더 넒은 시야를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아이가 지금 내옆에 있다.

새벽에 문득 잠에서 일어나, 아이가 있는 침대로 다가간다. 더위를 못참는 아이는, 이미 이불을 걷어차고, 대자로 누어 세상모르게 자고 있다.


조심히 아이의 코에 내 코를 대어본다. 아이가 날숨일때, 내가 들숨으로 그 아이의 숨냄새를 맡아본다.

예전에는 뭔가 아이같은 냄새가 났었는데, 요즘은 제법 사람 냄새가 난다.  

그렇게 옆에 있자니,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이렇게 예쁜아이가 내 옆에서 아빠라고 불러주는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가진 모든 물질적인 것들이 쓸모없는 것이 되면서, 오로지 아이만이 나의 인생에 진정한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점차 커가는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아빠라는 절대 약자의 존재로 인해 조금씩 서운하고 상처받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고,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이 일어날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이 아이는, 내 모든것을 줄 수 있을때 까지 주어도 주어도 아깝지 않은 부모라는 마음을 사무치게 이해하게 만든, 그래서 인생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소위 말해 [철이 들게 ]해 준 소중한 존재이다.


이마에 내려 온 머리카락이 행여나 간지러워 깨지 않을까 싶어 살며시 올려주고, 혹시나 감기걸리지 않을까 이불을 덮어주며 옆에 앉아 바라봐주는 것은, 그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나의 만족이라고 하는게 맞다.


비록, 그 아이는 나의 이러한 행동에 깨어, [좁아~ 저리가~]라고 짜증을 내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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