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아이에게 주고 싶은 것

나는 좋은 부모인가.

by 하찌네형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해 봤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이 아이를 어떻게 교육시켜야 좋은 부모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내 어릴적 부모님들은, 전후세대 힘든 대한민국을 성장시키는데 노력해 왔다는데 이견이 없다. 암울한 시대적 배경도 물론이겠지만, 배움보다는 당장의 배고품을 이겨내기 위해, 그 어느나라보다도 치열한 하루하루를 살아왔을 것이다. 그런 나의 부모를 포함, 부모세대의 노력에는 항상 감사한다.


그러했던 그들에 입장에서 본다면, 그의 자식들은 배고품을 모르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배움의 기회가 많지 않았었던 그들에게, 우리 아이는 남들 부럽지 않게 가르치려 했을 것이고, 자신이 겪은 삶의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소위, [내 자식만큼은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자식에게 고생시키지 말아야 겠다]라는 생각은 지금도 이어져 오는게 아닌가 한다. 그렇기에 좀 더 편하게, 그리고 남들과 다르게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나 생각이 된다. 아이들은 그러한 부모의 처마밑에서 특별한 어려움 없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고, 딱히 뭔가 하려하지 않아도, 부모의 방대한 정보량을 바탕으로 한 매일매일의 스케줄 관리로, 눈코뜰새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건, 맞게 가르치는 것일까. 부모로써, 나는 이 아이의 방향을 옳게 설정해 준 것이 맞는 것을까. 자칫,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곳에 있는 데, 나는 그것을 놓치고 있는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


언젠가 부터 느끼게 된 것은, [우리 아이는 혼자서 뭔가를 잘 못한다] 였다. 뭔가를 같이 해야 했다. 당연히 가족이기에, 같이 하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점이 많다가도, 항상 이렇게 같이 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에 대해, 조금씩 조바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럼, 우리아이는 혼자서는 못하는 것일까]라고 말이다.


[아빠. 레고조각이 없는데 이것 좀 찾아줘]

[아빠. 목말라, 물 좀 떠다줘. 난 손이 안닿아]

[아빠. 이거 끈 좀 늘려줘. 나한테 안맞아]


자신에게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때, 가장 쉬운 방법은 주변에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은연중에 그 사람에게 의지하게 된다. 의지함과 동시에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뒤로 후퇴한다. 우리세대 사람들은 너무 잘 알고 있듯,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을 것인데, 얼마나 많은 낫선 환경이 있을 것인데, 이 아이는 그런 어려움과 낫선 환경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어려운 것을 알면서도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은 가지고 있는 것인가..


언젠가 아이가 편의점에서 물건 사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다. 딱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점원에게 말을 거는 것 조차 어려워 해, 항상 나에게 계산할 물건을 쥐어주고 뒤에 한발 물러서 있었다. [어리니깐 당연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이해는 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선가 이건 아니다 싶었다. 해서, 아이에게 말했다.


[너가 먹고싶으면 아빠는 여기서 기다릴테니, 물건을 사가지고 나오렴]


처음에는 망설이면서 싫다고 했다. 아빠가 해 달라고 울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한 일이 몇 번에 걸쳐 있고나서, 지금은 오히려 내 카드를 달라고 해, 자기가 계산한다. 그에게는 그런 [계산]이라는 낫선 환경이 부담되었을지 모르지만, 한 두번 해보면, 별 것 아니라는 것을 금새 알게 될 것일텐데, 그 처음의 시도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매번 만능해결사인 아빠를 불러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 것이다.




아이교육에 있어, 어디까지가 가르쳐주고 어디까지가 도와줘야 하는지는 결정하기 어렵다. 아빠의 본심이야 이 아이에게 더러운 것 하나 닿게 해주고 싶지 않고, 항상 맛있는 것과 건강한 것과 좋은 것만으로 주변을 장식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것이 이 아이에게 그닥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언젠가 자식이 3명있는 일본인 회사동료가, 자신은 아이들을 [미국스타일]로 가르친다 했다. 그게 뭔지 몰라 물어보니, [가장 기본적인 것은 본인이 스스로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렸을때 부터 잠도 자기방에서 자게 했다는 것이다. 당시 그의 아이들이 3~7살 사이였으나, 내가 보기에 어린 나이였지만, 그들은 잘시간이 되면 자기방에 들어가 잠을 잔다고 했다.


그 당시 우리아이가 2살정도 되었으니, 그런 말이 쉬이 체감이 되지 않았고, 뭐 그리 큰 가르침인가 했던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인데, 엄마가 옆에 없으면 잠을 못잔다. 우리 아이만 그런줄 알았는데, 적지 않은 저정도의 아이들이 부모와 같이 잔다고 한다. 물론, 어떤 것이 더 좋냐 나쁘냐의 문제가 아니며, 이러한 것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끈끈한 가족문화라고 설명한다면, 뭐, 그럿도 나름 일리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하는 행동에 익숙해진 아이들에 비해, 아직은 부모의 손이 더 많이 가게 하는 우리 아이를 나는 사랑이라는 울타리안에 가둬 논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런 아이가 지금의 사회에 나가 성장하기에, 지금의 사회의 포용력은 너무나 개인주의화 되어 있어, 다소 상막하다. 또한 이러한 사회분위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며, 신생아 절벽으로 인한 사회구성원의 수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더더욱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갈 가능성은 크다고 본다.


그런 사회에게, 우리 아이는 잘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인가.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아빠같진 않을 것인데, 혹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상처를 받진 않을 것인가 걱정이 된다. 소위말해, 어디에 던져놔도 잘 살아나올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나는 그렇게 아이를 가르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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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3주째 재택근무중이다. 나이가 들었는지, 재택근무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조금 더 많이 보이고 있는 요즘이다. 그러면서 아이와 같이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아이와 관련된 생각이 많아진 것은 장점이라고 본다. 아이와 같이 살고 있으면서도, 평일에는 깨어있는 아이를 볼 수 없으니, 주말에 그 부족한 부분을 만회하고자 많은 사랑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평일에 많은 시간을 같이 하다보니,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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