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찌네형 May 11. 2020

25년만에 들은 형의 목소리

슬픔.

나에게는 2살터울의 형이 있었다. 얼굴이 동그랗고 피부가 검은, 눈도 동그란 나에 비해, 형은 얼굴도 갸름했으며, 하얀 피부에 눈은 쌍커플도 없는 작은 눈이였다. 흡사, 동네를 다니다보면, 형제라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였지 않을까 한다.


그는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땐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엄청난 공부량을 소화하기 시작했다. 같이 독서실에 다니던 내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주말 아침에 와서 밤늦게 나갈때까지 엉덩이를 띄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독하게 공부한 형은, 서울의 모 대학교에 합격했다.


농구를 좋아했다. 시간날때면 형과 함께 학교 농구장에서 농구를 했던 기억이 있다. 형은 원래부터 운동을 잘하는 몸이였고, 중학교때는 100m를 12초에 달렸었다. 당시 학교대표로 어디 대횐가 나갔는데, 엄마는 아직도 남들 신는 좋은 신발이 아닌, 동네 문방구에서 산 런닝화(당시 천으로 만든 흰색 런닝화)로 뛰게 한게 못내 아쉬운 눈치다.


음악을 좋아했다. 이제는 작동하지 않는 아이와 워커맨을 들고 다니며, 항상 음악을 들었었고, 대학교에 들어가 처음 받은 아르바이트 월급으로 소니 CD플레이어를 구입했었다. 그 CD플레이어는 지금도 문제없이 작동하고 가끔식 듣고 있지만, 당시에 나는 그 케이스조차 만질 수 없었다. 형은 책상서랍에 꼭꼭 숨겨두었고, 내가 만질까 열쇠로 잠궈놓기까지 했다.




형이 대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입대를 준비하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출근 4일만에 그 백화점 건물은 무너졌다. 형은 매몰 약 한달만에 차가운 몸으로 우리에게 왔다. 남들은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의 작은 뼛조각이라도 찾으러 쓰레기장을 뒤지고 있었고, 우리도 그렇게 준비해야하는 딱 그 시기에, 형은 나와주었다. 그날 새벽에 형이 발견되었다는 동생의 목소리는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오빠. 큰오빠 찾았대..'


한달만에 나온 시신을 형으로 단정짓는데는 오래걸리지 않았다. 지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형이 아르바이트 번 돈으로 구입한 게스 시계가, 유리가 깨진채 놓여 있었다. 아직도 그 시계의 모습은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입관할때 형을 보지 못했다. 우리가족 모두 보지 못했다. 삼촌이 보는것을 말렸다고 한다. 이 선택이 옳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이긴 하지만, 형의 마지막을 나는 온전한 모습으로 기억하기에, 어떻게 보면 그때 삼촌의 선택은 옳았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집에 갔을때, 아버지가 내 방의 물건을 정리하라고 했다. 결혼을 하면서 예전에 쓰던 짐을 본가에 그대로 놔뒀는데, 카세트테이프나 CD등 거의 유물수준의 것들이 즐비했다. 그래서 본가에 갈때마다 조금씩 챙겨와 듣기 시작했고, 당시 노래방에서 녹음해 준 테이프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녹음했던 것들, 길보드에서 샀던 테이프등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번주에도 어김없이 테이프를 듣고 있었다. 요즘은 카세트테이프를 들을 장치가 없어, 이럴땐 16년이나 된 내 차에 있는 카세트데크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때였다. 음악을 듣고 있다가, 갑자기 바스스락...거리더니, 누가 노래를 부른다.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이다. 그리고, 연달아 몇 곡을 부른다. 분명 나는 아니였다. 순간, [형인가?]하고 생각했지만, 그의 목소리를 들은지 25년이나 됐기에 쉽게 떠올리지 못했다. 다만, 귀가 아닌 몸에서 반응하는 이상한 느낌이 있었다.


바로 동생한테 연락해서, 이런 테이프가 있는데 너도 한번 들어봐라...라고 했다. 동생은 [다른 사람이 부른거 아냐?]라고 의심하면서도 확인해보겠다고 했지만, 동생이나 나나, 너무 오랜 시간에 형의 목소리를 떠올리긴 쉽지 않다.


그렇게 테이프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툭 끊기더니, [1994년 12월 23일...지금 시간은 **시. ]라고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형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내년에 더 열심히 하겠다는 것과, 나와 내 동생, 그리고 가족의 건강을 말하는 순간에, 나는 울음이 터졌다. 형의 목소리를 25년만에 듣는 것이였다.


차안에 있어서 다행이었을까, 간만에 참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25년만에 형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어버이날 다음날이였던 지난 토요일에, 나와 동생은 부모님께 그 테이프를 들려주었다.


아버지는 그 밤이 새도록 그 목소리를 놓치지 않으시려 했을지 모른다.

아버지는 그렇게 아들을 만나고 있었다




지난주,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익준(조정석)이가 익순(곽선영)이를 만나러 군부대에 가는 장면이 나온다. 어딘가 어설프게 찾아갖지만, 익순은 평소 자신에게 관심도 없는 줄 알았던 오빠가, 자신을 챙겨주는 것에 눈물을 흘린다. 이 장면에서 내 여동생도 그렇게 울었다고 한다.


이미 25년이나 된 일이다. 항상 그립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입장에서 언제나 그리워만 하고 있을 순 없다.  그래도 술마시고 혼자 걸어오는 길에, 형이 그립다. 이제 그렇게 그리울때는 형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크게 위안이 된다.


삶에 많이 지쳐있었다. 이게 아니라고 생각만 할뿐, 세상의 올가미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새장속 작은새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와중에, 그렇게 세상에 지친 나에게 힘을 내라고, 이렇게 목소리를 들려주는게 아닌가, 노래를 불러주는게 아닌가....그렇게 생각했다.


'형. 고마워. 좀 더 잘해볼께'


작가의 이전글 아내가 임신했다. 그럼.....나도 변해야 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