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절이와 명품

열두 달

by 여니

불편했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딱히 아픈 부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고

장마를 보냈다

긴소매 옷을 꺼내어 입어 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가빈은 다른 계절이 왔음을 알게 되었다.

상처의 나아감 마저도 어찌 이리 가빈과 닮아 있는 것인지.

삐뚤 빼 둘한 도형들이 동그라미 안에서 계속 출구를 찾아 헤매는 듯했다는 것을.



가빈을 향한 끝없는 배려를 보여준 남자

뷔페 접시에 담아 온

초밥 3개.

스테이크 3 덩어리.

가지 퓌레 3 개


가빈은 물었었다. 어째서 3 개냐고


“하나는 내 거야. 하나는 가빈이 거고. 가빈이 가 맘에 들어하지 않는다면 내가 먹으려고,

가빈이 가 맘에 들어하면 가빈이 주려고 했어.”


익숙 치 않은 따스한 매너에 가슴 한편을 푹 꺼지게 만들었던 감동의 순간들

운전대를 잡지 않은 손으로 가빈의 가녀린 손에 온기를 주었던 마음을

대나무 숲의 바람소리를 좋아했던 가빈을 위해 대나무의 이야기를 전해 주던 느낌을

해어진 신발밑창의 물기가 말라 갈 즈음에 서야 롱디남에게 전화 약속 한 것이 기억이 났었 던 가빈

“미안해.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 버렸네. 어쩌지? 주말엔 시간이 어때?”

젊은 날의 진한 모카 라테에서 느껴지는 깊은 여운의 맛

잊을 수 없는 맛은 다음이 기다려졌고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싱글 오리진 블랙커피처럼

혼자 만 이 알 수 있는 듯한 만남의 풍미가 그리워지는 날이 쌓여 만 갔다.


“ 이번 연휴에 뭐 할 거야? ”가빈은 묻는다.

" 아무 계획 없는데?"

“뭐라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가빈은 생각을 꺼내 본다.

‘계획이 없다고?’

더 많은 여유가 생기는 긴 연휴에 롱디남은 아무런 계획을 만들지 않았다.

“아. 맞다. 곧 자기 생일이지?" 롱디남의 입술이 말하고 있다.

해마다 도래하는 생일이지만, 유독 가슴이 설레었던 어느 해 주말 생일

촉박한 일정 탓에 생일 당일에 만나지 못했던 것을 만회했을 좋은 날이었지만,.....


한 결 같았다.

연휴. 생일과 같은 일 년의 특별한 날의 추억? 기억? 들은 둘 이야기에는 존재하지 못했다.


“자기가 먼저 말해봐.

그래서?

그런데?

그래?”

롱디남의 대화의 방식 이었던 것이다.

의견을 경청한다고 생각했지만, 이견이 생겨날 때 즘에는 반드시 하던 이야기


'그래. 그래 당신 말이 다 옳아.‘

두 발로 서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른으로의 성장 까지는 그들의 부모, 집안의 환경으로 자신 만의 삶의 가치관, 사람에 관한 인식, 혹은 사물에 대한 개념들이 형성 되곤 한다

성장과 사람의 관계를 피력하는 여러 학설들이 지금 까지도 연구되는 것은

사람뇌의 복잡한 신경 세포수만큼이나 다양하고 복잡한 타입들이 존재 하므로 다른 흥미로운 결과가 발표된다.

다투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사랑이니까 원함 원치 않음도 존재하는 것을.


성인 애착 이론 (Adult Attachment Theory)

존 볼비(John Bowlby)**의 애착 이론을 성인 관계에 적용한 것으로, 어릴 때 형성된 애착 스타일이 성인기 연애 관계에서 친밀감과 관계 안정성을 추구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봄. 이는 인간의 근본적인 관계 욕구를 다룸. *안전함(Security)**과 **친밀함(Intimacy)**을 추구하는 욕구

회피형 (Avoidant/Dismissive) 친밀감을 불편해하고, 관계를 피하며 독립성을 과도하게 중요시함

안전 욕구(혼자 있을 때의 안전)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파트너를 멀리하여 관계의 친밀한 성장을 방해함


두 번을 묻지 않고도

자신의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던 롱디남. 가빈이 존재했으므로


두 번을 묻고도

자신의 원함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 가빈의 남편. 가빈이 지켜 주었으므로


가빈은 두 사람 사이에 살고 있었다


롱디남과의 만남은 가빈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 인었던 것인지

가빈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족에서 생겨 난 것인지

어느 순간부터 가빈의 머릿속은 ’ 굳이? 왜? “라는 질문이 자라나고 있었다.


전 세계의 모든 이들의 즐거움을 독차지하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네온에 반짝이는 크리스마스장식들

거리로 쏟아져 나와 축제를 즐기기에 너무 나 당연 한 그날조차도

복잡하고 소란이 싫다 했다.

만남은 없었다.


일상을 묻는 안부 인사 조차에도 짧은 단문

‘응’

‘아니’

‘부재중’ 이란 전화응답


‘뭐가 잘 못 된 것 인지?.

내가 잘 못 한 게 있는 걸까?

넌 또 날 떠난 거야?

난 또 버려진 거야?’

짤막한 대화가 이어진 수화기를 바라보며

가빈은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어째서 나를 아니, 그녀의 자녀들에게 자신의 요구를 주장하지 않았을까?

좀 다그치고 , 소리 도 좀 쳐보고. 더욱 강하게 밀어붙여 보지 그랬어?

단 한 번의 젓가락의 픽만을 유도했던 겉절이는 무엇 때문에 매번 가빈의 아버지를 위해 상에 올린 것인지?'


사랑할 때 버려질 수 있는 일 들

서로의 목소리가 줄어드는 일

다툼이 사라지는 일

하늘을 마주 하지 않는 일

마음을 내어 주지 않는 일

생각의 거리를 좁혀 주지 않는 일


가빈은 다시 계절을 잃고

공간을 잃어가고 있었다

틸트 창으로 비치던 햇살은 뿌연 안개가 자리를 잡았고

붕긋한 향기를 내뿜던 작은 공간에는 습습한 곰팡 이 들이 구석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이유도 듣지 못한 채 서러운 날들을 보내야만 했던 기억들이 가빈을 일으켜 세웠다.

물을 수 있었지만, 묻고 싶지 않았다. 바보 같은 겉절이


답을 듣지 못한 가빈은


하루는 잊을 수 있었다


다음 날은 화를 참을 수 없었고


며칠 뒤에는 생사를 모르는 롱디남을 미워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음의 꼬리가 사그라질 무렵 즘 건널목의 상처 또한 가라앉는 듯했었다.

‘ 아휴 지독한 여자분이네.. ’

의사는 가빈의 얼굴도 보지 않고 엑스레이와 ct 영상을 보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네??”

“아니. 참 허허. 이제 뼈가 붙어 가고 있어요... 다친 지 꽤 나 되었던 거 같은데.. 맞죠?

몇 주 뒤면 다 붙겠어요."


다 도망가 버렸다

발등에 슬며시 자리 잡았던 멍 자국도 가 버렸다

공유했었던 시시한 것 들도 흘러가 버렸다

너무 많은 것을 바랐던 모양이었다

가빈이는 할 줄 아는 게 많지 않았으므로


평등하게 주어지는 시간은 아이들에게 성장이란 커다란 양분을 제공했고

누구나 맞이하는 하루는 가빈에게는 엄마로서 해야 하는 에너지를 소모했고

세월은 경험이란 풍성함을 쥐어 주었다.


자신의 소중함과 자아를 형성하기 위한 시기에 부모는 지켜 봐 주어야 한다. 가빈의 엄마가 그러했듯이.


다가서기보다

다가왔을 때 안 아 주고

다가올 때까지 기다 려 주어야 한다는 것을 가빈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단 한 사람에게만큼은

다가가고 싶었고

기대 어 보고 싶었고

안기고 싶었다

가빈이는 아버지의 겉절이가 되긴 싫었으므로


그러나 기다림은 버려야 할 것을 알게 해 주고

기다림은 그래서 지쳐감을 반드시 동반하기 마련이다


classic : 오랫동안 널리 인정받고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

명품(Classic)은 선반 위에 놓인 상태 일 때만 그 가치를 발 할 수 있다

소유할 수 없는 건

그저 명품 이어야만 한다





다음화는 에필로그로 마무리 지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