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그녀만
사각거리는 발걸음에 돌아보니 어스름을 가득 앉은 가을이 말을 걸어왔다
어디를 향하느냐고
잠시 쉴 수 있는 곳을 간다고 답을 해본다
'오빠' 공항에 마중을 나와있는 가빈의 오빠들이다
세월은 다른 시각 속에 살고 있는 오빠들에게도 내려앉았다
'아이고. 내 어동생 왜 이리 늙었어?'
'히히 이젠 나 꼬맹 이 아니니 놀리지 마라.'
뒤쳐지고 힘이 없던 가빈이에게 성장까지 자존감의 근원이 되어주었던 그녀의 부모와 형제들
가빈이 결혼 후 몇 해 되지 않아 집안은 발칵 뒤집어질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하나 도 둘도 아닌 그 이상을 키워내신 가빈의 아버지에게 귀하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었을까?
둘째 오빠는 말 수가 적었지만. 아버지에게 말대거리를 하지 않았다. 글씨체가 예뻐서 그림도 곧 잘 그린 탓에, 교내 대회에서 입상을 하기도 했다. 한 참이나 어린 가빈에게 찰리브라운을 그려줬던 오빠였다. 빼뚤삐뚤 선을 잘 그려 내지 못했던 가빈에게 둘째 오빠는 곧 미술지 화보에 실릴 화가를 연상케 하였다. 어디 목소리는 또 어떠랴? 오빠는 성우를 꿈꾸었다 했다. 모난 구석없이 부드러운 음성. 명확한 발성. 가진 것이 많은 오빠였다
'아버지. 저 애들 데리고 캐나다 가려고요.' 말 수가 적었고 아버지의 의견에 이견이 없었던 오빠가 내뱉었던 한 마디.
'뭐라는 거냐? 네가 왜? 한국사람이 한국에 살아야지. 느닷없이 이국 땅에서 뭘 하려고? '
불같은 성화를 내신 아버지는 더는 이유를 묻지 않고 방으로 향하셨다. 아끼던 자식을 잃는 것이라 생각하신 것이었다.
'현 아.. 네 처랑 얘기 다 된 거지?. 한국에서만 기댈 수 있는 시대는 아닐 거야. 아이에게도 더 없는 좋은 기회가 만들어지기도 할 것이고, 널 갉아먹는 일들이 너무 많다면...'
말끝을 흐리는 엄마에게서 더 이상은 자식을 자주 볼 수 없을지 모를 두려움과 아쉬움의 얼굴을 읽을 수 있었다.
가빈을 포함한 형제들에게도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기에 한 동안은 그 많던 가족행사의 분위기조차도 여느 때와는 사뭇 달랐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배려가 많던 오빠에게는 현명하고 어떠한 일이든 똑 부러지게 처신하던 부인, 집안의 첫 장손인 가빈의 조카가 있었기에 부모님에게 더 깊은 애정과 사랑을 받았다. 첫째 오빠를 제치고 둘째 오빠에게 의지를 해 왔던 부모님 이셨기에 가빈 가족의 놀라움은 오빠의 이민을 이해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흐트러진 모습이나 규칙에 어긋남 이라곤 절대 찾아볼 수 없었던 가빈의 아버지는 오빠를 불러 세웠다
'너. 내가 돈 000 만들어 주련? 그러면 한국 안 떠나고 있을 수 있느냐?'
자식에 대한 아낌. 물리적인 지도상 의 거리. 까마득한 시간. 가빈의 부모를 어지럽게 흔들어 놓을 것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안간힘을 써 곁에 두고 픈 부모의 마음을 뒤로 한 채 오빠가족은 이국 땅을 밟게 돼 버린 것이였다.
딱 한 번만 보고픈 순간들
올해의 가을은 이전의 계절과는 다르듯 다음이 없을 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빈은 그리움의 여정을 시작 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