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심리 오월 어린이 체육대회 어린이날
학교는 매달 다른 빛깔들이 넘실거리는 곳이다. 삼 월, 아직 연둣빛이 채 묻지도 못한 여린 새싹이 아직은 차가운 공기에 풀리지 못해 빼꼼한 연노랑빛이라면, 사 월은 제 팔을 쭉 펴서 기지개를 켜고 제 자리를 찾은 싱싱한 연둣빛이 햇살에 딸랑딸랑 빛나는 달이다. 그러다 오월이 되면, 여기저기 앞다투어 빨강! 노랑! 하양! 꽃이 알록달록 피어나는 소란이 펼쳐지는 곳이 학교이다. 제 교실에서 제 자리에 자리 잡고는 저만의 색을 피워내는 아이들은 봄의 설렘과 편안한 즐거움에 들뜬 봄을 누리며 생활한다.
어린이 덕에 다채로운 마음을 얻고 싶으면 오월의 학교에 오면 된다. 오월의 학교엔 알록달록한 감정들이 넘실거린다. 그중에서 으뜸은 치열함, 투쟁, 명랑함, 기쁨, 좌절, 환희로 가득한 체육대회이다. 열렬히 진짜인 데다 투명하기까지 한 이 마음들을 와락 만나게 되면 어른의 마음도 속수무책으로 알록달록해진다. 오월의 학교에서 펼쳐지는 체육대회는 노란 모래바람도 힘을 쓰지 못하는 알록달록한 어린이 세상이다.
언제나 1학년 달리기로 체육대회가 시작된다. 저 멀리 노랑 봄의 1학년이 달리기를 하기 위해 4명씩 줄을 맞춰 서 있다. 제법 연습을 해서인지 한 쪽발을 앞으로 굽어 내밀고, 양팔을 90도로 접어들고 고개를 살짝 내리며 도착점을 응시하는 모습이 능숙해 보인다. 작은 아이의 능숙함은 언제나 대견한 미소를 지어낸다. 제 아무리 능숙해도 귀여워할 수 있는 것은 어른의 특권이라고 여기며 보고 웃고 또 웃는다. 어린이에게 세상의 길은 이제 드디어 하나가 되었다. 언제나 다섯 걸음 걷고 길에 떨어진 돌멩이 줍고, 세 걸음 가다가 길에 떨어진 나뭇가지 줍고, 두 걸음 가다가 옆에 친구이름을 부르며 손을 잡던 그 걸음이 아니다. 이제 저 곧은 50m를 단박에 달려야 한다. 그 앙당물은 1학년의 긴장감에 내가 더 마음이 떨린다. 아이코~넘어지면 어쩌나.
'탕!"
팔짝팔짝 뛰는 1학년의 모습에 내 마음에 노랑 싹이 나서 간질간질하다. 아이코! 한 아이가 옆에 엄마를 보다가 탕! 소리에 뛰지 않고 두리번거린다. 선생님이 등을 떠밀어 겨우 출발한다. 도착점에 있는 나는 궁금하다. 뛰는 게 맞나? 걷는 거 아닌가? 저 멀리 있던 1등 어린이가 가까워진다. 나는 나란히 선 선생님과 도착점을 알리는 줄을 들어 올린다. 출발이 늦었던 제일 마지막 어린이까지 들어왔다. 참 이상한 일이다. 어린이들은 뛰면서 웃는다. 꼴등으로 들어온 1학년도 웃으며 결승선에 들어오고, 1등으로 들어온 1학년은 아직 가쁜 숨을 몰아쉬며 웃는다. 잘 익은 복숭아처럼 동근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어린이의 얼굴엔 웃음과 친구를 향한 요란한 응원이 떠나질 않는다.
예전에 웰컴 투 동막골의 박광현 감독님이 거미맨이라는 단편영화를 찍으실 때 했던 인터뷰가 생각이 났다. 어린이들은 아무리 해도 뛸 때마다 자동으로 웃게 되어서 무서운 표정으로 뛰는 장면을 촬영하는 게 가장 난관이었다고 했다. 제 두 발이 노란 모래바닥을 치고 튀어 오르며 종아리에 전해지는 근육의 탄력이 바람을 만나서 어린이 마음에 간지럼을 태우는 게 분명하다. 행여 아장아장 뛰어오는 어린이가 넘어질까 걱정하다가도 어린이의 웃음에 무장해제 되기를 몇 차례. 같은 동작을 반복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어린이들이 저 멀리서 각자의 웃음을 띠고 달려온다. 진심의 달리기 앞에 나도 웃는다.
그러다 옆에 비켜선 1학년 학부모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내 마음이 왈칵 쏟아졌다. 대견함에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촉촉한 눈, 뿌듯함과 뭉클함이 담겨 한껏 내려간 눈꼬리에 엄마이고 아빠인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감정이 충만하게 일렁인다. 누워만 있고, 기어 다니며 나를 웃게 했던 아이는 여전히 나를 자랑스럽게 해주고 있다는 그 표정. 이 표정들을 볼 수 있는 나도 오늘 할 일을 다 해낸 것만 같다.
어린이들의 세계에도 승부는 팽팽하다. 줄다리기를 하기 위해 2열로 늘어선 어린이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영차영차 소리에 맞추어 몇몇은 아예 뒤로 눕는 어린이, 아예 뒤로 돌아서서 끌고 가려는 어린이들이 제 온 힘을 쥐어짜고 있다. 맨 앞에선 연서는 어디서 본 건지 양팔 겨드랑이에 굵은 황갈색 줄다리기 줄을 끼고 섰다. 절대 끌려가지 않겠다는 앙당물은 입술에 담긴 결의는 진짜다. 첫 번째판에서 지자 시현이는 화가 잔뜩 났다. 잔뜩 힘을 준 두 눈 사이가 찌푸려졌다.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바꿔서 맨 앞으로 나선다. 더 이상 뒤에서 지켜볼 수 없다. 귀엽던 양 볼에는 승부욕이 잔뜩 붙었다. 이겨버리리라! 두 번째 판에서 가까스로 승리하자 바로 무릎을 바닥에 슬라이딩하며 세리머니를 한다. 저러다가 바지 찢어지지 하는 걱정은 어른의 몫. 지금 이 운동장의 열기는 오월의 햇살보다 뜨겁다.
옹기종기 모여 카드 뒤집기도 하고, 콩 주머니 넣기도 하다가 이기면 양팔을 쭉 펴고 폴짝폴짝 뛰는 소란이 정리되면 대망의 이어달리기 차례가 온다. 학급대항이어서 반 전체 학생 24명이 릴레이로 뛴다. 다른 반과 수를 맞추기 위해 한 명 더 달려야 하는 사람을 뽑을 때 가장 치열한 경쟁이 된다. 이럴 땐 언제나 정의로운 가위바위보. 순서를 정하고 이어달리기가 시작된다. 바톤을 이어받는 순간 각자의 레이스는 시작이다. 바톤을 손에 꽉 쥔 어린이들은 응원하는 소리만큼 쿵쾅대는 흥분과 긴장을 안고 달린다. 순서를 기다리거나 이미 달린 우리 편 어린이들이 트랙의 중심에 모여있다. 이 중앙에 모인 진심이 달리는 어린이를 잡아당기며 빠르게 뛰도록 밀어준다. 어린이의 최선들이 이 타원의 트랙을 뛴다. 다 괜찮고, 다 내 편이고, 다 멋지고, 우리의 마음은 다 하나다. 그래서 우리는 다 괜찮다. 평소 달리기에 자신 있던 서연이가 다음 주자를 가까이 두고 코너를 돌다가 얼굴이 모래바닥에 닿도록 넘어졌다. 몸을 털 새도 없이 반사적으로 일어나 다시 뛴다. 결국 다음 주자에게 바톤을 건넨다.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이 서연이에게 달려온다. 트랙 안으로 들어온 서연이에게 민영이가 달려와 괜찮은지 묻고 수고했다며 꼭 안아준다. 너의 마음을 우리는 다 아니까. 우리도 그 마음으로 지금 뛰고 있으니까. 뛴다는 건 내 몸을 최선으로 쓰고 있다는 온몸의 표현이다. 서연이도 다시 뛰었고, 우리는 각자 최선을 다했다.
1등으로 들어온 반의 마지막 주자가 팔을 허리 아래로 늘어뜨리는 나름의 세리머니를 하며 들어온다. 이윽고 아직도 기세의 불을 꺼트리지 못한 2등 주자가 들어온다. 저 멀리 반 바퀴 차이가 나는 세 번째 반도, 네 번째 반도 들어온다. 각 반 어린이들은 서로 모여 서로의 달리기를 격려한다. 바톤을 떨어트려 말이 없는 승훈의 등을 동연이가 토닥인다. 진 팀은 서로를 격려하며 서로의 수고에 무거운 박수를 보낸다. 오늘의 이어달리기가 돌아보면 아쉽지만, 타원 위에서 다 진심이었으니까. 누구 하나 원망하지 않는다. 이때 한성이가 말한다.
“괜찮아, 괜찮아. 중꺽마!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이 말에 민현이도 거든다.
“그래, 괜찮아. 괜찮아. 꺾여도 계속하는 마음!!”
그렇게 24명의 얼굴에 웃음이 옮겨간다. 아쉬움이 그렁그렁한 까만 눈꼬리와 뿌듯한 심장박동이 채 가시지 않은 채 솟아오른 붉은 볼이 만난다. 오늘의 진심이 온 얼굴에 둥글게 떠올랐다.
우리는 안다. 세상의 모든 일 중에 가장 힘든 일은 내가 하는 일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어떤 일보다 어렵고 가치롭다. 어린이도 그렇다. 어린이는 어린이로서 꽉 채운 발달을 이루어내는 시기이다. 영유아, 어린이, 청소년, 청년, 중년, 노인은 각자 다른 발달과 과업을 갖는다. 어린이들은 자율성과 근면성의 줄기를 뻗고, 튼튼한 신체를 키우는 게 중요하고 어른은 자신의 일에서 생산성을 높이고 사회에 공헌을 하는 일을 하는 과업을 갖게 마련이다. 특히 청년은 자아정체감을 확립하는 일을, 중년은 자신의 과업에서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일을, 노인은 지혜를 통해 청년과 중년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일을 진심으로 해낸다. 우리는 그 개별적인 삶의 과정을 존중하고 존경한다. 청년이 노인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 아니고 노인에 비해 미숙하고 성숙한 존재가 아니듯 어린이도 그렇다. 어른이 되어가는 준비과정이어서 미숙한 존재가 아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로서 이미 온전하고 완전하다.
가끔 어린이를 무시하는 말을 볼 때 기분이 언짢아질 때가 있다. 무언가에 서툴거나 미숙할 때 쓰는 00 린이라는 말이 대표적인데, 골프 초보일 때 골린이, 헬스 초보일 때 헬린이 등 00린이로 미숙함을 표현하는 단어를 들을 때 귀에 가시가 돋는다. 어린이는 작은 어른도,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미성숙한 상태도 아니다. 어른보다 어려서 어린이가 아니고, 미숙해서 어린이가 아니다. 하루를 진심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삶은 각자의 개별적 가치를 가지고 있기에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어린이가 꾸려가는 진심의 하루들은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제 일을 진심으로 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고 믿는다. 나는 제 일을 성실히 진심으로 해내는 사람을 존경하고 존중한다. 제 발달을 진심으로 해내는 어린이를 존중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교실에 돌아와 한 시간이 남았다. 열 한 살들에게 나는 또 호들갑을 떨었다.
“어린이날을 축하해요. 왜 어른의 날은 없죠? 여러분이 부러워요.”
“어버이날이랑 스승의 날 있잖아요.”
“어버이가 아닌 어른은요? 스승이 아닌 어른은요? 어른들은 부모든, 스승이든, 군인이든, 근로자든 무언가가 되어야 축하받지만 어린이는 어린이라는 존재만으로 축하를 받잖아요. 왜 그럴까요?”
“네?”
어린이라는 이유로 축하를 받아 마땅하다는 내 말에 몇몇 아이들의 얼굴에 의구심이 흐른다. 어린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치 있고 빛나는 사람이라는 마음이 아직 자리잡지 못했지 싶다.
“우리 어린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기 위해 오늘 왕관을 만들어 씁시다! 이거 쓰고 우리 급식소에 점심 먹으러 가는 거예요! 당당하게!”
어린이들은 중앙에 자랑스러운, 빛나는, 멋진, 장난스러운, 느긋한, 재미난, 대단한을 붙여 000 어린이라고 큼지막하게 쓴 왕관을 만들었다. 나도 몇 개를 머리에 써보며, 선생님도 만들걸 그랬어요. 하고 너스레를 떤다. 머리에 왕관을 쓰고 점심을 먹으며 우리는 또 웃는다. 어린이들과 있으면 웃을 일이 자주 생기는 게 내 삶의 덤이다.
어른들은 경험을 무기로 어린이들이 오늘 흘린 땀과, 뛰는 심장과, 들뜬 마음과, 승리에 대한 열망과 환호, 실패를 마주한 절망의 과정을 내려다보며 납작하게 누르지 않았으면 한다. 어린이의 한껏 부풀어 오른 이 마음과 오늘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길 바란다. 라테는 말이야~라는 말을 고스란히 어린이에게 전수해주지 않길 바란다. 다만 어린이의 오늘이 더 알록달록해질 수 있도록 어린이의 오늘에 귀 기울여주길. 오월엔 더욱 어린이의 표정을 보고, 함께 웃고, 함께 뛰고, 판단하지 않고 어린이의 말을 그대로 귀로 모아 마음에 담아주기를. 나를 보아주고, 내 말을 들어주는 세상에 사는 어린이는 세상을 믿을만한 곳으로 여기며 희망이라는 덕목을 품으며 자란다. 어린이의 희망 덕에 세상은 살만해진다. 이미 완전한 오월의 어린이를 오늘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