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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Apr 28. 2024

학교도 가끔 억울하다

학교심리

  학교는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게 만드는 데 탁월한 재주를 가졌다. 그러다 보니 학교는 자주 샌드백이 되어 원흉이 되곤 한다. 최근에 읽은 책들에서 공교롭게 이러한 용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학생들에게 게임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학교에 게임 교과를 만드는 일을 제안했다. 게임을 정규 시간에 들여와 게임 규칙 수업, 전략 짜기 이론을 배워서 지필고사를 보고, 실전에서 실습 시험을 보면 학생들이 게임을 멀리하게 된다는 유머 섞인 문장이었다. 나도 일견 고개를 끄덕였다. 또 다른 책에서는 미술에 거리감을 가지게 된 원인으로 학교에서 미술사를 배우고 나면 지필고사를 통해 오지선다 중 알맞지 않은 것을 골라내는 시험을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 읽기에 내적동기가 충분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책을 읽고 보상을 주었더니 책 읽기 그 자체를 좋아했던 마음과 동기가 훼손되었다는 연구가 있다. 좋아하는 마음은 달콤한 보상 앞에서도 바람이 빠지는 데 시험이라는 외부의 객관적 평가가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는 상황에서 당연히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공부하는 과정이 마냥 좋았을 때 시험 안 보고 공부만 쭉 해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는 왜 도통 좋아하는 마음을 그대로 두지 못하는 걸까.         


  

  학교는 기본을 맞추는 곳이다. 사회의 기본 질서, 규칙, 예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약속할 때 우리 사회는 공동의 선을 추구하고 서로의 기본을 믿으며 유지된다. 교과와 비교과를 통해 지적 능력의 성장을 돕는 것도 학교의 몫이다. 언어능력, 수리능력, 공간지각능력, 예술능력, 신체능력, 자연친화능력, 자기 성찰능력에 이르는 균형 있는 지적능력을 자극하여 일반교양의 힘을 쌓는 곳이 학교이다. 학교는 기본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에게 세팅된 강점과 약점을 발견하고 강점을 선택하여 전문가가 되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엔 해야 할 것투성이다. 일단 시작부터 의무교육이다. 더 자고 싶거나 비 오는 날, 몸이 찌뿌둥한 탓에 오늘은 좀 집에서 쉬고 싶은 날도 내가 선택하지 않은 곳에 가야만 한다. 교과과정은 내가 선택한 적이 없이 이미 세팅이 되어있다. 학년도 나이에 따라 정해졌고, 학급도 미리 배정이 되어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이다. 내 자율성이 박탈당한 곳에서 내가 선택한 적이 없는 교과과정을 배우는 것도 썩 마음에 안 내키는 데 심지어 시험까지 본다. 압박감도, 숫자에 의해 내 가치가 결정되는 것만 같은 비인간적인 상황도 불만이다. 집에서는 말만 해도 칭찬받다가 학교에서는 말을 하고 싶으면 손을 들어야 하는 데다 심지어 호명을 받아야 말을 할 수 있다니 이게 뭔가. 심지어 달리면 딱 좋게 쭉 뻗은 복도에서는 걸어야만 한다. 의무는 그 뒷 면에 반항을 붙이고 다니는 게 국룰. 하기 싫음이 따라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참 이상한 일은 이거다. 나도 싫고 너도 하기 싫다. 그런데 한다. 심지어 진짜 열심히 한다. 이 요상스러운 일이 학교에서 일어난다. 일단 가기 싫다면서 학교에 간다. 수업시간이 힘들고 지루하다면서 수업에 참여하고 심지어 집중한다. 개별적인 나를 공통의 틀에 접어 넣는 것 같아 못마땅하다는 시험 앞에서 늦은 밤까지 가열하게 공부를 하고 시험시간이 되면 우주의 기운을 모아 눈에 레이저를 쏘며 최대치로 집중한다.       


    

  기본을 만들려는 학교에서 우리는 그렇게 잘하고 싶은 마음을 경험한다. 학교에서 경험한 잘하고 싶은 마음은 어디 가지 않는다. 내 안에 남는다. 학교에서 잘하고 싶던 나는 내 삶을 잘 살고 싶은 마음을 키워낸다. 학교의 목표보다 내 삶의 목표가 더 커지는 순간이 우리에겐 온다. 잘하고 싶은 마음을 꽉 쥔 채 학교를 밟고 내 삶으로 나아가야 하는 순간은 그렇게 온다.           



  작아진 학교는 과거가 되어 원망의 단골소재가 되곤 한다. 내가 잘 된 이유는 내가 잘했거나 노력했기 때문이고, 내가 부족한 부분은 학교가 뒷받침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어릴 적 부모님께서 학원을 많이 보내셔서 공부에 질려버렸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부모님께서 좀 더 서포트해주셨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차피 자녀에게 원망을 들을 것이니 이왕이면 시키고 원망을 듣겠다는 부모처럼 학교도 어차피 학교 탓을 들을 테니 이왕이면 여러 자극을 주는 편을 늘 택한다. 열심히 해본 시간을 경험하길 바라며 오늘도 차린 건 없지만 여러 활동을 마련한다.           



  교과를 공부하고, 질서를 약속하고, 알록달록한 경험을 마련하는 일은 학교가 잘하는 일인데, 각 개별의 마음을 헤아리고 쓰다듬어주는 일은 참 못하는 일 중에 하나다. 평균과 기본을 잡아가는 데 익숙하고, 행여 공평하지 않았을 때 돌아올 후폭풍에 잔뜩 기민한 성질을 가진 곳이다 보니 개인의 역량과 마음을 두루두루 살펴줄 여력이 부족하다. 의무와 기본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로부터 빼앗은 자율성과 개별적 요구에 화답하지 못하는 게 학교의 약점이자 원망 포인트이다.           



  한 가지 공평한 것은, 학교와 교사도 학생을 선택하지 못한다. 의무와 기본인 학교는 모든 학생들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한다. 지도교수님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지도교수님께서는 최근에 블루베리 음료 회사의 경영자가 학교운영자들을 대상으로 성공적인 학교 운영에 관해 진행한 강연 영상을 보셨다고 한다. 강의 말미에 학교운영자들은 경영자에게 질문을 했다.



  “최상의 블루베리 주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합니까?”

  “먼저 크기와 향, 그리고 당도에서 최고의 블루베리를 선별합니다. 사실 여기서 결정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이후 공정라인과 유통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면 경쟁력 높은 제품이 만들어집니다.”

  자신 있게 대답하는 경영자들에게 학교운영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학교는 최고의 블루베리만 선별하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의 학교엔 최고의 학생들만 오는 게 아닙니다. 다양한 가정환경과 특성, 강점과 약점을 모두 가진 학생들이 옵니다. 우리는 고르지 않은 땅에서 교육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이 대목에서 왈칵 눈물이 나셨다고 했다. 그렇다. 학교는 키가 큰 아이도, 작은 아이도, 걷지 못하는 아이도 온다. 지적능력이 평균을 상회하는 아이도, 발달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도 온다. 공격적인 아이도 오고, 온순한 아이도 온다. 글쓰기를 참 좋아하는 아이도 오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도 온다. 수학 문제 앞에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도 오고, 졸라맨으로 도화지를 채우는 아이도 온다. 뜀틀 위에서 앞 구르기를 해내는 아이도 오고, 밖에 나가 놀 시간이 있어도 교실에 앉아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아이도 온다. 그 아이들에게 기본을 제안하는 일은 변하지 않는 학교의 고민이자 오늘도 학교가 있는 이유이다.           



  학교는 말이 없지만 학교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하나만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 하나는 있다. 과거의 눈으로 지금의 학교를 보지 않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가정에서 커가며 엄마를 보고 자랐다고해서 내가 엄마를 다 아는 것은 아니다. 내가 엄마가 되어보았을 때 비로소 엄마의 역할을 안다고 할 수 있다. 학교도 그렇다. 다녀보았다고 해서 학교를 다 안다고 할 수 없다. 게다가 과거의 기억이 지금의 학교를 이해하기엔 부족하다.



  학교는 과거의 생각을 현재를 살고 있고 미래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전달한다.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무용한 일이 되지 않기 위해 학교 안의 사람들은 고군분투한다. 인지주의 시절에는 일제식-설명식 수업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각 휴대폰마다 각자의 공장을 짓고 각자의 산출물을 만들어내는 지금, 교실 수업도 달라지고 있다. 프로젝트를 통해 협업하고, 학생의 산출물을 북돋는다. 언택트 시대에 중요하게 여겨질 글쓰기를 장려하고 학생의 생각을 묻는다.



  알알이 연결된 각 교실에는 현재를 살아가는 교사와 학생이 있다. 현재를 살아가고, 배움의 가치를 담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속닥속닥 과거의 생각을 현재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미래의 힘이 되어줄 활동을 속닥속닥, 성큼성큼, 도란도란, 낄낄, 사부작사부작해나가고 있다. 덩치가 큰 학교의 속도는 느리지만, 교실은 열심히 해본 그 마음을 꽉 쥐고 언제나 현재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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