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날
지금은 중단되었지만 올봄, 지도교수님과 제자들이 전공에 관한 책을 써보자 하고 의기투합을 했었다. 함께 모인 제자는 다른 학과와 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신 선배님 2분과 학과 내 시간강사이자 교사인 나까지 셋이었다. 우리의 전공인 학교에 관한 책을 쓰기로 한 우리는 두 번째 모임에서 책의 목차를 논의했다. 책이 넘쳐나는 요즘, 기여할 만한 글을 쓰는 게 최우선이고 허름한 글을 쓰지 않겠다는 지도 교수님의 의지는 곳곳에서 드러났다. 목차의 논리적 흐름이 책의 목적에 부합하는지, 용어는 이해 가능한지, 순서는 독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지에 관한 생각들이 오갔다. 이미 지도교수님과 책을 써본 두 분의 제자 교수님은 익숙한 듯 목차의 세부 사항을 다듬고 수정하셨다. 책 작업이 처음인 나는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모든 말을 이해하겠다는 각오로 연필을 들고 앉았다.
여러 고민과 생각이 오간 끝에 드래프트 목차가 나왔다. 동시에 세 교수님들의 걱정도 함께 나왔다. 이 글은 우리가 필요한 글이 맞는데, 과연 잘 쓸 수 있을까. 목차와 함께 거대한 공부의 산이 눈앞에 우뚝 세워진 것만 같았다. 세 분만큼 세 개의 부담감이 쌓인 높은 산 사이에서 초심자인 나만 눈을 동글동글 굴리며 우뚝 솟은 세 산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산의 지형도 가파르기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마치 동네 마실용으로 편하기만 한 슬리퍼 신고는 ‘오르면 되지 뭐.’ 하는 초심자의 맹랑함만 있었다.
“제목은 뭘로 하면 좋을까요?”
“교수님, 부제에 학교심리학자와 함께하는 이라는 말을 넣는 건 어떨까요? 책에 대한 신뢰를 더해주지 않을까요?”
“지속가능한 학교라는 의미도 있으면 어떨까 싶어요.”
“학교 재구조화라는 용어도 많이 쓰이더라고요.”
세 제자의 생각이 오가는 테이블에서 지도교수님은 조용히 경청하셨다. 그리곤 조심스레 제안하셨다.
“우리가 재구조화까지 하고, 학교심리학자와 함께하는 까지 넣으면 너무 거창하지 않아? 학교에 관해 고민하는 이라는 말은 어때?”
나는 순간 웃음이 나와버렸다. 너무나 나의 지도교수님 같은 말씀이었다.
“교수님, 역시 교수님이세요. 요즘은 전문가들이 넘쳐나는 시대잖아요. 이렇게 하면 됩니다! 다 알려드립니다! 이렇게만 하세요!라고 너도나도 말하는 시대인데, <고민하는> 이라니요. 누구보다 교수님께서 오래도록 연구하신 분야잖아요.”
지도교수님은 정년이 몇 해 남지 않은 지금까지 누구보다 왕성하게 연구하시고 논문을 발표하시는 분이다. 지속적인 교수님의 연구는 내가 헤아릴 수 없는 깊이와 새로움이 있다. 지금 국내에서는 초중등 교육뿐만 아니라 고등교육에서도 사회정서학습(social-emotional learning)을 통한 사회정서적 유능성 역량을 기르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 사회정서학습 연구는 십여 년 전부터 교수님의 주요 연구 주제였다. 사회정서학습을 설명하는 이론서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적용가능한 활동북 제작에 이르기까지 교수님께서는 지난 십여 년간 국내에 사회정서학습을 가장 먼저 활발히 진행해 오셨다.
감사히도 나의 지도교수님이셔서, 나의 논문을 지도해 주셔서 지도교수님께 나는 배운 게 많다. 박사논문을 준비할 때였다. 박사논문 주제를 고민하던 시기에 나는 행복관에 대한 암묵적 신념을 알아보고 싶었다. 이 생각이 떠오른 순간 유레카 모먼트라도 만난 듯 호들갑을 떨며 교수님께 아이디어를 의논하는 메일을 보냈다. 그리곤 교수님을 찾아가 번잡하고 뜬구름 잡는 아이디어를 시간을 들여가며 정성스레 꺼내 보이기까지 했다. 교수님께서는 번화한 제자의 말씀을 끝까지 들어주셨고 마지막에 한 마디 해주셨다.
“주윤아, 새로운 거 좋지. 한번 해봐. 의미 있을 것 같아. 그런데 있잖아. 사람들이 많이 연구하는 건 낡은 것만은 아니야. 그만큼 중요한 변인이라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깊이 연구하기도 해.
그리고, 앞선 연구자들의 연구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연구가 시작되는 것도 맞아. 그런데 전제는 앞선 연구가 있어야만 비판도 가능한 거지. 선행연구들이 다루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내 연구를 하려고 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선행연구의 의미와 가치를 부정할 필요까지는 없어.”
남들만큼 살고자 하면서도 남들 하는 건 지루하고 노력하지 않는 것으로만 여기던 서른 초반의 나는 교수님 연구실의 문을 닫고 나오며 이 말씀을 머리에 깊이 저장했다. 제목과 겉모습으로 쉽다고 평가 내렸던 내 오만함은 이 조용한 말씀에 머리를 숙였다. 분명 자신의 업의 과정에서 한 번도 허투루 해본 적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씀이었다. 흉내만 내고 있는 나는 다른 사람도 나 같은 줄 알고 다른 사람의 연구와 업적을 쉽게 보았다. 해보지 않은 사람이 가진 오만함은 이렇게 납작했다.
세 살 아이를 재운 늦은 밤부터 나는 서재방으로 갔다. 맑은 새벽까지 논문을 쓰고 나면 겨우 잠깐 잠을 자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나는 대학원 수업을 받으러 다녔다. 그러기를 며칠 째, 교수님과 약속한 날짜에 겨우 맞추어 논문 초안이 나왔다. 드디어 나오긴 나오는구나. 혼자 뿌듯한 마음에 교수님께 논문 초안 메일을 발송했다. 그리곤 모처럼 등따시게 푹 잤다. 논문을 쓰던 깊은 밤부터 맑은 새벽까지 한 번도 하기 싫었던 적이 없었다. 그저 공부를 하고 있다는 이 과정이 감사했다. 편안한 하루를 보내고 교수님께 연락이 왔다. 단, 하루 만에......
교수님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말간 얼굴엔 피로가 가득했다. 마주앉은 교수님과 나 사이의 테이블 위엔 검게 인쇄된 글씨보다 교수님의 빨간 손글씨로 빼곡한 내 논문 초안이 놓여있었다. 그렇게 나는 잔뜩 혼이 났다. 문장이 읽히지 않은 점도, 문단 연결이 매끄럽지 않은 점도, 이론적 배경의 논리적 허점도 모두가 그 대상이었다. 심사일정이 빠듯한 탓에 밤새 논문을 읽으셨던 교수님의 갈라진 목소리는 다 옳았다. 나는 허접했고, 정교하지 못했다. 겨우 해냈노라고 메일 발송 버튼을 누르고 홀가분해하던 나보다 내 글을 더 면밀히 생각하며 읽어주는 사람은 이 우주에 교수님뿐이었다. 나는 점점 작아졌고, 내 자아는 좁쌀만 해졌다.
내용뿐만이 아니었다. 오타, 오타, 그리고 또 스멀스멀 숨어있던 오타는 타격감이 컸다. 내가 봐도 낯부끄러운 그 오타는 왜 발송 전에 읽어볼 때 절대 보이지 않다가 지금은 쓱 봐도 보이는가. 같은 용어 띄어쓰기는 왜 중구난방인가. 참고문헌에서 이 단어는 왜 기울이기를 안 했는가. 어딜 봐도 다 나의 허접함이 보였다. 자존감은 이제 발톱 밑에 겨우 달랑달랑 매달려있다.
“오타는 정말 마지막까지 점검을 안 했다는 거야. 이건 아니거든. 논문을 보면 논리적 흐름이 아쉽더라도 정말 애썼구나 하고 느껴지는 글이 있어. 그러면 한 번이라도 더 읽고 보게 돼. 좀 더 조언해 줄 게 있나 해서. 그런데 오타가 걸리면 그 마음이 사라져. 이건 지켜야 해. 그리고 있지, 물론 네가 볼 때 그렇게 봤겠지만 그래도 나에게 보낼 때는 신경 쓸게 있어. 파일을 열었는데 커서가 페이지 중간 어디쯤 있는 거 나는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읽을 사람이 파일을 열자마자 글의 처음을 볼 수 있게 해야지. 중간에 저장하고 보냈다는 건 중간에 보고 그냥 보냈다는 거잖아. 그건 아니야. 그리고 2쪽 모아 찍기 인쇄 상태로 저장해 둔 파일은 1쪽 인쇄로 수정해서 보내줘야 해. 파일 열고 인쇄하는데 2쪽 모아 찍기로 나오는 걸 보며 순간 아찔했어. 나는 2쪽 모아 찍기로 이 긴 글을 읽기 어려워. 이런 것까지 이야기하면 너무 까탈스럽지. 그래도 나는 그래, 주윤아.”
나는 아마추어였고, 내 글도 태도도 초라했다. 내 능력의 용량은 아직 초고 완성도 버거운 상태미달이었다. 부족한 용량에 성실함과 정교함을 담을 공간이 부족한 것은 당연했다. 내 글을 내가 읽고 또 읽어서 내 손에 내 글이 잡힐 만큼 숙달시키지 못했다. 미숙한 것은 능력과 용량뿐만이 아니었다. 태도는 더욱 그러했다. 나는 글을 겨우 마무리해 내느라, 그리고 그 거대한 일을 해냈다는 웃자란 자부심에 취해 내 글을 읽어줄 고맙고 감사한 사람에게 예의를 다하지 못했다. 아니, 사실 마지막 커서의 위치, 그리고 마지막 인쇄 형태를 살펴야 한다는 생각조차 나는 없었다. 예의에 무지했다.
“아니에요, 교수님. 결국은 디테일이잖아요. 제가 생각을 못했어요.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결코 빈 말이 아니었다. 글과 태도에 담긴 나의 무지가 나는 부끄러웠다. 차이는 결국 디테일에서 온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남이 만들어놓은 물건을 살 때 디테일이 허접하다며 손에 집었다가 놓기를 여러 번 해왔던 나였다. 남의 물건에 인색하던 나는 정작 내 글에서 디테일은커녕 기본에도 닿지 못했다. 나는 이 나이를 먹도록 여전히 겪어봐야 깨닫는, 한 치 앞을 모르는 부족한 사람이다.
교수님께 당연한 건 없었다. 수십 년간 논문을 써오셨지만, 나와 논문 작업을 하실 때 언제나 보고 또 보셨다. 아마추어의 듬성듬성한 눈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 문장이 교수님께는 보였고, ‘이제 그만 봐도 될 것 같은데.’하며 남이 내준 숙제를 하듯 빨리 해치워버리고만 싶은 제자와 달리 논문 앞에서 교수님은 진심이셨다. 논문의 논리를 세우고 치열한 교정과 교열과 수정을 거쳐 완성된 논문의 문장을 보며 나는 감히 프로의 세계에 처음으로 발을 담그는 듯했다. 이 논문에 내 이름을 올린다는 게 송구스럽기까지 했다. 내게는 감히 내가 혼자 못해볼 논문으로 보였지만 교수님께서는 심사결과를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셨다. 투고를 할 때에도, 학회지에 문의가 있으실 때에도, 출판사와 연락을 주고받을 실 때에도 교수님은 한 명 한 명을 허투루 대하지 않았다. 상대를 존중하는 교수님의 말투와 문장은 우아하고 품격이 있었다.
나보다 깊고 넓은 사람이 자신의 일을 대할 때 매번 겸손하고 성실한 태도를 기본으로 진심을 담은 정교함으로 해내고 있다는 완전한 사실을 알고 난 후 나는 조금 달라졌다. 교수님의 깊이를 감히 나는 갖지 못한다. 다만 나는 어깨너머로 배운 태도를 닮으려 노력했다. 논문을 쓸 때, 학회지와 연락을 주고받을 때, 초심자의 웃자란 자부심이 보일 때,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마다 교수님의 공부에 대한 진심과 겸손, 품격을 떠올리곤 했다. 덕분에 타자를 치는 내 손가락은 좀 더 공손한 단어를 골랐고 건네는 말에 상대에 대한 존중을 담았다. 그런 때마다 자신의 일에 진심을 다하는 단정한 스승의 태도를 어깨너머로 배우는 삶을 살고 있다는 감사함이 늘 마음에 차올랐다.
어디서도 제대로 배우는 게 힘든 게 요즘이다. 섣불리 아는 체했다가 꼰대가 되는 세상이다. 검색하면 다 나오는 세상에 뭘 가르쳐주냐 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내가 배운 건 어디에도 없다. 오직 교수님이 들이셨을 시간과 노력에만 새겨져 있던 그 태도를 내게 보여주셨다. 정말 귀한 건 한 사람에게만 있다. 부족한 내 글과 역량에 호되게 혼나는 순간에도 나는 교수님의 진심이 담긴 빨간 글씨 앞에 감사했다. 내 글을 읽어주신 시간에 감사했고, 점 하나 까지도 빼곡히 살펴주신 진심에 감사했고, 호되게 혼내주셔서 공부하는 일에 진심을 다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여주셔서 감사했다. 무엇보다 가르쳐주시는 데에 감사했다. 내가 어디까지 부족한 사람인지 매번 바닥을 치는 시간들에서도 내 한계를 탓했지 교수님께 혼난 일을 억울해한 적이 없다. 혼날 땐 혼 나야 배운다. 교수님께서 수정해 주신 초고와 심사본을 나는 간직할 수밖에 없는 확실한 이유이다.
존경하는 스승 한 명쯤 마음에 담고 사는 삶은 마음 한 자리가 따뜻하게 데워져 있는 것과 같다. 자주 뵙지도 못하고 한참 부족한 제자임에도 나를 알토란 같은 제자라 불러주시는 스승이 내게는 있다. 교수님 연구실에 가면 빼곡한 책장 사이에 부족한 제자가 부족한 마음을 담아 쓴 카드가 책들 앞에 여전히 세워져있다. 교수님은 늘 단정하셨지만, 부족한 마음도 늘 기억해주시는 분이다. 교수님의 제자가 된 덕분에 나는 언제나 배우는 사람이 된다. 조금씩 더 나아질 것만 같은 희망을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