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윤 Aug 02. 2024

우린 글로도 만나는 사이

어린이가 신경쓰는 것들 학교심리 글쓰기  

  수업이 끝나고 인사를 나눈다. "친구들, 안녕!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우리의 인사는 팽팽하게 당겨있던 고무줄에서 이제 막 놓은 손과 같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어린이들은 탕! 하고 발사되는 고무줄처럼 한치의 머뭇거림 없이 교실밖으로 빠져나간다. 즐거웠고, 즐거웠는데 일단 오늘은 보지 말자. 이런 느낌. 싱싱하고 완벽한 이별이다. 교실에서 오늘의 할 일을 다 해낸 어린이들의 하교에는 아쉬움이 없다. 이 완전한 매일의 헤어짐은 어린이에게도 나에게도 상쾌함을 준다. 그래, 우리 오늘도 온전했다. 잘 가라. 내일 또 보자.



  믹스커피 한 봉을 트며 고민한다. 한 봉 더? 오늘의 수업과 남은 업무를 가늠한다. 동시에 빼꼼히 나온 아랫배의 안녕을 눈으로 확인하고, 머릿속에 둥실 떠오른 지난겨울 건강검진에서 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위험의 경계에 있었던 그래프를 바늘로 톡 찌른다. 아침부터 오늘의 평화를 위해 이미 한 봉을 마셨던 기억도 나를 혼낸다. 한 봉만 하자. 아침에 한 잔, 오후에 한 잔, 믹스커피 두 봉만 해도 되는 날이면 그래도 괜찮은 날 아닌가 하는 합리화도 함께 해보는 오후이다.



  자리에 앉아할 일 저글링을 시작해 본다. 주제글쓰기 노트 검사를 먼저 할까, 수업준비를 먼저 할까, 3일 여 남은 보고공문을 먼저 처리할까. 일단 내 눈앞에 산모양으로 쌓여있는(정말 산 모양이다. 오늘 쓴 페이지를 펼친 채 뒤집어 있는 24개의 노트는 작은 동산을 이룬다.) 노트에 먼저 눈길이 간다. 저 산이 정돈되어야 내 책상이 정돈되겠지 싶다. 내 눈앞에 버티고 있는 물리적인 할 일은 늘 직관적인 힘이 세다.



  오늘의 주제는 "내가 요즘 신경 쓰는 것"이다. 국어시간에 낱말사전 만들기에서는 야구 선수 사전을, 미술 시간 셔츠 패턴 디자인에서는 연두색 셔츠를 바탕으로 빨간 스티치가 놓인 야구공과 노란 배트를 그려 넣고, 방과 후엔 정후와 야구놀이를 하는 민훈이의 신경은 역시나 야구이다. 어떻게 하면 투구를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느라 이렇게 저렇게 던져본다고 한다. 동시에 단원평가를 볼 때 꼭 한 문제씩 안 풀고 지나가는 태도에도 신경을 쓰고 있단다. 나는 파란색 모나미 펜으로 민훈이에게 댓글을 남긴다.



  '좋아하는 일 하나쯤 가지고 사는 하루는 참 즐겁지. 그 순간에는 단원평가 점수도, 학원 숙제도 생각이 안 나잖아. 해야 할 일의 세계에서 하고 싶은 일의 세계로 나를 데려가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그 일을 이미 민훈이가 스스로에게 해주고 있네. 잘하고 있어. 좋아 보여. 그리고,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는 것이니 좋아질 수밖에 없어.'



  도영이는 울기 전문인 성격을 신경 쓰고 있다고 했다. 기분이 안 좋아도, 좋아도, 시험 점수가 안 좋아도, 한 해가 끝나도, 한 학년이 끝나도 , 말싸움을 하다가 말이 안 나와도 눈물이 나는 걸 줄여야 할 것 같단다. 저학년 때 학교에 왔을 때가 위기였는데, 늦둥이여서 대학생 누나들은 귀여워하고, 아빠도 오냐오냐 해주시고, 엄마도 가끔 공부하라고 하시지만 오냐오냐 해주었는데 학교에 오니 친절의 세상이 쪼그라들고, 공부는 늘어나니 자신에 대한 존중감이 떨어져 눈물이 자주 났다고 한다. (절대 남 탓을 하는 건 아니라는 p.s와 함께) 남자로서(양성평등을 사랑하는 건 확실함을 밝히고) 덕분에 배우기도 하고 성장한 점도 있지만, 눈물을 줄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요즘이란다.



  자신의 성격의 원인을 스스로 진단해 보고 그곳에서 메타인지가 발달한 도영이의 글을 보며 나는 어떠한가를 생각해 본다. 나는 내 성격으로 세상을 경험하며 무엇을 얻었고, 어느 순간에 내 성격이 너무나 아쉬웠는지 떠올려본다. 남을 믿지 않는 내 성격은 상대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해 주었지만, 동시에 친밀한 관계 맺기에 자주 실패했던 내가 떠오른다. 도영이의 솔직한 글에 내 파란색 펜이 닿는다.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도영이가 애썼고 애쓰고 있구나. 내가 처한 상황을 읽고, 자신을 점검하는 도영이의 메타인지 덕분에 지금의 의젓한 도영이가 있는 게 맞네. 지금 하고 있는 네 생각과 태도가 다 맞아. 있지, 감정표현을 절제하는 게 세련되 보이기도 하지만, 주변 의미 있는 사람(가족, 절친)에겐 지금처럼 도영이의 말랑한 정서를 나누며 지내렴.'



  기름을 바른 조약돌처럼 반질반질 반듯한 글씨가 보인다. 하윤이의 노트다. 수학 문제를 풀 때 잔실수를 하는 태도를 신경 쓰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 연산 실수라던지, 문제에서 구하라는 것을 분명 읽었는데 다른 답을 써낸 자신의 시험지를 보면 화가 난단다. 하윤이는 글을 쓰면서도 화가 났나 보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토로가 담긴다. 벌써 중학교 수학 선행을 달리고 있고, 매일 학원 숙제와 경시준비에 씨름하는 하윤이를 안다. 새벽까지 학원 숙제를 하느라 피로한 얼굴로 등교를 하더니 요즘엔 아침 시간에 졸기도 한다. 그런 하윤이를 보며 나는 일부러 "하윤아, 창문 열어줘. 환기하자!" 할 뿐이다.



  그렇게 컨디션이 올라오면 수업시간에 누구보다 진지하게 설명을 듣고, 공책정리를 한다. 사회시간에 모둠 보고서를 작성할 때 제 의견을 나서서 주장하기보다 친구들의 의견을 듣고 논리적으로 정리해서 모둠 보고서의 완성도를 높인다. 체육시간에는 높이 뛰기를 해보겠다고 머리를 질끈 묶고 그 작은 체구로 야무지게 뛰어와서 그대로 슬라이딩을 하고는 멋쩍게 돌아서서 다시 줄의 맨 뒤에 서서 다음 차례를 기다린다. 쉬는 시간에는 무조건 교실 뒤에서 친구들과 놀고, 점심시간에는 학교 놀이공간에서 볼이 빨개지게 잡기놀이를 하고 돌아온다.  



  하윤이는 아마 왜 공부를 하는지 알고 있을게 분명하다. 알고 있더라도 힘듦에 대한 투정은 누구나 부릴 수 있다. 순간 하윤이가 안쓰러워서 '에잇, 하윤이는 왜 공부를 잘해가지고!' 하는 생각이 불쑥 든다. 동시에 자신의 일을 잘 해내고 있는 사람에게 안쓰러운 마음을 갖는 것은 얼마나 오만한가 하는 생각도 떠오른다. 내가 뭔데 하윤이의 노력의 시간을 안쓰러워하는가. 누구나 자신의 역량만큼의 스트레스는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나는 하윤이의 선행과 학원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천장화를 그릴 때, 매일 불평을 하면서도 오늘의 할 일인 '조르나타' 한 부분씩을 해냈고, 그 결과 무한한 근면의 결과가 지금의 나를 감동시키고 있음에 밑줄을 그었던 나는 하윤이의 조르나타를 안쓰럽게만 여기면 안 된다. 힘듦은 알아주되, 그 시간을 응원해 주는 게 나의 몫이다.



  오늘은 하윤이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잘하는 것을 더 잘하기 위한 시간이란다.' 하는 말로 하윤이의 시간을 응원하기엔 과연 어디까지 더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윤이의 힘듦에 내 댓글이 축 쳐질게 보인다. 힘듦에만 공감해 주기엔 하윤이가 자신의 힘듦에 더 초점을 맞출까 봐 망설여진다. 이 말과 저 말을 만지작 거리는 손에 선생다운 말과 어른의 말로 하윤이를 누르고 싶지 않은 내 마음도 만져진다. 일단 오늘은 하윤이의 노트를 접는다. 내 파란 펜이 하윤이에게 닿기에 나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내 할 일을 빨리 해치워버리자고 쉽게 떠오르는 어른의 낡은 생각을 적고 싶지는 않다. 진심에는 진심으로 대하는 게 맞으니까.



  해윤이는 말투와 표정에 신경을 쓰고 있단다. 요즘 친구들에게 '해윤이가 째려봤어요.', '해윤이가 됐어! 하고 째려보고 말하는 게 기분 나빠요.' 하는 신고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었다.  놀이시간이나 모둠활동 때 해윤이가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친구는 해윤이에게 '이렇게 하면 안 되지.'하고, 해윤이는 민망함에 친구를 째려보고 '뭐~' 하며 응수한다. 해윤이의 말투와 행동에 기분이 상한 친구는 사과를 요구하고 해윤이는 아차 싶지만 역시나 민망함에 '뭐~'하고 지나가버린다. 나에게 SOS가 들어오면 둘을 불러서 서로 원하는 것을 대화하게 한 후, 해윤이와 따로 이야기를 한다. '해윤아, 그렇게 하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해윤이를 불편해해. 그러다 보면 해윤이가 외로워질 수가 있어.' 그럴 때마다 해윤이도 상기된 볼로 힘이 빠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해윤이도 적잖이 신경을 쓰고 있었다. 고치려고 노력하지만 날카로운 말과 뾰족한 눈빛이 불쑥 나와서 고민이란다. 집에서는 이 표정이면 언니와 싸움에서 이겨서 하기 싫은 것을 피할 수 있었는데 학교에서는 도통 통하지가 않는다. 이미 강화된 행동을 수정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지만, 어린이에게는 시간이라는 길고 풍부한 자원과 말랑말한 마음이라는 자산이 두둑하다. 해윤이의 행동에 SOS를 치지만 곧바로 해윤이와 같이 노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노력의 연료가 되어준다.


  '해윤이도 신경 쓰고 있구나. 그랬을 거야. 해윤이도 친구를 좋아하고 해윤이를 좋아하는 친구가 많으니까. 지금의 관계를 위해서 해윤이도 친구들도 함께 노력하고 있잖니. 의견이 맞지 않을 때, 화가 나더라도 그 화를 해윤이와 상대가 편안하게 느끼도록 표현하는 것도 이젠 연습해 보자. 해윤이도 그만큼 컸거든. 그리고 순간 규칙을 지키지 않아서 친구가 말해주면 놀라지 않아도 돼. 민망하겠지만 '아 그랬어? 미안해.' 하면 돼. '뭐~' 대신 '미안해'로 대답을 바꾸는 연습도 해보자. 이 연습이 해윤이를 도울 거야. 그리고, 이제 선생님은 해윤이를 '친절한 해윤이'라고 부를 거야.'



  가끔 튀어나오는 해윤이의 표정을 볼 때마다 나는 과장된 표정으로 '어머나! 친절한 해윤아, 무슨 일이야.' 하곤 했다. 머쓱한 해윤이가 이내 미안한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보면, 친구는 '친절한 해윤아~왜 그래.' 하며 응답한다. 어린이들은 이렇게 서로를 키우며 산다.



  24개의 산모양은 이제 모두 접힌 채 쌓여 빌딩모양으로 바뀌었다. 손목이 약간 시큰거리고, 볼펜을 쥐었던 중지 손가락 마디 끝 왼쪽이 부어올랐다. 그래도 마우스와 타자로 하는 일보다 손글씨를 쓰는 일은 어깨에 부담을 덜 주는 것 같다. 아니다. 어쩌면 손글씨를 쓰는 시간이 마우스와 타자를 잡는 시간보다 적은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올망졸망한 어린이의 손글씨에 어른의 손글씨를 남기는 일을 나는 오늘도 할 수 있었다. 시간이 들지만 시간이 들어서 좋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마무리했다. 오늘도 빈자리마다 생각과 마음의 풍선이 동동 떠올라 빈 교실을 채우는 오후를 맞이했다. 참 좋아하는 오후의 교실이다.



 

  나는 다른 곳으로 신경의 방향을 돌린다. 내가 요즘 신경 쓰는 건 무엇인가 하며 내 요즘을 반추하는 일에 쏟아 내가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면 참으로 좋겠지만, 일단 닥친 일은 반드시 해내야 하는 K-직장인으로 내 신경은 내일 수업이다. 사회시간에 지역 문제 해결 방안을 토의하기 위해 지역 신문을 검색한다. 학생들이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기사를 모은다. 안 되는 게 왜 이리 많은가. 그나마 명절 시즌 선물 포장 쓰레기 문제, 지역 특산물 산업 경기 침체 문제, 어린이 보호구역 내 주정차 문제, 전동킥보드 사용 문제를 골라 학습지 내용을 채워 넣고 편집을 한다. 사물놀이 악기를 연주하러 가기로 한 음악실 시간표를 확인하고, 과학 실험 재료인 자석, 철과 플라스틱 링을 점검한다. 내일의 식량을 곳간에 쌓아두었으니 마음이 든든하다.



  내 기준으로 중요한 일을 해냈으니 이제 해야 할 일 차례이다. 공문 작성은 참 신기하기도 하지. 기안문을 작성하는 일 앞에서 나는 언제나 신규가 된다. 이게 맞겠지? 논문에도 활유체를 써넣어 교수님께 지도를 받았던 자아는 지우고 공무원의 자아로 레드썬! 관련 공문서의 번호를 따고, 기안문 서식에 따라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장을 적는다. 우리 어린이들의 노트엔 파란색 펜으로 내 마음을 적었다면, 필요한 말만 허락되는 기안문에는 뜨거운 가슴은 사치다. 결코 차갑고 반듯한 까만 글씨만 넣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는 이 온도차를 느끼는 것도 어려움이자 재미난 일이다. 내 안엔 역시 내가 많다. 오탈자와 첨부파일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결재라인을 밟아 기안문을 상신한다. 제발 틀리지 말아라. 제발.


 

  보람찬 마음으로 컴퓨터를 끈다. 오후에 믹스 한 봉보다는 좀 더 일을 더 한 것 같지만 퇴근이니까. 많은 날 학교의 일이 집까지 따라오지만 오늘 같은 날도 있다. 손을 쭉 뻗어 퇴근에 터치하는 순간, 나는 오늘의 레이스를 끝낸 선수이다. 내일로 이어지는 일이 없는 오늘 같은 날, 나는 금메달 메달리스트가 된다. 금메달을 확인하는 순간 아쉬움도 피로도 내 몸에서 휘발되고 가벼운 기분만 남은 기분. 오늘은 나도 교실을 빠져나가던 어린이들처럼 내 교실과 완벽한 이별을 한다.



  아, 교실문을 잠그며 못다 한 하나가 떠오른다. 하윤이에게 해줄 말. 함께 살고 있지만 조금 먼저 살아본 사람으로 해주고 싶은 말. 나는 아직은 그런 말을 써줄 수 있는 사람이기에 좀 더 읽고, 배우고, 말을 고르고 골라야 하는 것은 남은 하루에 내게 남겨진 당위가 된다.

  



  

이전 13화 다정과 성실이 윤을 내는 곳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