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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Jul 01. 2024

사람은 원래 남의 말 잘 안듣는다

학교심리

  학생들이 지체 없이 움직이는 순간이 2번 있다. 하나는 점심시간이 그렇고, 또 하나의 속도전은 하교시간이다. 학교가 좋다고 말해놓고 쓱 썰물처럼 빠진다. 어느새 교실의 소란이 잠잠해지고 나는 못다 한 업무를 위해 자리에 앉는다. 오늘따라 맨 앞자리 희성이가 주섬주섬 느리게 가방을 싸고 있다.

  "희성이 안 가?"

  "가야죠, 오늘은 시간이 좀 여유가 있어요."

  "응, 그래. 천천히 해. "

  "어? 선생님! 교실 앞 청소를 안 했나 봐요. 이거 제가 좀 쓸고 갈까요?"

  "그래? 그러면 고맙지."


  희성이는 별안간 청소함에서 빗자루를 들고 냉큼 교실 앞까지 왔다. 그리곤 교실 앞에 떨어진 쓰레기를 쓸고는 밀대까지 꺼낸다.

  "희성아, 괜찮아. 그것까지 안 해도 돼. 금요일 대청소때 하면 돼."

  "한번 할 때 제대로 해야죠."

  "학원 늦지 않게 시간 잘 봐. 늦으면 여러 곳에서 걱정하시는 거 알지? 하긴 희성이가 알아서 잘하겠지."

  "네, 그럼요."

  "맞아, 희성이는 다 생각이 있으니까. 그렇지?"

  "네, 선생님. 그런데, 있잖아요."


  

  두둥. 나와버렸다. 이 말.

  '그런데, 있잖아요.'

쉬는 시간에 이전 수업을 끝내고 다음 시간을 준비할 때, 점심시간에 이를 닦고 자리에 앉을 때 학생이 다가온다. 늘 같은 말로 시작한다.

  '선생님! 있잖아요.‘

이 말이라 함은 이제부터 나의 시간이 끝났다는 의미이다. 학생들이 제 억울함을 토로하는 그 줄의 짧은 어구는 내 귀로 들어와 이마로 이어진 전선을 타고 흐른다. 찌릿. 타자를 치던 손이 멈춘다.



  “응?”

  "고민이 있어요. 제가 1반에 지환이랑 어릴 때부터 친했거든요. 같이 축구도 하고 놀기도 하고 그랬어요. 아시죠? 지환이."

  "응, 알지."

  "그런데 요즘 지환이랑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요. 그게 고민이에요."

  "희성이는 지환이랑 계속 친하고 싶구나."

  "네, 그런데 지환이랑 저랑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축구는 같이 좋아하거든요. 원래 지환이랑 저는 제일 친했는데 요즘 지환이가 다른 친구들이랑 더 잘 지내는 거 같아요."



  희성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고 밀대로 교실 바닥을 밀며 천천히 말한다. 단어 하나 소리 하나마다 서운함과 어려움이 배어있다.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의 직접적이고 솔직한 고민상담에 나는 다소 당황했다. 동시에 사춘기 초입의 희성이가 내민 용기에 손을 뻗어 잡아주고 싶었다. 마음에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까. 나는 타자를 치던 손가락과 모니터를 향했던 눈을 희성이 쪽으로 돌렸다. 건조한 손가락과 눈빛에 경청의 마음을 담았다.



  요즘의 희성이를 나도 걱정했다. 과학적 사고력이 우수한 희성이는 과학시간 실험을 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과학 실험순서를 파악하여 모둠원의 역할을 나누어 순서를 정해주는 일을 잘한다. 모터로 움직이는 자동차 만들기 실험을 할 때에도 일찌감치 제 것을 완성한 후 조립에 실패한 친구들의 키트 수정을 먼저 가서 도와준다. 여기저기서 희성이를 찾는 목소리가 가득한 과학시간이 많다. 사회 보고서를 쓸 때에도 들어갈 내용을 선정한 후, 보고서 용지에 어떻게 배치할지 주도적으로 정리하여 모둠원에서 역할을 배분해주곤 한다. 다른 친구들은 조사한 내용을 종이에 정리하여 붙이는 것으로 그치는데 반해 책자모양으로 디자인하여 색다르게 보고서를 제작하는 것도 희성이의 강점이다. 덕분에 희성이가 있는 모둠 활동의 결과는 다른 모둠에 비해 조직화와 정교화, 그리고 참신함의 정도가 우수하다.



  성격 강점은 양면이어서 두드러진 강점은 뒷면에 약점을 붙이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모둠활동을 할 때 희성이 모둠은 의견차이가 크게 나는 편이다. 희성이가 보고서 내용을 이렇게 쓰자고 제안하면 다른 친구들이 각기 다른 의견을 낸다. 시간이 흘러도 의견이 조율되지 않는다. 나는 남은 시간을 공지하며 토의보다 지금은 보고서 작성을 시작할 시간임을 안내한다. 결국 초등학생들의 가장 공정한 방법, 가위바위보로 하기로 한다. 하지만 희성이는 여기에 응하지 않는다. 제 생각이 옳기 때문인데, 가위바위보를 해서 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한 소리가 들린다.



  "야, 결국은 너는 지금 네 말대로만 하고 싶다는 거잖아. 그렇지?"

  "아니, 그 말이 아니라."

  "그 말이잖아, 지금. 다 네 말만 옳다고 하는 거잖아."

결국 희성이는 붉어진 얼굴에 눈물이 고였다.



  발달은 일정한 발생학적 순서를 따르지만 그 속도와 시기에는 개인차가 있다. 희성이는 1월생이다. 더욱이 비슷한 월령의 친구들에 비해서도 인지능력 발달이 빠른 편이다. 초등학교 시기엔 여전히 월령에 의한 발달적 차이를 보이곤 한다. 1-3월생들은 학교에서 상황파악이 좀 더 빠르고, 인지와 운동능력이 좀 더 발달해 있기 마련이다. 반면에 10-12월생은 상황대처능력과 인지능력이 다소 느린 편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 격차는 줄어들어서 고학년이 되면 인지능력과 운동 및 상황파악 능력이 비슷해진다.


 

  희성이 뿐만 아니라 월령이 빠른 아이들은 저학년 시기에 학교생활 적응에 좀 더 수월하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지시사항을 듣고 이해하는 능력이 좀 더 발달해 있는 상태여서 실수를 덜하고 일의 순서를 잡을 줄 안다. 교과서를 펴고 어느 부분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파악이 가능하다. 지금이 어떤 시간이고,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수월하다. 그러다 보니 모둠활동을 할 때 친구들이 빠른 월령의 친구들을 따른다. 빠른 월령의 학생들은 제 말이 다 받아들여진 경험이 많고, 제 의견대로 모둠활동이 진행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 친구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는 고학년이 되면서부터이다. 고학년이 되면 학생들은 월령 차이가 희미해진다. 누구나 학교생활에 경험이 누적되어 사회화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고, 인지능력과 언어능력이 월등히 발달한 상태이다. 그동안 주도적으로 제 목소리가 받아들여졌던 경험 덕분에 학교 생활을 잘 해냈던 빠른 월령 학생들은 그 경험이 되려 독이 되는 낯선 경험을 마주하게 된다. 모둠활동을 하면 제 의견대로 흐르던 방향에 이젠 여러 목소리들이 길을 막는다. 친구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물론 친구들의 말도 들어보면 틀린 말은 아니나 내 의견과 다르다. 빠른 월령의 학생들은 여전히 제 방식이 효율적이고 적합하다 여기기에 제 고집을 쉽게 꺽지 않는다.



  "선생님, 저희 실험을 하는데 문제가 생겼어요."

  "응? 왜 어떤 단계가 잘 안돼?"

  "실험순서가 6개잖아요. 매스실린더에 물을 담아 오는 역할 1개, 종이에 소금과 설탕을 한 스푼씩 넣는 활동이 1개, 매스실린더에 소금이랑 설탕을 넣고 젓는 역할이 1개잖아요. 저는 종이에 설탕이랑 소금을 넣는 게 실험순서 2번에 같이 있으니까 이게 한 개 역할인데, 소민이는 소금이랑 설탕이 각각이니까 각각 나눠서 역할이 2개래요. 도저히 합의가 안돼요. 해결해 주세요."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희성이의 얼굴은 답답하고 일그러진다. 세상이 도무지 제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것 같아 야속하기만 하다. 세상에 대한 불신, 친구들에 대한 답답함이 가득한 얼굴이 나를 향한다.



  희성이는 요즘 제 의견과 다른 친구들의 목소리에 적잖이 당황하면서도 여전히 제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상대 친구도 더 이상 희성이의 말을 들어주지만은 않는다. 뭇 친구들에게 희성이는 고집쟁이처럼 보이고, 희성이 이에게 다른 친구들은 내 말은 하나 들어주지 않는 답답한 세상으로 보인다. 서로 내 말을 하는데 세상은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답답한, 믿을만하지 못한 세상 속에서 어린이들이 살고 있다 여긴다.



  이는 비단 월령이 빠른 문제만은 아니다. 월령의 차이가 아니더라도 목소리가 큰 학생, 표정이 좀 더 매서운 학생들은 처음엔 제 의견이 잘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친구들의 주변은 빈약해진다. 좋은 친구들은 그 친구 옆에 남아있지 않는다.



  친구는 멀어졌다가도 가까워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나는 지환이에 대한 희성이의 마음을 안다. 관계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희성이가 나에게 내민 손을 잡고 나는 사그라드는 불씨 앞에 서기로 한다. 내가 아닌 희성이가 두 볼을 부풀려가며 신선한 산소를 불어넣기를 바란다.



  나는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다 져주라고 해야 할까. 아니 그건 아니다. 나를 꾸며가며 유지한 우정은 쉽게 낡는다. 이해하라고 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다. 나는 희성이의 마음엔, 아니 모두의 마음엔 상대방에 대한 무조건적인 이해와 포용의 토양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참 정 없는 사람인 나는 겨우 이런 말을 건넨다.



   "희성아, 한 가지 생각을 바꿔보자. 사람은 원래 남의 말을 안 듣는다."

  "네?"

  "희성아, 생각해 봐. 너는 내 말을 잘 듣니? 선생님께서 그렇게 수업시간에 손 무릎 하고 눈 선생님! 귀는 경청! 하고 말씀하시는데도 수업시간에 희성이 옆 친구랑 대화하잖아. 그렇지? 희성이 선생님 말씀도 잘 안 듣잖아. 부모님 말씀은 잘 들어?"

  "아, 들을 때도 있고, 안 들을 때도 많지요."

  "그렇지? 다른 애들도 그래. 다른 애들도 선생님이 그렇게 교실에서 걷고, 계단 2개씩 점프하지 말라고 자주 말씀하시는데 꼭 안 지키는 애들도 있잖아. 선생님이 3월부터 학교폭력 안된다고, 싸우지 않아요, 했잖아. 근데 성우 지난주에 점심시간에 어쨌어?

  "싸웠어요."

  "그렇지? 성우가 선생님 말 들었으면 싸웠겠니? 게다가 부모님이 그렇게 게임 그만하라고 해도 게임하지. 그렇잖아? 결국 선생님 말씀도, 부모님 말씀도 안 듣는데 친구말은 듣겠니?"



  "아...!"

 희성이 입에서 짧은 소리가 나온다. 선생님에게 고민 상담을 했더니 이상하게 말도 안되는 소리가 희성이 귀에 꽂힌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상한 말은 참 이상한게, 그 이상한 말 덕에 희성이의 눈빛에 걱정이 걷힌다. 이상한 내 말에 희성이의 눈에 안도감이 어린다. 갑자기 내 이상한 말이 탄력이 붙기 시작한다.



  "원래 사람은 남의 말 잘 안 들어. 그러니까 원래 사람은 다 각자의 목소리가 있어. 잘 안 맞는 게 당연한 거야. 제 말이 다 옳거든."

  "아, 그래서 부모님도 싸우는 걸까요?"

  "그렇지! 오죽하면 부부사이가 로또 같다 하겠니. 하나도 맞는 게 없다고. 원래 사람은 안 맞아. 그게 당연한 건데, 가끔 맞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 그게 바로 행운이고, 영혼의 단짝을 만나는 거야. 그런 사람은 꽉 잡아라."

  "아하!"



  "쓸데없는 애기가 길었지? 희성아, 네 말이 옳다고 여기는 만큼 상대방도 마찬가지야. 다 제 말이 옳아. 오죽하면 중세시대에는 의회에서 서로 의견이 안 맞으면 칼싸움해서 한 명 죽어야 끝나고, 전쟁을 하고 그랬겠니. 다 제 말이 맞다고 여기기 때문이야. 그런데 매번 전쟁하고 결투하고 그러면 안 되겠잖아. 희성이가 바라는 건 이기는 거야, 잘 지내는 거야?"

  "잘 지내는 거요."

  "그렇지, 선생님은 그래서 희성이가 희망이 있다고 봐.



  "친구들과 다른 의견이 있을 때 늘 기억해. 이게 자연스러운 일이야. 너무 답답하게, 세상을 야속하게, 친구를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 다 다른 생김새만큼 다 다른 생각이 있어. 숲에 여러 종이 함께 뒤섞여야 건강한 숲이 되는 것처럼 세상도 마찬가지거든. 다양한 생각들이 공존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야.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합의는 잘 안돼. 그래서 사람들이 만든 제도가 뭘까? 우리 학급회의시간에 하는? "

  "아, 다수결이요?"

  "그렇지. 얼마나 합의가 어려운 거면 그렇게 하겠니. 또는 협상이야. 나라와 나라 간에 무역을 할 때도 내가 한 가지 손해 보고 한 가지 얻고, 상대도 한 가지 내어주면 한 가지 이득을 얻고 하는 거지. 그렇게 협상을 하는 거야."

  "서로 손해를 주고받고 이득을 주고받는 거예요?"

  "아마도. 시간 차도 있을 수 있지. 다만 그때 중요한 건 태도야. 아무리 친구라 해도 내 의견을 말할 때는 매너를 지켜야 해. 상대의 의견도 경청해야 해. 내 의견만큼 상대의 의견도 같은 무게를 갖거든. 그리고 결정된 사항은 따라야 그게 매너야. 그럴 때 좋은 사람이 희성이 주변에 모여. 절대 짜증 내는 말투는 안돼."

  "네."

  "어려울 거야. 쉽지 않아. 하지만 늘 생각해 희성아. 원래 사람은 의견이 다 다르다는 거. 이건 이상하게 아니라 이게 자연스러운 거라는 걸. 네 의견이 받아들여질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어. 항상 네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곳이라면 거기서 넌 외로울 거야. 쓴소리 하는 사람도 있어야 네가 성장해.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해."



  또 일장연설을 하고야 말았다. 희성이는 언젠가부터 제 발밑을 쓸던 밀대를 놓고 내 앞에 와 있었다. 교사라는 직업병이 이런 걸까. 희성이가 잘 들어준 덕에 나는 내 말만 하고야 말았다. 희성이에게 그렇게 세상엔 다양한 목소리가 있고, 타인의 말도 같은 무게로 경청하라고 해놓고 나는 내 말만 오래도록 했다. 내 논리에 의하면 희성이는 내 말을 안 듣는 게 맞으나, 나의 한계이자 나의 역할인 내 목소리에 나는 또 바보같이 희망을 걸어본다.



  지금 당장 지환이와 관계, 모둠 친구들과의 협의 태도를 고칠 수는 없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다만 희성이가 제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하기보다는 그게 자연스러운 일임을 알았으면 한다. 억울함으로 제 삶을 가리지 않았으면 한다. 세련되고 다정한 매너로 친구와 세상을 대하기를 바란다.



  내게 고민을 먼저 청한 사춘기 소년은 당연히 그럴 힘이 있는 아이임을 나는 안다. 이렇게 고민하는 것으로만 봐도 희성이는 이미 나빠지기엔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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