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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Jun 10. 2024

개근거지라는 말에는 콧방귀가 제격

학교심리


  학년 초에 학사력을 받으면 오른손에 펜을 드는 것은 기본값이다. 펜에게 새해의 운을 담아 재량휴업일을 체크하기 위함이다. 과연 공휴일과 주말 사이 징검다리 휴일에 우리 학교는 재량휴업을 할 것인가? 나는 달력에 몇 번의 예쁜 동그라미를 그리게 될 것인가. 한해살이의 보물 찾기가 시작되었다. 빨간 날과 빨간 날 사이에 아량 넓은 재량휴업일이라는 반짝이는 보물! 과연 내 것이 될 수 있을까!



  5월은 어린이날, 석가탄신일이 있으니 기대하며 눈을 크게 뜨고 열어본다. 올해 5월은 어린이날 대체휴일이 있어주시니 찬바람 부는 1월이지만 마음속엔 오월의 아름다움이 절로 넘실거린다. 너도 쉬고 나도 쉬고 우리 모두 쉬니 아름답지 아니한가. 이제 6월로 넘어간다. 현충일이 목요일이구나. 그렇다면 우리 학교는 과연 7일을 어떻게 계획했나 보자 보자.



  응!? 정말? 정말 이렇다고? 6월 7일은 등교일이다. 순간 1학기를 보내며 호주머니 몰래 숨겨둔 사탕을 도둑이라도 맞은 듯 순간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뭐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등교일 수는 법정일 수에 따르니 재량휴업일 하루 하면 방학 하루 늦춰지는 거라 조삼모사라고 여긴다. 이건 나만 생각했을 때이긴 하다.         


  

  엄마이기도 한 나의 다음 스텝은 아이 학교의 학사력을 보는 일이다. 이젠 떨리기 시작한다. 안되는데. 설마, 설마, 6월 7일 금요일이 재량휴업일이면 안되는데. 나는 출근하는데 아이를 어디 맡겨야 하면 나는 안되는데. 근무 학교의 재량휴업일 찾아 보물 찾기를 하던 나는 이제 아이 학교의 학사력을 째려본다.



  맙소사. 아이의 학교는 재량휴업일이다. 저학년인 아이를 키우는 일하는 엄마로 가장 아찔한 순간은 내가 일하는 날 아이가 쉴 때이다. 어쩔 수 있나. 나는 근무를, 아이는 할머니댁에 촌캉스를 보내는 수밖에. 무엇보다 6일 저녁이 깊어질수록 다음날 쉬는 아이를 더더욱 부러워하는 수밖에. 학교를 쉬는 것도 부러운데 엄마 없는 자유라니! 나의 당연한 부러움은 점점 깊어지겠지.           



  6월 7일 금요일, 출근길에 한산한 도로를 달리다 보니 자연스레 한 가지 생각이 두둥실 떠오른다.

  '나만 일하러 가나?'  여느 때보다 여유로운 아침을 통과해서 4층 교실로 올라왔다. 출근길 운전에 긴장이 없다니. 오늘만 같으면 참 좋겠다.

  “선생님! 오늘 예쁘세요!”

  “응 그렇겠지. 아마 어제도 예뻤을 거야.”

  “선생님! 오늘은 더 예쁘세요!”

  “조금 더 감정을 담아주겠니?”

어김없이 내 교실은 활짝 피었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일상적인 아침 인사를 나눈다. 친구들끼리 재잘대던 아이들이 이제 막 교실에 들어온 나를 반짝이며 맞아준다. 오늘따라 더 에너지가 솟아오른다.

  오늘은 왠지 하루를 덤으로 얻은 기분이다. 다들 쉬는데 나와 어린이들은 함께 모여 한 번 더 만난 느낌. 하루를 덤으로 얻은 것만 같아 아침부터 마음이 보람차다. 그렇다면, 오늘 더 열심히 배워야지.



  "좋은 날이에요. 오늘은 금요일이죠. 어제 쉬었는데 이상하게 왜 오늘 더 피곤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우리 오빠는 쉬어요."

여기저기서 오늘 쉬는 오빠들 이야기, 언니들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우리집 열살에게, 어린이들은 언니 누나 오빠 형들에게 부러움 한 뭉텅이 마음에 안고 모인 사이들이다. 나름의 동지애로 똘똘뭉친 사이 쯤 되겠다.

  "오늘 우리는 한 명도 다치지 않고 아무 일 없이 학교에 왔잖아요. 얼마나 좋아요. 하루를 더 얻은 기분이죠. 선생님은 오늘도 평소 금요일처럼, 아니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열심히 지낼 거예요. 아니다. 우리에게 매번 오는 금요일이지만 오늘 6월 7일 금요일은 인생에 한 번뿐인 6월 7일 금요일이니 새 날이네요. 새 날을 힘껏 안아주고 즐겁게 보내야겠어요. 물론 열심히! 자, 수학 익힘 채점하겠습니다."



  누군가에겐 징검다리 휴일에 쉬지 않는 빡빡한 6월 7일 금요일이겠다.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하지만 동시에 보통의 금요일이기도 하고, 유난히 하늘이 아름다운 유월의 첫 주 금요일이기도 하다. 한산한 출근길 도로를 달리며 나만 일한다는 생각과 여유로워 좋다는 생각이 공존하는 날이기도 하다. 나는 출근을 했지만 내 아이는 새벽부터 할머니 밭에 놀러 가서 밭을 뛰어다니고, 밭에 씌워둔 까만 비닐 위에 미끄럼을 타고, 땅 파고 있는 사진이 전송되는 날이기도 하다. 내 교실에서도 등교한 아이 20명과 체험학습을 쓴 아이 4명이 공존하는 날이기도 하다.



   나는 안다. 삶은 언제나 양면이었다는 것을. 명과 암, 오르막과 내리막, 봄과 겨울. 그렇게 삶의 양면은 맞닿아있다. 그저 나는 그 안에서 나를 믿으며 균형을 잡아가는 게 삶이라 배웠다. 어느 것 한 가지가 정답인 삶은 어디에도 없다.    



  개근거지라는 말을 들었다. 학교 다닐 때 체험학습 한번 쓰지 않고 개근을 하면 붙는 별명이란다. 부모가 여유가 없어서 체험학습을 한 번도 안 썼다는 게 조롱을 당할 일인가. 조롱을 넘어 폭력적인 저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어떤 말도 더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모든 삶의 원인을 돈으로만 보는 납작한 생각에 아니라고 말하는 내 말도 아까웠다.



  세상은 쇼츠가 아니다. 보이는 게 전부인 건 삶이 아니다. 휴일만 쉬며 성실하게 회사에 다니고 내 사업장 문을 여는 성실한 사람들이 있다. 연가가 유연한 직장에 근무하는 회사원도 있고, 연가 사용이 정해진 회사에 다니는 사람도 있다. 누가 더 부유한가는 언제 체험학습을 가느냐가 보여주는 게 아니다. 시간과 돈의 타이밍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모양은 아니다. 성실한 배움을 위해 학교스케줄에 맞추어 여행을 가는 게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고, 평생 얻기 어려운 장기 휴가를 얻은 덕분에 학교 스케줄을 빼고서라도 가족의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각자의 삶은 이렇게나 알록달록하고 입체적이다. 우리는 각자 원기둥 모양의 하루를, 원뿔 모양의 하루를, 구 모양의 하루를, 이십면체 모양의 하루를 각자의 걸음과 속도로 살아간다. 그러다 개근거지라는, 돈으로 모든 것을 폄하하는 폭력을 만나는 날도 온다. 어떻게든 우리의 성실히 입체적인 삶을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내려 납작하게 만들려는 그 속셈에 놀아나서는 안된다. 무시하면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살아온 하루들과 내 가치와 그로 인한 내 선택이 만든 내 삶은 그 정도의 말에 납작해질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성실함을 길러야 한다고 칭송하면서 동시에 성실함을 조롱한다. 시험을 위해 오답노트를 3-4번 보고, 교과서를 3 회독했다는 말을 하면 만들어진 영재라며 노력을 폄하하면서 노력하지 않았는데 시험을 잘 봤다고 하면 머리가 좋다고 치켜세워준다. 자수성가한 사람의 노력에 감탄과 동시에 독하다, 약삭빠르다와 같은 폄하 하면서 좋은 집안이나 자본가 부모를 둔 사람의 삶을 동경한다. 개근의 성실함을 비하하는 말을 하며 어린이에게 성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 노력의 빛이 바래지고 금수저의 삶을 동경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의 꿈은 돈 많은 백수가 된다.



  내 가치감은 성실함에서 온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노력을 나는 알아준다. 나는 잘하지는 못해도 출근 전 새벽수영을 다녀본 사람이라는 자신에 대한 믿음은 삶의 챌린지 앞에서 나를 믿는다.



  세상에 대한 믿음도 타인의 성실함에서 얻는다. 일요일에도 늘 같은 시간에 문을 열어주는 문구점 사장님 덕분에 고작 각도기 하나를 사러 가는 내 마음은 든든했다. 내일 준비물을 나는 가져갈 수 있다. 매일 문을 여는 문구점 사장님이 계시니까. 동네 문구점을 갈 때 나는 세상은 믿을만하다 느꼈다. 필요할 때 규칙적으로 문이 열려있고, 내가 찾는 지우개, 각도기, 삼각자, 컴퍼스를 나는 살 수 있었다. 이렇듯 각자의 성실함은 개인의 뿌듯함을 너머 타인을 돕는다. 성실함을 부릴수록 우리 삶이 더 나은 곳으로 걸어간다 믿는다.


 

  "선재가 아프군요. 고생하겠어요. 병원에 다녀와서 집에서 쉴 예정이면 내일 등교할 때 결석계를 제출해 주시면 됩니다. 병결에 대한 서류도 함께 보내주세요."

  "아, 결석처리인가요?"

  "네, 결석 종류가 병결, 기타, 미인정 이렇게 있습니다. 미인정은 쉽게 말하면 무단결석에 해당합니다. 결석계를 내면 출결처리가 아니라 무단이 아닌 병으로 인한 결석임을 증빙하는 거예요."

  "아, 그러면 선재에게 다시 말해볼게요. 출결을 중요하게 여기는 아이거든요."

2교시 중간놀이 시간 후, 선재는 헬쭉해진 얼굴로 교실에 들어왔다. 괜찮은지 묻는 말에 그래도 참을만하다고 말했다. 늘 장난스레 농담을 주고받던 선재의 에너지가 오늘은 조금 누그러져있었지만 제 자리를 찾아 교과서를 정리하며 여느 때보다 조금은 늦은 하루를 시작했다.



  어린이들은 매일 성실함의 문턱을 넘는다. 아침에 제시간에 일어나는 것, 학교에 오는 것, 숙제를 하고 공부를 하는 것, 책을 읽고 제시간에 잠을 자는 것. 그 과정에서 오늘도 나의 하루를 살아낸 스스로를 믿는다.

수학 익힘책 숙제를 오늘도 해온 내 짝을 볼때,

 ‘아앙~~ 선생님, 오늘은 체육 하면 안 돼요?'

하는 말에도 시간표대로

  “사회 책 폅니다." 하는 선생님의 여지없는 수업시작을 경험할 때 어린이는 세상을 믿는다. 매트 운동 수행평가를 위해 어떻게든 앞구르기를 성공하겠다고 티셔츠를 고무줄 바지 속으로 야무지게 넣고 매트 위에 선 친구를 보고 나도 티셔츠를 바지 허리춤에 꽂아 넣으며 우리의 노력을 서로 알아준다.




  예측불가능한 세상에 그래도 세상은 믿을만하다고, 내 주변엔 믿을만한 사람이 있다고 여기며 세상에 대한 신뢰감을 쌓는다. 성실함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세상에 살아가는 어린이는 오늘의 뿌듯함과 내일에 대한 희망과 낙관을 품는다. 개근거지라는 돌팍에 콧방귀 뀌며 내 걸음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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