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류 학자인 프란스 드 발은 관찰가능한 행동을 통해 젠더의 차이를 기술한다. 침팬치, 보노보와 같은 영장류를 중심으로, 여타의 동물들 사이에 보여지는 젠더의 차이를 보는 일은 타인의 삶을 보듯 흥미롭다.
젠더 차이는 이것이다, 하며 젠더의 차이에 관해 자신의 의미를 부여하여 정의내리지 않는다. 자신의 의견을 위해 편파적인 레퍼런스를 끌어들이기 보다는 그저 보여준다. 아무 목적없는 유전자의 역할, 관찰에 대한 판단보다는 이해로 젠더의 차이를 보여준다.
사심없는 관찰이 이렇게 겸손한 것이었다니! 생각해보면, 결국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다. 자연의 동물이 보이는 젠더의 차이를 보며, 인간 젠더도 결국 각자의 양상으로 다를 수 있음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삶의 경험들에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뜻이다. 내 경험을 주관적으로 편집하며 긍정적인 의미를 손에 쥐기도 하고, 불필요한 경험을 제거하며 내 삶을 가지치기 하며 살 수 있음이다. 내 삶을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가려는 욕구를 가진 모두가 바라는 삶의 태도일지 모른다.
단, 객관적 관찰이 없는 주관적 편집권은 이해보다는 판단을, 균형보다는 편향을 가져오기도 한다. 나에게 유리한 레퍼런스를 끌어오기 전에 여러 사례를 관찰하고, 관찰가능한 사실만을 기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목적도 염두에 두지 않는 유전자를 보고 목적과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는 가끔 내 생각을 고립시키기 마련이다.
의미의 레퍼런스는 관찰을 기반에 두어야한다.
사실과 의미 사이의 균형은 관찰에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