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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Oct 27. 2024

근사한 기다림_김소영[어린이라는 세계]

  삶에서 판단과 행동을 할 때 기본값으로 작용하는 기저의 생각이 몇 가지쯤 있게 마련이다. 내 판단의 기본값 중 하나는 이거다.

  ‘사람들이 대단치도 않은 나에게 그렇게 관심이 있겠어?’

평범하고 납작한 삶에 대한 자연스러운 생각이기도 하고, 어이없이도 쉽게 들키는 불안정회피애착이 남긴 흔적일 수도 있다.



  이 생각은 또 하나의 생각으로 연결된다.

  ‘사람들이 나를 몰랐으면 좋겠다.’

직장에서 없는 사람처럼 여겨지길 바라는 건 당연하고, 일상에서도 타인이 내 이름, 직업, 사는 곳, 휴대전화 번호, 가족사항을 아는 것이 불편하다. 가끔 내 일상에서 반짝이는 순간을 최대한 정성스럽게 찍는 sns에서도 일상은 최대한 숨긴다. sns를 계속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 sns에는 서사가 없어서 일상의 무료한 빛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sns는 내 일상의 금은보화들로 가득한 보석함 같은 곳이다.  



  특히 꽁꽁 싸매어 숨겨놓고 싶은 것은 직업이다. 내세울 게 없다 여기는 것도 이유고, 불편해지는 것도 이유이다. 무엇보다 직업을 말하는 순간 나라는 고유성의 어깨와 고개를 접어 그 틀에 나를 맞추는 게 심술이 날 정도로 싫었다. 최대한 나에게 내 직업의 표정과 행동이 묻지 않기를 바랐다.          



  가끔 세상은 노력대로 되지 않는다. 특히나 제일 감추고 싶은 부분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왜요, 제가 선생님처럼 보여요?’

신발을 사러 가고, 반찬을 사러 가고, 화분을 사러 가면 묻는다.

  “선생님이세요?”

훅 들어오는 가벼운 질문에 20대의 나는 손사래를 치며 호들갑스레 ‘아니에요.’ 하곤 했다. 아마도 적잖이 귀가 빨개졌을 것이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별일 아니라는 듯, 그런 말 자주 들어요 라는 느낌으로 가볍게 대처한다. 익숙함은 능청스러움을 낳기 마련이니까.         



  소소한 노력과 바람이 대차게 꺾이는 건 쉬웠다. 동네 학교 앞을 지나가는데 한 어린이가 나에게 꾸벅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오 마이 갓. 우리 학교가 아닌데! 나를 어떻게 발견했지? 나, 선생님 냄새가 나나?’

  “응, 안녕!”

하고 어린이와 지나치는 데 배시시 웃음이 난다. 어린이가 동네 아주머니로 꽁꽁 싸맨 나를 발견해 주었으니까.



 어린이와 함께 네 계절을 함께 보낸 지 17년이 지나고 있다. 17년 동안 매해 20여 명의 어린이를 만나지만 비슷한 어린이는 한 명도 없다. 어린이들은 각자의 눈과 볼, 입으로 각자의 미소를 갖는다. 한 번도 같은 적이 없는 하늘처럼 어린이들 한 명 한 명은 다 달라서 다른 색의 얼굴을 하고 교실에 앉고, 운동장을 뛰고, 손가락을 쥐어 자신만의 글씨를 쓴다. 색색의 어린이들의 다름은 어울려서, 어울리지 않아서 아름답다.          



  김소영 선생님도 어린이들을 만난다. 어린이를 만나는 사람은 다 알게 된다. 어린이들이 각자만의 빛을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 순간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간다고 할 때, ‘다양하다’는 사실상 ‘무한하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얻을 수 있는 고마운 순간이다. 먼지처럼 떠돌아다니던 내 생각을 작가는 핀셋으로 잡아 차분히 하얀 종이 위에 검고 반듯한 글자로 내려놓아 문장으로 남겨준다. 방구석 독자가 밑줄을 긋는 일은 혼자서 문장 속 작가님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순간이다. 어딘가 생각이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물성이 담긴 책장과 글자로 만나는 일은 독서가 주는 기쁨이 맞다.       



  덕분에 내 마음속에 반짝이는 어린이들을 내 생각으로 떠올려본다. 어린이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각자의 표정으로 조잘조잘하기 시작한다. 누구 한 명 먼저 선택할 수가 없어 선생님은 늘 핑계를 댄다. 오늘은 3월 7일이니 7번, 3 더하기 7이니 10번, 3월이니 3번 이야기해 보자는 식이다. 날짜와 번호가 있어서 다행인 순간이 교실엔 많다.           



  각자의 표정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어린이들을 보면 늘 웃음이 나곤 한다. 특히 월요일 아침시간. 누군가는 얼굴이 퉁퉁 부었고, 누군가는 학원 숙제에 지쳐 잠들어 피곤해하는 아이도 있다. 몸은 교실에 앉아있지만 머리맡은 집에 두고 온 듯한 표정도, 월요일에 교실에 앉아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표정도 있다. 비슷한 점이 있다면 게슴츠레한 눈들. 사회적 표정이 없는 신선한 표정에 웃음이 난다.    



  “어린이들! 오늘도 얼마나 학교를 오고 싶었을까요?”

  “학교에 오는 길에 얼마나 설레었을까요.”

  “어린이들! 월요일이라 좀 귀찮았겠지만 막상 학교 오니 어때요? 괜찮잖아요. 학교는 오면 괜찮은 곳이에요. “

  “어린이들! 학교는 공부하러 오는 곳이잖아요. 오늘도 이렇게 공부를 할 예정이니 오늘도 얼마나 의미 있는 날입니까. “          

어린이들은 자신들을 어린이라고 부르는 말에 한 번, 과장스러운 긍정표현에 한 번 흠칫 놀란다.

  “선생님이 무대를 뒤집어 놓으셨다.”

  “네네 선생님. 네네.”

  “맞아요! 우와! 맞아요. 오면 괜찮아요!”      



  한국말이 분명한데 익숙한 단어가 낯설게 배열된 내 말에 어지간히 귀가 간지러운 아이들이 뻐끔뻐끔 고개를 든다. 동굴에서 갑자기 불이 켜지듯 여기저기서 게슴츠레하던 눈의 면적이 넓어지며 이제야 빛을 낸다. 누군가는 일자였던 눈꼬리와 턱이 사선으로 방향을 튼다. 어이없다는 듯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어린이의 투명한 표정에 나도 반사적으로 웃음이 난다. 다행히도 사이사이 내 팬들은 내 눈에 제 반짝이는 눈을 맞춰주기도 하고 아하! 하고 깨닫는 표정을 활짝 짓는다. 어린이들의 표정은 언제나 이렇게 새것이다. 낡은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린이라는 투명함이 피어나는 순간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간질거린다.     



  나는 교탁에 걸터앉아 어린이들을 본다. 각각의 어린이들은 자신만의 표정의 꽃을 피우고 있다. 이 표정들을 보는 일은 오늘 하루 중 가장 웃긴 순간이다. 우리는 한 명씩 주말 지낸 이야기를 하며 월요일 아침을 깨운다. 부모님께서 산 새 차를 타고 나들이 다녀온 이야기, 숙제하느라 바빴던 이야기, 동생 심부름 해준 이야기, 자전거를 타고 온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누구 하나 같은 주말을 보낸 어린이가 없다. 각자의 고유성은 오늘도 각자의 빛으로 넘실거린다.           



  “오늘도 여러분이 무탈하게 교실에 오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요. 각자의 생활은 자주 힘들지만, 대부분은 괜찮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정말 힘들잖아요? 그러면 요즘 어때하고 물었을 때 ‘힘들어’ 하고 바로 말하거든요. 그렇지 않다? 그러면 괜찮은 거예요. 괜찮다는 건 좋다는 뜻이기도 해요. 행복을 거창한 게 아니어서 괜찮은 것도 행복한 거라고 선생님은 여겨요. 오늘도 괜찮은 하루일 겁니다.”

고루한 교사인 나는 일장연설을 하고야 만다. 이러니 선생님 냄새가 날 수밖에. 오늘도 나는 할 수 없이 선생님이 되어버렸다.      



  “리코더 시험이 1주일 남았죠. 1학기부터 리코더를 다루어왔고 지금은 시험을 예고한 지 1달이 되어가고 있죠. 그리고 여러분이 5학년이라는 것과 불면 소리가 나는 리코더는 단소처럼 소리가 어렵게 나는 악기도 아니라는 감안했을 때 지금까지 운지법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건 선생님은 하나라고 생각해요. 게으른 겁니다. 연습을 안 한 거예요. 제 노력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표정을 지우고 단호하게 전해지는 내 말에 몇몇 남자어린이들이 고개를 숙인다. 책과 역사, 맛있는 치킨과 유머를 사랑하고 큰 체격 안에 다정한 마음을 가진 한영이도 표정이 짐짓 심각해진다. 그렇게 음악시간이 끝이 났다.          



  일주일 후, 한영이는 긴장이 된다며 등을 돌려 리코더를 연주한다. 지금 한영이는 진심이다. 언제나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고 유머러스하던 얼굴에 진지함이 빼곡하다. 악보에 그려진 음표를 더듬더듬 열 손가락에 옮겨가며 한 음 한 음을 주의 깊게 연주한다. 끝까지. 오! 세련되지 않은 서툰 진심의 순정은 늘 사람을 무장해제시키곤 한다.

  "a 마이너스!“

나는 피도눈물도 없는 선생님이라 a+을 줄 수는 없지만, 나는 한영이를 바라보았다. 내 눈에 담긴 감격을 다정한 한영이는 느꼈을 것이다.



  다음 차례는 민형이. 우리 반에서 가장 목소리도 크고 활동성도 높지만 마음은 여리여리한 소년이다. 민형이도 높은 레와 낮은 도에서 음 이탈이 있었지만 더듬더듬 완주를 해냈다. 끝까지.



  마지막은 지후 차례. 악보를 보는 것도 어려워하고 리코더 운지법도 전혀 익히지 못했던 지후다. 떠듬떠듬 손가락을 움직여 소리를 낸다. 어떤 마디는 제 음을 내기도 하고 어떤 마디는 무슨 음을 내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느낌적인 느낌으로 지후가 악보의 음을 소리 내고 있다는 것은 느껴진다. 곡이 주는 전체적인 흐름을 타고 있다.           



  몇몇 친구들은 지후의 연주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거 아닌데 하는 표정. 지후는 순간순간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더욱 입을 굳게 다물고 입술 끝을 살짝 올리며 눈에 다정하지만 무게를 가진 눈빛으로 지후를 바라보며 지후의 음률에 맞추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바람은 하나였다. 끝까지 하자. 괜찮아. 끝까지 하면 돼. 다행히 우리 반 아이 누구도 지후가 연주하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들어주었다.



  지후는 알았을 것이다. 아니 알 수밖에 없다. 제 음이 다른 친구들의 유려한 흐름에 비해 서툴고 간혹 이탈이 나고 있다는 것을. 동시에 지후는 기억했을 것이다. 제가 들인 노력의 시간을. 그리고 오늘을 기억할 것이다. 한 곡을 완주해 본 경험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제게 주어진 완전한 시간동안 서툴지만 한 곡을 완주해 본 지후는 이전의 지후와 질적으로 달라졌음을. 제 손가락에 들인 시간과 노력 덕분에 지후는 한 곡을 악기로 연주해 본 경험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동시에 지후 연주에 스며든 떨림은 나를 감동시켰다.      



  어른은 기다려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어른의 기다림이 있을 때 어린이는 성취의 과정을 경험한다. 성취 경험은 영양소와 같아서 성취 영양소가 풍부한 어린이는 생각과 마음의 근육이 튼튼하게 자란다. 내 노력으로 상황을 바꾸어본 어린이는 세상에 맞설 때 해볼 만하다 느낀다.



나는 노력해 본 사람이니까. 어린이가 키워갈 세상에 대한 희망과 자부심은 어른이 기다려 준 너그러운 시간에서 온다.       



  나는 어른이 된 덕분에, 우리 교실에서 유일한 어른이 된 특권이 있는 덕분에 나는 오늘도 교실에서 어린이들에게 시간을 배분하고 나누어 준다. 실패할 수 있는 시간을, 성공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제대로 실수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미술작품을 끝까지 완성할 수 있는 시간, 리코더를 연습할 수 있는 시간, 각도기로 이리저리 각도를 재어볼 시간, 왕복 달리기를 하며 심장이 얼굴에서 뛰는 듯한 가쁜 숨의 시간을 준다. 어린이들이 지금 가진 제 능력의 한계를 경험하게 하는 일이 내 일이다. 손가락 끝에서부터 발가락 끝까지 최대한으로 뻗어 오늘보다 내일 제 손 끝과 발가락 끝이 닿는 곳이 더 멀어지게 돕는 일이 내 일이다.     



  고요하던 음악시간이 끝나고 한영이, 민형이, 지후가 교탁 앞으로 걸어 나온다. 걸음마다 뿌듯함이 담겨 경쾌한 무게감이 남다르다.

  “선생님, 덕분에 제가 리코더 연주를 해냈습니다!”

  “선생님, 제가 지난주에 선생님 말씀을 듣고 진짜 부끄러웠거든요. 선생님 덕분에 해냈어요!”

  “야, 우리 큰 절하자. 큰절!”

열두 살의 덩치 큰 소년 세 명이 별안간 바닥에 대고 큰절을 하기 시작한다. 황송함과 부끄러움은 이제 내 몫이다. 이 다정한 소년들의 마음이 내 마음보다 더 커서 나는 어쩔줄을 몰라 내가 어색해한다. 큰절을 하고 일어서는 열두 살 소년들의 표정은 꽃보다 활짝 피어있다. 뿌듯함의 향기가 온 교실에 울려 퍼진다.           



  ‘빨리빨리’라는 말은 참 쉬워서 언제나 내 혀 끝에 맴돌고 있는지 모른다. 쉬운 일을 많이 가지는 건 편리해지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어느 정도의 불편함이 때론 더 나은 행동일 수 있음을 안다. 분리수거를 하는 수고로움이 그렇고, 뒤 사람을 위해 내가 문을 잡아주는 일이 그렇고, 어린이를 기다려주는 일이 그렇다. 각자의 빛을 반사시키며 자신만의 삶의 꽃을 피워내고 있는 어린이를 대할 때 하나, 둘, 셋, 뜸을 들이는 일. 그게 내가 잊지 않고 불편하게 노력할 중요한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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