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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Oct 27. 2024

다정한 문장의 온기_한동일[라틴어 인생 문장]

 여고 시절, 나의 학교 급식소는 교실 건물과 떨어져 있었다. 식사 종이 치면 급식소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느라 이미 발가락은 슬리퍼 앞 끝보다 더 나와있다. 쇼트트랙 경기 결승선에 다리 내밀기가 있다면 급식소엔 슬리퍼 앞 끝보다 먼저 나가있는 돌진의 발가락이 있다. 밥을 먼저 먹고 싶었는지, 줄을 서서 기다리기가 싫었는지, 빨리 먹고 쉬고 싶었는지 그 이유는 알 수없지만 무조건 달렸다. 아마도 그 모든 이유들이 함께 시너지를 내서 내 다리에 연료가 되었지 싶다.



  급식소를 향해 달려가는 순간에도 웃었다. 투지를 불태우며 함께 뛰는 친구 표정이 웃기다고 웃었고, 네 발가락은 슬리퍼 위에 있는 거냐 이미 땅바닥에 닿은 거냐 말하면서 웃었고, 앞서가는 친구 교복을 끌어 잡고 그것도 웃기다며 웃었다. 식판 위의 반찬을 보고서야 오늘 메뉴가 무엇인지 알았던 것으로 보아 메뉴 때문에 뛴 것은 아니었지 싶다.



  내가, 그리고 내 친구들이 전력으로 뛰었던 그 2-3분여의 순간에 우리는 하루동안의 우리와 질적으로 달랐다. 직육면체 교실 안에서 30여 명의 십 대 소녀들은 다 책상과 의자 사이에 정지해 있었다. 꿈을 향해서, 해야 할 것 같아서, 뒤쳐지기 싫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서, 그냥 공부해야 하니까. 각자의 이유들과 의무들을 꽉 쥔 손으로 우리는 같은 일을 했다. 나는 그렇게 지내다 보니 괜찮았다. 같이 하니까. 나만 하는 건 아니니까. 시험만 안 보면 공부하면서 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 띠리링. 저녁 종이 치면 직육면체의 뒤축이 흔들린다. 그 순간 쭉 뻗은 복도는 전속력으로 달리기 위해 만들어진 직선코스인 게 자연스럽다. 달리면 숨이 찼다. 내 이마에 저녁의 찬 공기가 와닿았다. 내 몸이 바깥세상 공기에 반응을 하는 건 참 상쾌했다. 내 몸으로 신선한 공기가 들어와 폐를 가득 채우고 근육 사이사이에 들어갔다. 내 몸이 숨을 쉬었다. 찬 공기 알레르기가 있던 내 목은 찬 공기에 놀라 빨갛게 변하곤 했다. 또 빨개졌다! 그걸 보고 또 우리는 웃었다.



  웃을 수 있는 모든 것에 반응해서 웃었다. 교과서를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사람이 많이 나오면 매점에서 아이스크림 사기 내기를 할 때, 사람이 많이 나와도 웃었고 아무도 안 나와도 웃었다. 저녁을 먹고 나오며 보름달이 떴으면 별안간 서로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면서 웃었다. 선생님 흉을 보다가 선생님 성대모사를 하느라 웃었고, 교복 치마 아래 체육복을 입는 우리는 치마는 왜 입는 걸까 하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긴 시간 고단했고 짧은 시간 웃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고개만 옆으로 돌리면 옆에 친구가 있었다. 뒤로 돌아도 친구가 있었다. 손끝으로 가볍게 앞 친구의 등을 톡톡 치면 친구가 돌아보았다. 친구들로 둘러싸인 직육면체 안에서 싱긋, 쉬는 시간에는 우당탕탕 웃는 게 참 쉬웠다. 정적인 긴 시간에 리듬과 율동을 더해주는 일이 참 쉬웠다. 짧지만 손가락 끝까지 온몸으로 웃기가 쉬웠다.



  마흔의 지금, 여전히 긴 시간 고단하지만 짧게 웃기는 어렵다. 지금 내 옆엔 입고 있는 옷도, 하는 일도 다른 사람이 왔다 간다. 어른의 세상에 지인은 많으나 친구는 적다는 것을 한해마다 깨닫는다. 나 역시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 새 학기 친구에게 용기 내어 말을 걸던 나 역시 오고 가는 사람들 사이에 우뚝 서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빈 공간을 응시하는 것을 잘하게 되었다.



  외롭지만 외로워 보이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괜찮다고 여긴다. 엄마로서, 직장인으로서,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주부로서 할 일을 한다. 많은 내 역할들을 해내느라 자주 분주해서, 경험이 만들어준 익숙함이 힘이 세서 쉽게 웃기가 어렵다. 대신 그 역할들을 하는 과정에서 잘은 못해도 짜임새 있게 하고 있노라 안정감을 느낄 때가 있다. 내가 꾸린 가정과 일에 은은한 만족감의 윤슬을 느낄 때도 종종 있다.



  덜 반응하고 덜 웃지만, 여고시절 반응해 보고 웃어본 덕을 지금도 잔잔히 본다. 남편과 맥주를 주고받으며 농담을 한다. 시간을 맞추느라 어떻게든 오전 8시 30분에 문을 여는 가게를 찾아내어 겨우 둘러앉은 몇 안 되는 친구들과도 시시한 농담만 주고받고 온다. 보통의 일상도 괜찮다고 여긴다. 잔잔한 삶에 윤슬이 반짝이는 날이 내릴 때 감사함을 느낀다.



  그러다 슬쩍 세상에 더 반응하고 싶다. 정지해 있을 때도 괜찮았지만 달렸을 때 만났던 신선한 공기를 만나고 싶다. 아는 맛이 무섭듯, 한번 경험해 본 세상의 신선함은 가끔 나를 서성거리게 한다. 외로워 보이지 않는 어른인 내가 외로워지는 순간이다.



  요즘은 외로울 때 책을 본다. 이젠 작은 손끝만 대면 친구가 돌아보던 자리에 크고 작은 예쁜 색의 책들이 있다. 내 생각으로 가득 채운 내 세상에 신선한 공기가 필요할 때. 나와 다른 생각을 만나고 싶어 안달이 날 때 책장을 열어본다. 나와 같은 세상을 살고 있지만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을 만난다. 여고시절의 가볍고 충만한 웃음의 자리를 고요하지만 신기한 만남들로 채운다.



  겨울이 내린 저녁, 거실의 블랙 테이블의 한 끝엔 아홉 살이 앉아 숙제를 한다. 나는 맞은편 모서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통계를 돌린다. 숙제가 지루한 아홉 살은 연필 한번 보고, 연필에 붙은 네임텍 한번 뜯고, 책 모서리 한번 구기며 딴짓이 한창이다. 같은 집에서 서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아홉살과 나를 책과 문장으로 이어 본다.


“자, 한동일 선생님께서 뭐라고 하셨냐면, 노력에서 기쁨이 나옵니다 하셨어. “

”봄이 오면 꽃이 피듯이 노력은 명예를 돌려줍니다. “

나는 노트북 옆에 단정히 놓인 금박글씨가 엄숙한 검은 책을 들고 인덱스를 붙여둔 한 페이지를 아홉 살에게 읽어준다.

”엄마, 일을 더 잘하려면 쉬어라 하시는데요! “

음.... 지금은 아니야.



바깥세상에서 돌아온 남편과 저녁 식사를 마주하며 말한다.

”오늘 내가 읽은 문장이야. 삶은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물려받은 것들을 잘 감당하고 해결하는 과정이래. “

그렇게 또 맥주를 한잔 나눈다.


여고시절, 옆에 둔 교과서는 쉽게 닿을 수 있었다. 어떤 날은 글씨를 다 불태워버리겠다 노려보기도 하고,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사람 숫자만 세어 웃기도 했다. 옆에 있어서 쉽게 손이 닿았다. 그 덕을 참 야무지게도 보았다.



  이 책도 그렇다. 단단하게 내 손이 닿을 곳에 두고 싶다. 내가 나를 속이려 할 때,

당장 해야 할 일을 미루고 훗날의 걱정과 고민을 당겨하려고 할 때

내 몸과 습관에 달라붙은 감정과 태도에 갇혀 있을 때

이 책을 집어 들어 눈을 감고 아무 페이지나 열어보려 한다. 같은 문장도 내가 그날 쥐고 있던 역할과 의무의 빛에 따라 다르게 반사될 문장들이 가득해서 안심이 된다.



  책 안의 문장들을 만나며 비로소 나는 내 깊이를 내가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부끄러워하는 나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 이정표가 되어주는 문장의 힘으로 그날도 내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온몸으로 찬란하게 웃고 달리며 얻었던 신선함을 이제는 단정한 문장에서 얻는다. 가까운 곳에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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