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심리 사회정서학습(SEL) 강점(strength)
진로활동 시간, 오늘은 강점(strength) 장터를 열었다. 어린이들은 자기인식(self-awarance) 활동으로 나에게 집중하여 나의 강점을 발견한 후, 사회적 인식(social-awarance) 활동으로 타인의 강점들을 만나는 활동을 하기로 했다.
"자, 돋보기를 들고 나를 발견해 봅시다. 그중에서 나의 강점을 모아볼 거예요.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강점! 여러분은 어떤 것이 떠오르나요?"
네모난 교실 여기저기에서 똥그란 눈망울이 요리조리 떼굴떼굴 구르는 소리가 난다. 공부를 잘한다는 게 불쑥 생각이 났는데 말을 하자니 잘난 체를 하는 거 같아 겸손의 손으로 꾹 누르느라 발그레한 분홍빛 표정이 보인다. 저쪽에선 강점? 그렇게 거창한 거? 난 없는데 하는 의심에 고개가 왼쪽으로 갸우뚱하며 눈망울이 천장을 향한다. 이쪽에선 음, 그래도 내가 책을 좀 잘 보지, 운동은 좀 잘하지 하며 잘난 체를 하지 않아 보이면서도 스스로 만족스러운 강점이 노란 햇살처럼 떠올라 수긍하는 표정도 보인다.
"불쑥 떠오른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거예요. 몇몇은 부끄러워하는 거 같기도 하네요. 그러면 선생님이 한번 도와줄게요.
자 눈을 감고, 내가 자랑스러웠거나 뿌듯함을 느꼈던 일을 떠올려보세요. 꼭 1등을 하고 100점을 맞고 제일 잘하고 가 아니에요. 전보다 더 나아졌다는 것을 느꼈을 때, 내가 노력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내가 예전보다 나아졌음을 느꼈을 때. 예를 들면 체육대회날 우리 반이 꼴등을 하고 있었지만 내 차례에 정말 안감힘을 다해 뛰었던 그날의 나를 떠올리는 거예요. 나 스스로에게 좀 멋졌잖아요."
"선생님, 좀 잘난 체 하는 거 같아서 쓰기가 좀 그래요."
"잘난 체 좀 하면 어때요? 나한테 하는 건데. 선생님이 예전에 어디서 봤는데, 우리나라는 칭찬을 하면 아니에요. 하고 일단 말하는 게 겸손의 표현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는 상대방의 칭찬에 대해서 '아니에요.'하고 말하면 되려 칭찬한 상대방이 무안해한다고 해요. 내가 너의 좋은 면을 발견했는데 아니라고? 하고 생각하는 거죠. 이걸 보고 선생님은 상대방의 칭찬에 대해 '고마워'하고 말하는 게 어쩌면 더 자연스러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날 좋게 봐준 데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거죠. 여러분도 칭찬, 강점에 손사래를 치면서 '아이고, 아니에요. 아니에요.' 하기보다 '고마워.'하고 감사를 표현해 보세요. 나 자신에게도 칭찬해 주는 일을 자주 해보는 거 멋진 일 아니겠어요? 내가 나를 예뻐해 줘야죠. 자랑 좀 하면 어때요. 나한테 하는 건데. 먼저 10개만 써보세요."
어린이들은 그제야 잘난 체의 부담을 걷어내고 연필을 쥐어본다. 여전히 고개를 빼꼼히 들고 눈망울을 천장으로 왔다 갔다 하더니 이내 첫 문장을 써낸다. 첫 강점을 쓰니 두 번째, 세 번째는 고개를 들 새도 없이 강점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써진다. 우리 어린이들이 잘하는 일은 이렇게나 알록달록하다.
v학업: (영어, 수학, 과학, 국어, 미술, 공부, 노트정리, 발표, 손 무릎 눈 선생님 자세로 집중, 바른 글씨)를/을 잘한다
v신체활동:(야구, 배구, 달리기, 철봉, 걷기, 뛰기, 스트레칭)를/을 잘한다
v여가: (게임, 놀기, 춤추기, 영상편집, 레고, 연기)를/을 잘한다
v실생활: (청소, 돈 아끼기, 빨래 개기, 라면 끓이기, 재활용, 분리배출, 시간 지키는 일)를/을 잘한다
v관계: (동생 챙기기, 공감, 인사, 친해지기)를/을 잘한다
v자기이해: (노력, 생각, 아이디어 떠올리기)를/을 잘한다
"이번에는 우리의 두 번째 강점을 찾아봅시다. 여러분이 당연하다 여기는 일들이 어쩌면 여러분의 하루를 평화롭게 만들어주는 강점이 발휘된 효과예요. 생각해 보면 아무 일 없이 평화로운 하루란 내 강점일 자연스럽게 발휘된 하루예요. 여러분이 아프잖아요? 그러면 학교에 못 와요. 그러면 평소와 다른 날이 되겠죠. 건강하다는 것은 강점이 맞아요. 그렇죠? 이렇게 당연해서 사소하다 여겼던 나의 강점을 볼 수 있는 말과 행동을 샅샅이 돋보기를 들고 찾아봅시다."
건강하다.
양치질을 매일 빼먹지 않고 한다
미술작품을 끝까지 한다
욕을 하지 않는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바늘에 실을 잘 꿴다
밥을 3 공기 먹을 수 있다
전화를 잘 받는다, 잘 답장한다
깨끗이 잘 씻는다
말빨이 세다
방과 후를 빠지지 않고 꾸준히 간다
웬만하면 제시간에 끝낸다
'전화를 잘 받는다'에 움찔한다. 평소 엄마와 남편에게 전화를 한 번에 받으면 "어쩌려고 이번엔 전화를 받아?" 하는 말을 자주 듣는 나는 전화를 잘 받는 게 얼마나 큰 강점인지 수긍할 수밖에 없다. 뼈를 때리는 깨우침은 이렇게 불시에 온다. 며칠 전 아들의 바짓단이 길어 한 단을 접어 바느질을 하려는 데 실을 꿰는 게 여간 쉽지 않았던 아침도 떠오른다. 몇 번이고 꿰려 해도 쉽사리 내 갈색 실을 허락하지 않던 그 작고 작고 작은 바늘구멍 앞에 무력했던 나를 기억한다. 그래, 바늘에 실을 잘 꿰는 건 강점이 맞다. 순간 강점을 가진 어린이가 잔뜩 부러워진다. 우리 어린이들의 하루를 든든히 받쳐주는 자잘한 단단함이 온 교실을 반짝인다. 그 힘이 오늘의 우리 교실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있음이 새삼 감사한 순간이다.
"이번에는 나의 다부지고, 곱고, 멋진 마음을 들여다봅시다. 세찬 바람이 불고, 내가 가진 아름다운 마음을 찾아보세요."
봄에 풀 밭을 보면 마음속에서 시가 피어난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 말고는 포기하지 않는다
지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부모님을 사랑한다, 부모님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선생님을 좋아한다
노력하는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4학년 4반 14번이다
말에 마음이 담겨있다는 것을 안다
오후의 햇살이 제법 길게 들어오는 계절. 창밖의 햇살이 네모난 창문 안의 어린이들이 궁금한지 교실 깊숙이 들어온다. 살금살금 들어온 투명한 햇살이 어린이의 손에, 연필 끝에, 학습지에, 어린이의 마음을 투명하게 비춘다. '사각사각' 어린이들의 생각이 회색빛 선과 동그라미를 타고 글자가 되어 종이에 내려앉는 소리가 내 마음을 간질인다. 어린이들의 마음이 담기는 오후를 오늘도 만나고야 말았다. 어린이들의 작은 손에 글자라는 마법이 생겨나는 장면을 보는 일이란! 내 하루의 잔잔한 기쁨의 순간을 오늘도 만나고야 말았다. 교실 구석구석에 내려앉은 오후의 투명한 햇살을 닮은 신선한 우리의 시간이다.
발걸음을 조용히 옮기며 어린이들의 생각을 거니는데 우리 준서의 연필이 움직이지 않는다. 왼손잡이 준서는 왼손에 연필을 쥐고 한참을 학습지만 바라보고 있다. 준서는 아마도 그동안 싸워서, 욕을 해서, 친구의 물건을 망가뜨려서, 자전거 탈 때 헬맷을 안 써서 크게 혼났던 과거의 기억만이 어른거리는 게 틀림없다. 그래도 우리가 이제 10개월 차인데, 준서의 이야기를 나는 그래도 안다고 할 수 있으니.
"준서, 왜 안 쓰고 있어?"
"생각나는 게 없어요."
"왜, 준서 달리기 잘하잖아. 4학년 돼서 욕을 안 하기로 마음먹고는 실제로 해내고 있잖아. 게다가 요즘 수업시간에 준서가 손 무릎 눈 선생님 하고 선생님을 바라보는 태도랑 발표하는 모습은 요즘 우리 반 최고라고 선생님은 생각하는데?"
"맞아요, 선생님! 준서 요즘 수업시간에 집중 진짜 잘해요."
우리 반 호들갑쟁이 여학생 윤서가 내 말에 한 마디 거들어준다.
"그렇지? 준서 요즘 자세 정말 좋아. 선생님은 진실만을 말하는 거 알지? 그리고 준서 엄마랑 크리스마스 때 단 둘이 영화도 보고 데이트도 했다며. 준서는 엄마 좋아하잖아. 아마, 준서는 선생님도 좋아하지 않아?"
"맞아요, 선생님! 준서가 예전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만난 선생님 중에 제일 좋대요!"
"알지 알지. 우리 준서 선생님 좋아하잖아. 그렇지?"
"아니~그게요"'
"응? 준서 아니라고? 선생님 안 좋아해? 싫어해?"
"아니요."
그제야 준서가 부끄러운 듯 씩 웃더니 오른손으로 제 까까머리를 만지작거린다. 동그란 안경알 너머로 준서의 눈이 초승달이 되었다. 배시시 볼이 올라오더니 이내 연필 머리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키는 우리 반에서 2번째이지만 달리기는 1등이다
축구를 좋아한다. 축구 방과후 하는 날이 좋다
수학을 잘하진 못하지만 좋아한다
부모님을 사랑한다
선생님을 좋아한다
노력해서 욕을 지금은 안 한다
다치거나 넘어져도 절대 안 운다
"그렇지, 준서 이렇게 강점이 나오네. 왜 멈췄어? 준서 게다가 정직하잖아. 선생님은 준서가 학년 초에 친구랑 싸우거나 욕을 하거나 해도 언제나 준서가 좋고 믿을 수 있었던 게 정직한 모습이 보여서였거든. 왜 정직한 건 안 써?"
"저, 아니에요."
"응? 준서 거짓말도 막 하고 그래?"
"네, 그래서 못 써요."
부끄러운 마음을 보여준 준서의 말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준서를 다시 믿어버릴 수밖에 없다. 준서의 강점은 정직한 것이라 여길 수 밖에 없다. 다른 방법은 없다.
리코더를 불 때 악보를 보지 못하는 제 손에 답답해 눈물을 흘리는 준서에게
"그럴 수 있어. 괜찮아. 계이름 보여줄 테니까 하나씩 해보면 돼. 천천히 하면 다 되니까 울지 마." 하고 다독이며 나는 참 좋았다. 과학 시간에 발명품을 생각해내야 하는데 내가 보여준 예시를 그대로 옮겨적으며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던 준서가 나는 기특했다. 친구들이 왜 예시와 똑같이 했느냐고 채근할 때 눈물을 흘리던 준서를 나는 두둔할 수밖에 없다.
"준서가 욕을 못하니, 때리질 못하니. 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거야. 안 그래? 너희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야. 준서, 괜찮아."
말을 하면서도 이게 준서를 위하는 말인가 갸우뚱했지만 나는 준서가 우는 게 기특했다. 체육시간에 넘어지고 공을 맞고 아파도 절대 울지 않는 준서는 이렇게 제 배움이 답답할 때 울었다. 잘 하고 싶은 마음. 지금 준서에게 싹을 틔우는 그 마음을 발견했을 때 나는 기뻤다. 정직한 준서는 때로 행동이 서툴렀으나 마음은 진심이었다. 반성할 줄 알았고,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커오며 혼이 많이 났던 아이는 강점을 떠올리는 게 어려운 문제였을 것이다. 잘하는 것을 찾는 것보다 타인과 외부에서 들었던 혼내는 말과 눈빛, 표정이 더 쉽게 떠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어린이는 이미 자신만의 강점도, 약점도 가지고 있다. 다만 맑은 날이 많았던 어린이에 비해 안개에 덮여 잘 보이지 않았을 뿐. 하지만 나는 안다. 안갯속에도 자신만의 나무를 가진 숲이 있고, 자신만의 면적을 가진 호수가 있고, 제 움직임으로 살아가는 곤충도 동물도 있다. 안개 속엔 저마다의 울창한 숲이 있다.
나의 일은, 어쩌면 어린이의 강점을 발견해 주는 일. 다정한 시선으로 세심한 손길로 어린이에게 자신의 강점을 손에 쥐어주는 일. 어린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일 년의 시간 동안 잠깐 머물며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해야 하는 가장 귀한 일.
오후의 햇살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린다. 부정적인 말들에 가려져 있다고 해서 강점의 보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있다. 내가 자랑스러웠던 경험, 평범한 하루를 만들어주는 나의 사소하고 잔잔한 태도, 그리고 아름다운 마음. 각각의 어린이가 가진 서로 다른 강점 덕분에 어린이는 각자 고유한 the 어린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