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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하루의 비결

by 주윤

세상에게 차인 게 분명한 날이다. 낮은 추위가 발목을 붙잡아 잔뜩 무거워진 발 한 발자국 딛기 버거운 그런 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시작된 해야 할 일은 어김없이 까만 어둠이 내려서야 끝나는 그런 날. 해야 할 일이 시간에 묶여있어 정해진 시간을 채워야 끝나는 날. 시간과 추위가 이루어낸 시너지에 도무지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린, 오늘의 해야 할 일이 버거워지는 그런 오늘이다.


불쑥, 해야 할 일을 쳐내며 살아가는 내 하루가 남루하게 느껴진다. 해야 할 일로 꾸려진 날이 오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보통의 하루란, 해야 할 일이 시간표에 듬성듬성, 빼곡히 꾸려진 날이 아니었던가.


여느 때는 해야 할 일을 해내는 스스로에게 성실함을 느끼며 뿌듯함을 낚아왔던 날도 있었다. 하루는 변한 게 없다. 내가 변한 것. 정확히 말하자면 하루에 대한 내 주관적 평가가 변한 것이다. 알고 있지만, 속절없이 당하고 있다. 변덕스러운 마음이 불어닥친 까닭에 마음이 엎치락뒤치락 속 시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하루는 내 책임이라는 것을 안다. 초-중-고 12년 개근에 빛나는 나는 오전 수업과 오후 수업을 다 마치고, 저녁 강의까지 마쳤다. 심지어 종강이다. 하기 싫은 시험공부를 결국은 해냈을 학생들은 시험시간에도 제 생각을 B4에 쏟아내고 있다.


시험은 하기 싫지만 결국은 해내는 마음들이 이루어낸 크고 작은 승리들이 만나는 시간이다. 시험지는 한 학기 동안 배움으로 변화한 자신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내가 준비한 마지막 수업이자, 학생들에게는 하기 싫은 마음을 참아내며 인내한 앙금들의 결정체이다. 서로의 최선이 담긴 시험지는 그 어떤 종이보다 값짐을 나는 안다. 하기 싫은 일을 해냈으니 시험지를 만나 자신의 앎을 쏟아내며 한 학기 동안 배움으로 변화한 스스로를 발견하기를, 수업과 과제에 참여한 의미를 만나기를 바라고 바라본다.


그 시험지를 돌돌 말아 까만 사각 가방에 넣고 지도교수님 연구실로 간다.

“교수님, 전 오늘 종강을 했답니다.”

여전히 모니터 앞에서 지도학생의 논문을 수정해 주시는 교수님께서 “잘했네.”하신다. 내 논문을 봐주실 땐 빨간 볼펜으로 한 단어 한 문장 고쳐주셨는데, 이젠 파일을 보시는구나. 방법은 변했지만 빨간 글씨는 그대로이다.


집 서재에는 내가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A4용지가 있다. 무려 교수님의 연구년에 논문을 쓰겠다고 달려드는 제자의 말도 안 되는 문장을 읽어주시느라 교수님께서 첨삭해 주셨던 종이. 내가 개발세발 쓴 검정폰트보다 교수님의 빨간 펜이 더 많은 그 종이를 나는 버리지 못한다. 남편과 아이가 잠든 새벽, 서재 방 불을 켜고 들어가 온 새벽을 새워가며 썼던 엉성한 내 글을, 교수님께서는 온 새벽을 새워가며 읽어주시곤 했다. 말이 안 되는 검은 내 문장의 엉킨 실을 교수님께서는 어떻게는 말로 만들고자 빨간 바늘로 기워주셨던, 오롯이 각자 혼자였지만 의미를 만들기 위해 분투했던 우리 둘. 그 각자의 새벽을 안다. 버릴 수 없는 명확한 이유다. 살면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진심의 순간을 나눈 적이 있었다는 것은 살아갈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모니터에 집중하신 교수님을 아랑곳 않고 멀찌감치 테이블에 앉아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절거린다. 수업을 하다가 이런 일이 있었어요. 나이 드니 감기에 잘 걸려요. 지난번엔 대차게 넘어져서 피가 철철 났는데, 손에 들고 있던 와인병은 안 깨졌답니다. 반지를 잃어버린 걸 알고 다시 찾으러 갔다가 결국 찾았답니다. 이따금 조용히 호응해 주시는 교수님께 푸념도 털어놓는다.

“교수님, 00 선생님께서 이번 학회에서 진행을 하시더라고요. 참 대단하세요. 어떻게 그런 에너지가 나오시는지.”

“너도 논문 쓰고 강의도 잘하잖아.”

“저요? 저는 그냥 주어진 일만 하죠.”

“주윤아, 그거 대단한 거야. 주어진 일을 잘 해내잖아. 자부심을 가져.”


모니터에 향한 시선을 잠시 돌려 해주신 말씀에 덜컥 마음이 울린다. 허투루 하시는 말씀이 없으신 교수님께 들은 귀한 한 마디. 고만고만한 나여서 고만고만한 하루를 살고 있다는 우울감에 발목이 잡힌 하루였는데, 쑥 들어온 묵직한 직구.


물론 안다. 직구 한번 잘 들어가도 다음엔 볼 넷일 수도, 볼 셋을 던져서 네 번째 볼에 온 우주의 기운을 몰아넣느라 불안이 나를 휘감는 날도, 쓱 던졌는데 운이 좋게 희생 플라이를 유도해서 혼자 뿌듯함을 느낄 날도 있겠지. 순간은 다사다난 하지만 평균치의 관성으로 이루어진 보통의 날을 다시 살아갈 것을 안다. 한 마디의 말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지 않음도 안다.


그래도 마음을 울린 한 마디는 마음에 남는다. 정해진 일을 잘 해내는 사람. 자연스러운 보통의 하루는 해야 할 일들의 구멍을 잘 메울 때 이루어짐을 안다. 나는 그걸 잘하는 사람이다.


내일도 아이 학교 학예회에 가서 율동에 합창하는 열 살에게 힘껏 손을 흔들어주리라. 다음 수업까지 빠듯한 시간에 내리막길을 내달려 도로의 흐름을 바꾸며 질주해서 정해진 시간에 시험이 시작될 수 있게 하리라. 우리의 귀한 시간이니. 시험지를 내는 학생 한 명들에게 한 학기 동안 수고했다는 인사도 건네리라. 오늘이 우리 삶에 마지막 만남일 테니. 시험이 끝나면 나를 기다리는 열 살을 학원에 데려다주고 집에 와서 떡볶이를 먹어야지. 나름의 종강파티. 하루의 해야 할 일 마무리 파티. 그렇게 해야 할 일의 구멍을 메우며 오늘도 우아한 걸음을 걸어본다.


물론, 아침에 우아하게 대문을 나섰으나 휴대폰을 챙겨 오지 않아 헐레벌떡 다시 집에 와서 휴대폰을 찾을 테고, 촉박한 시간에도 여유를 부리는 열 살을 채근할 거고, 차 앞에서 차 키를 들고 오지 않았음을 알고 열리지 않는 차 앞에서 매우 언짢은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 사소한 구멍도 내가 막으며 내 하루의 책임을 다 할 것이다. 나는 내 일을 잘하는 사람이니까. 분주하게 움직인 덕분에 어느 순간은 우아할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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