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윤 Jun 03. 2022

마흔, 반려 피부 주름을 고백합니다.

  이제, 고백의 시간이다. 마흔 계의 초심자인 나는 그동안의 글에서 나이 듦에 대해, 마흔의 삶에 대한 예찬을 해왔다. 하지만, 이젠 서서히 하나씩 마흔이 되어 느껴지는 섭섭한 변화들에 대해서도 고백해보고자 한다. 그래야 진심으로 자연스러운 마흔이 되는 것 같다.                  



  과연, 우리의 리즈는 언제일까? 요즘 싸이월드를 복구한다는 소식에 이십 년을 넘게 알고 지낸 친구와 나누던 대화 중 우리는 우리끼리의 결론을 내렸다.

  “아이고! 난 복구 안 하지! 이십 대 때 나 너무 촌스러워! 안 예뻐!”

  “볼살은 또 어떻고!”

  “나는 지금 내가 제일 예뻐! 아니다. 아니다. 나는 작년이 제일 예뻐.

   나는 작년의 내가 제일 예쁘더라. 나의 경쟁상대는 작년의 나야”           


 

  십 대에서 이십 대 시절, 갸름한 얼굴이 마냥 부럽던 볼살 부자였던 나는 그냥 지금이, 아니 작년이 제일 예쁘다. 사진을 찍어보면 같은 계절, 같은 옷을 입고 있어도 눈에 띄게 티나 진 않지만 은근히, 미묘하게, 분위기가, 느낌이 작년이 좀 더 낫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서 하나만 꼭 찝어보면 그 중요한 이유는 피부이다. 작년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더 매끈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도대체 중력에 거스를 줄 모르는, 중력에 순종적이기만 한 이 피부의 수동성을 어째야 한단 말인가.



  나는 지난겨울 오후, 일을 하다가 당이 떨어져서 노동자의 커피, 맥심 커피믹스를 타 마시러 탕비실에 갔다. 전기 포트 버튼을 딸깍 누르고 고민에 빠졌다. 귀찮음을 몰고 오는 추위와 타협해서 귀찮은데 종이컵 쓸까 하다가 아니야! 하고는 머그컵을 쓰려고 컵 홀더 쪽으로 갔다. 내 컵을 꺼내 들고 무심코 고개를 들었는데, 쓸데없이 거울에 내가 비쳤다. 그때 거울 속 건조하고 가뭄에 시달린 내 얼굴엔 지진이 나 있었다.   


          

  아! 그때의 충격. 거울 속 내 얼굴에는 눈 머리에서부터 시작된 주름이 뺨까지 막힘없이 진격해있었다. 내 뺨까지 내려온 주름이라는 지진에는 자비가 없었다.

  ‘아니! 이렇게 전조 증상도 없이 갑자기 이런다고? 진짜 나한테 이런다고?’  


 

  원래 이십 대 후반부터 있던 눈가 주름은 반려 주름으로 받아들인 지 오래지만, 아니 이건 너무했다. 한때 엄마가 보름달 떴다고, 아주 짱짱하다고 했던 내 뺨이 주름에 그렇게 쉽게 길을 터주다니...! 물론 어느 날부턴가 그 짱짱하던 뺨도 간데없고 점점 홀쭉해져 갔지만, 그렇다고 주름이 생길 거라고는 말 안 해줬잖아...!  


          

  연필심보다 좁은 주름의 선들은 아직은 흐릿했으나 더 넓디넓은 뺨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충격적인 장악력을 보여줬다. 그날 나는 알아차렸다. 나는 아마도 이 겨울의 오후를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라는 것을.  


           

  원래 이런 문장들은 인생에서 충격적으로 멋진 순간들에 나오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보통의 중년 여성에게 나이 듦이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만큼 충격적인 것이 있을까. 멋지진 않지만 충격이라는 필요조건은 충족했기에 나는 그날 오후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 주름만큼.   


         

  나는 황급히 마음을 수습해보았다. 유난히 건조했던 겨울인 것으로, 일을 하다 보니 정서도 더 플랫 해졌기에 표정이 더욱 없어져서 더 그래 보이는 것으로 합리화해보았다. 그리고 거울을 보고 힘껏! 좋았던 기억을 다 끌어내어 웃어보았다. 아...! 주름이 더 선명해졌다. 이건 맙소사다. 이건 더 강력한 2차 지진을 몰고 왔다. 이제 그만!!!  


          

  더 이상 지진의 진격을 막기 위해 직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물을 좀 마시는 일, 히터를 끄는 일, 그리고 미스트를 구입하는 일이었다. 그걸로 절대 방어가 안 될 것 같은데... 그날 이후로 내 눈머리 앞에서부터 뺨까지, 그리고 마음에는 잔잔한 여진이 남겨졌다.     


       

  “내 얼굴 피부과 불모지잖아. 나 뭐해야 해?”

  나는 중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근력 손실에 휘청이는 나의 피부에 채찍질을 좀 해야 할 것만 같다. 내 마흔의 피부는 위기이다! 마흔에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준다면, 그것은 피부과를 가는 일이어야 할 것 같다. 그 아프다던, 그리고 비싼 가격에 두 번 운다는 그 레이저라는 것을 이제는 나도 내 얼굴에 해줘야 할 것 같다. 볼살이 빠지지 않으면서 탄력을 쫙 올려준다는 그 세계에 이제 내 얼굴도 들여보내 줘야 할 것만 같다.  


           

  남편은 운동을 하라고 한다. 쓸데없는 이야기... 배운 사람이 이렇게 말하다니. 답답한 소리에 차분하고 명랑하게 대꾸했다.

  “남편! 우리 나이 때는 운동도 하고! 레이저로 싸~악 올려주는 것도 병행해야 하는 거야!”

  그래도 남편이 이내 어느 정도 수긍한 것 같다. 휴~절반은 다행이다. 뭐든 성장에는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법이다.   


          

  실제 피부과에 다녀온 지인의 얼굴을 보니 확신이 든다. 그녀의 피부는 한결 윤기가 나고 턱이 날렵해 보인다. 아~원래 저분의 턱 뼈의 형태는 저러했는데 그동안 피부의 중력이 그것을 꽁꽁 숨겨뒀던 것이구나. 턱 뼈는 그동안 얼마나 억울했을까 싶다. 본디의 모습으로 자아실현할 기회를 겨우 중력에 굴복하는 살들 때문에 박탈당해왔다니! 내가 내 턱 뼈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할 것만 같다.   


               

  그렇게 또 몇 주가 지났다. 그동안 봄이 되었고, 이제 여름이 온다. 당장 피부과에 갈 것만 같던 나는 게으름에, 시간에, 비용에 대한 부담에 시작을 못했다. 아이에 관한 일이라면 망설이지 않았을 테지만 내 일에는 한 없이 시간이 있을 것 같아 미루고 또 미룬다.



  결국엔 어제일도 기억이 안나는 나는 피부과를 미루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는다. 그러다 문득! 피부과가 생각난다면 안 해본 사람이 갖는 자신감,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하는 무모함이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리고 마음속 마지노선을 둔다. 가을쯤...?     

 


  나이 듦에 따라 근육이 빠지면서 얼굴 근육도 이에 동조하는 것이 보인다. 꽉 잡아주던 근육의 빈자리에는 살들이 남아서 속절없이 중력에 굴복하고 있다. 그 과정에 수분감이 떨어지며 주름까지 합세한다. 어쩔 수 없는 나이 듦, 마흔의 피부이다.  


           

  마흔의 피부가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노화의 모습이 달갑지 않다. 그 시각적 충격이 크게도, 잔잔하게도 일상에 툭 펼쳐진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이 충격에 대응하고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익숙한 지금의 생활습관을 바꾸어서 불편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부는 하늘이 내리는 것으로, 비싼 화장품도 타고난 피부를 대 변혁시키지 못함을 눈치챈 마흔의 나는, 화장품을 바꾸기보다 장보기 물품을 바꾸기 시작했다. 피부에 좋은 것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토마토, 견과류, 닭가슴살, 녹색 잎채소, 샐러리를 샀다. 샐러드를 만들어 소금을 톡톡 뿌리고 올리브 바질 오일로 풍미를 주고, 화이트 발사믹으로 상큼함을 더한다. 그렇게 나를 아끼며 좋은 것을 먹여준다.     


        

  그리고 걷고 운동을 한다. 내 몸에 숨어있던 근육들이 자아실현할 수 있도록 내 근육들을 격려해준다. 가끔 내 다리 근육이, 팔 근육이, 종아리 근육이 나 여기 있었노라고 자기주장을 할 때가 있다. 그때의 뻐근한 뿌듯함이 좋다. 그렇게 울끈이 불끈이는 아니지만, 소소하고 잔잔한 내 근육들을 깨워서 근육 사이사이에 산소를 넣어준다. 그렇게 내 몸에도 상쾌함을 불어넣어 준다.    


        

  물론 가을에 피부과를  수도 있다.  번도 가보지 않은 피부과에 대한 호기심도 있고, 약간의 기대도 있다. 일단 시술을 받아보고, 나에게 맞는지 아닌지 판단해보고 싶기도 하다. 동시에, 나는 오늘보다  예쁠 내년의  얼굴에게 불어닥칠 노화의 속도를 조금은 누그러뜨리고자  일상에서도 노력하려고 한다. 피부 노화도 나름 꾸준히 자신의 작업을 진행할 것이 분명한데, 나라고 가만히 있을  없지 않나!  


           

  유병장수의 시대, 이제 노화도 반려 노화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내 일상에서 나를 아끼고 챙겨주는 노력과 반려 노화, 너는 투 트랙으로 함께 가자. 내가 쪼금은 더 힘써볼 테니, 반려 노화 너는 좀 쉬엄쉬엄 오거라.  

이전 19화 말로는 못하지만 글은 쓰고 싶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