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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Apr 26. 2022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 무광 매트 블랙 차를 보는 순간, 이건 보통이 아니다 싶었다. 차 문을 열어보니 내가 기존에 알던 운전대가 아니다. 도톰하여 손에 편안한 그립감을 주는 보통의 휠이 아닌 뼈대만 남은 듯한 철저히 기능적인 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시트는 또 움푹 패어있어서 엉덩이가 어디까지 쑥 들어가는지 가늠이 되지 않아 휘청했다. 5 점식 안전벨트까지 매고 나니, 내 몸의 무게중심이 엉덩이 쪽에 쏠리며 시트에 단단히 붙어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부아앙~~~!



  “차를 좋아해.”

  연애 초기, 그가 이런 말을 남겼을 때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그는 평범한 국내 순정 차를 타고 다녔기에 내 생각의 범주 안에서 이해했다.

  ‘뭐, 차 좋아하는 남자들 많고 많지. 웬만하면 다 좋아하지 않나?’

  “나도 좋아해. 운전도 재밌잖아.”          

  하지만, 이 기괴한 차 앞에 나는 황급히 입장을 바꿔야겠다.

  ‘나도 좋아해. 이런 차 빼고.’     



  이렇게 재미난 자신의 취미이자 자랑인 차를 내게 처음으로 보여주는 상황에서, 그는 이런 내 종잇장 같은 생각의 전환을 눈치챘을 리 없다. 그는 약간은 긴장했고, 그 이상은 너무나 재미있어 보였다.         


 

  “미친놈이라고 생각할까 봐 보여주기가 좀 그랬는데....”

부터 시작해서 그는 이 기괴한 차와 함께 보낸 공들인 시간과 경험을 줄줄줄 말한다. 목포에서 일하던 시절, 저녁 야간 근무까지 끝난 밤에 목포에서 인천까지 이 차를 수리하러 가서 밤새 내내 수리한 후 새벽에 다시 아침 출근을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어느새 그 재미진 날로 돌아간 듯 들떠있었다.



  어디 어디를 튜닝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이렇게 차가 기괴함에도 불구하고 소위 말하는 양카와 자신의 차는 무엇이 다른지 진지하게 말했다. 아마도 본인이 정신 나간 것은 맞지만 가볍게 미쳤다기보다는 기계적 지식과 차에 대한 철학에 근거하여 심도 있게 미쳐있는 것을 어필하려는 듯했다. 그리고 어디서든 이 차가 서있으면, 지인들에게 바로 너 어디 있지? 하며 연락이 왔다며 웃으며 말하는 그의 표정엔 기괴한 무광 블랙 차의 독보적인 존재감에 재미있어하면서도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것은 좋아하는 일에 흠뻑 빠진 사람만이 가질 수 있은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이었다.


  

  그는 그 차 이야기를 할 때 세상 철부지였다.

  ‘이렇게 위험한 데다, 돈을 잡아먹는 취미를 가진 남자를 만나도 될까?’

연애 초기의 나는 약간 걱정이 되었다. 아직은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발을 빼려면 지금 빨리 빼야 했다. 하지만, 과년한 나이에 인연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아는 나이이니 일단 고민은 접고 이야기를 더 들어보기로 했다.      



  아니, 사실은 그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삼촌이 생일선물로 주었던 자동차 잡지를 처음 만난 이후 자동차와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고등학교때도 시험이 끝나면 바로 서점에 가서 자동차 잡지를 사는 것이 수험시절 큰 즐거움이고 기대였다고 말했다. 그리곤 그 시절 자동차 잡지를 다 모아두고 있다 말했다. 그는 꼭 기계공학과에 가고 싶었다는 학창 시절의 꿈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또, 자신이 어릴적부터 매료되었던 페라리가 요즘 F1에서 벤츠에 힘을 못쓴다는 이야기. 왜 이탈리아 형아들의 페라리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며 그는 이탈리아 형아들이 추구하는 예술적인 선, 배기음의 조율 등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유용한 것들은 쓸모가 다 하면 그 힘을 잃지만 원래 무용했던 것들은 본래 유용했던 적이 없기에 힘을 잃지 않잖아. 하며 호응했고, 원래 명품은 디테일이지! 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는 내내 신이 났었다. 나는 그런 그가 매력적이었다. 자신이 흠뻑 빠져 좋아하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빛이 난다. 그는 너무나 철이 없어서 일상의 중력을 살짝 거슬러 올라 있었다.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흠뻑 좋아해 본 사람이어서, 그 좋음의 구체적 경험을 가진 그가 좋았다.         


  

  좋아하는 것이 있는 삶은 나를 나 답게 해주는 가장 멋진 삶이다. 내 삶에는 여러 경험이 찾아오거나 내가 찾아간다. 그 익명의 경험들이 나에게 노크를 해올 때, 처음에 나는 내가 이걸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 알쏭달쏭한 어설픈 느낌을 받는다. 그중에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갔을 경험이 내게는 왠지 긍정 정서를 불러일으키게 되면 이제 내가 그 경험을 자주 잡아당기게 된다. 계속해보고 싶은 그 좋아하는 것은 내게 즐거움을 준다. 그 순간 내 일상의 노력과 애씀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나만 있다. 이런 경험과 긍정 정서는 나에게 확신을 준다.           



  ‘난 이 것을 좋아한다.’

  ‘난 이것을 생각만 해도 좋고, 실제 할 때는 내 몸에 찌릿찌릿 전기가 통하는 듯 좋은 기분이 온몸에 흐른다.’          



  이런 정서의 신호는 점점 구체적인 느낌으로 나를 자극한다. 그리고 나는 그에 대한 호응으로 그 일을 자주, 그리고 꾸준히 하게 된다. 좋아한다는 것은 내가 그 일을 우선에 둔다는 뜻이다. 점점 그 일이 숙련되어갈수록 나는 더 잘하고 싶어 진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잘하고 싶어서 더 배우고, 찾아보고, 노력한다.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도전해가는 과정에서 실패하더라도 계속한다.



  그리고 어쩌다 내가 그 일이 되고, 그 일이 내가 되어 최적의 기능을 해낸 그 운명의 시간을 체험한다. 그런 운명의 순간이 매번 찾아오지 않을 것도, 똑같이 재연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해본 사람과 해보지 않은 사람은 질적으로 다르다.           



  즐거운 자극에 감응하고 즐기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직업인으로서, 학생으로서, 자녀로서, 부모로서의 내가 아니다. 나는 그저 고유한 내가 된다. 일상의 중력과 노력과 애씀에서 벗어나 나만의 욕망이 충족된 좋음의 바다에 유영하는 자연스러운 내가 된다. 그렇게 나로서 충만해진 채, 내 삶을 향유하는 명랑하고 철없는 내가 되는 경험을 축적한다.      



  그때서야 나는 내 삶을 내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 내 행동으로 채워갈 수 있다. 그렇게 내 삶이 내 것이 되어간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면 내 삶이 확장된다. 내가 모르던 세상을 구체적으로 경험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한 권의 의미 있는 책을 읽는 것과 같다. 새로운 생각과 경험이 담긴 그 사람이라는 책은 나의 삶에 새로운 시선을 제안하고 경험의 면적을 넓혀준다. 이런 낯선 경험을 만나는 것은 무더운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가을의 청명하고 마른바람이 두 볼에 닿는 것과 같은 선명한 반가움이 되어준다.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좋음으로 내 삶의 면적을 넓혀가는 고유한 내가 되고 싶다. 이런 면에서 나는 욕심이 많다. 커피, 소금과 바질 올리브 오일에 화이트 발사믹을 뿌린 샐러드, 여름엔 쨍한 쇼비뇽 블랑, 가을엔 부드러운 피노누아, 뿐만 아니라 여름날 시트러스 향이 가득한 시원한 밀맥주, 소울푸드인 김밥과 라면, 내 목을 보호해주는 아름다운 스카프, 스모크 블루 니트, 창문을 활짝 열고 음악을 들으며 자동차 전용도로 운전하기, 계절을 느끼며 걷기, 마음에 드는 계절 니트 쇼핑.......     



  이런 좋은 것들을 주변 의미 있는 사람과 나누는 그런 삶을 꿈꾼다. 그래서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꽉 쥐어보는 그런 하루를 위해 행동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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