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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Aug 10. 2023

말로는 못하지만 글은 쓰고 싶어

  고요한 집에 나는 혼자 있다. 내가 꿈꾸는 로망의 시간 중 하나이다. 이 귀한 시간이 오시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휴대폰 앱의 KBS 클래식 FM을 실행시킨 후, 거실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하는 일이다. 블루투스 스피커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데, 어떤 날은 내 휴대폰과 도킹이 잘 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몇 분이 지나도록 내 휴대폰의 발신 전파를 모르쇠 하기도 한다(전파라고 하는 게 맞나. 옛날사람은 또 이렇게 자신이 없어진다. 아무래도 아닐 것 같다).



  그러려니 한다. 스피커라고 해서 뭐 늘 대답할 필요가 있나 싶다. 가끔 모른 체 하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을까. 또는 이제야 자신을 부르는 내 뜬금없음이 야속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필요할 때만 부르는 내가 얄밉기도 하겠지. 그래도 바로 연결이 되는 날은 살짝 기쁘다. 뭐랄까. 내 신호에 손 잡아준 스피커가 고맙달까. 우리의 마음이 서로 만난 느낌이랄까.



  내가 말을 하고 싶을 때, 상대가 기꺼이 들을수 있는 상황은 참 고마운 순간이다. 서서히 스며든 고민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이제 내려야만 할 때, 기쁜 일에 부푼 마음이 빵 터져버릴 때, 네가 생각나서 꼭 너와 나누고 싶을 때, 나는 말을 하고 싶다. 하지만 멈칫. 시간이 너무 늦지는 않았는지, 상대는 화답할 수 있을지 한번 더 생각해 본다. 몇번쯤 망설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메세지를 보낸다. 전화는 부담스러울까봐.내 앞에 상대가 없는 상황에서 나는 그와 나누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은 내 욕심인지도 모른다. 이건 한없이 주관적이기만 한 내 일방적인 타이밍임을 알기에 순간 소심해진다.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채팅창에 1이 금세 사라지는 건 우주의 힘이다. 나의 N극을 너의 S가 끌어당겨주었으니. 이때 나는 이 지구에 두 발을 붙이고 사는 안락함을 느낀다. 상대에겐 어쩌면 별 일이 아니나 내게는 눈덩이 같은 고민을, 기쁨을, 신기함을, 기쁨을 전하면 너무 놀랍게도 상대가 대답을 해준다니! 안녕! 하고 손을 흔들었을 때 함께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고, 하이파이브해주는 사람들. 내 말을 보아주고 화답해 주는 짧은 메시지가 쌓일 때마다 내 마음이 불러온다. 내 사람들에게 내 생각이 수용되고 인정받는 과정에서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 덕에 오늘도 안도감을 얻는다.



  차마 내 사람들과 나누지 못하는 이야기도 있다. 내 삶에서 잔잔하게 느꼈던 기쁨이나 슬픔, 읽고 배우며 들었던 생각들이 그렇다. 대부분의 경우 내 생각이 별거 아닐 것이 분명해서 나는 내 생각을 꺼내지 못한다. 나는 가볍고 시시하고 명랑한 사람이고 싶은데 내 안의 생각과 이야기들은 지루해 보인다. 안 그래도 재미없는 사람인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상대와 대화가 지루해지진 않을지. 상대는 이런 생각이 정말 안물안궁일 텐데. 하는 자체검열을 거쳐 나는 대부분 듣고 있는 편이다.



  그렇게 내 마음에 빨간 신호를 켜둔 까닭에 켜켜이 쌓여버린 내 생각들이 도로에 쌓인다. 정체다. 초록불에 생각들이 출발해야 내가 가벼워질 수 있다. 생각의 도로의 정체가 극심해질때가 되면 어쩔 수 없이 초록 신호를 올리고 손가락을 움직인다. 청소를 할 때 비우다 보면 정리가 되듯, 생각을 비우고자 글을 쓰면서 나는 내 생각의 책장을 정리한다. 그렇게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다시 확인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확인한 확실한 하나는, 아무래도 나는 글쓰기를 참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랑의 시작이 '나에게 이런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라면, 글쓰기는 내 사랑이 맞다. 일상생활에서 말수가 없는 나는 사랑하는 글쓰기 앞에서 나는 수다쟁이가 된다. 주절주절.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한다. 아무래도 나의 시시한 생각도 글쓰기가 다 받아주기 때문은 아닐까. 내 생각의 누울자리가 되어주는 까닭에 나는 고슬고슬한 침대에 온 몸을 부비듯 내 생각을 단어와 문장으로 비빈다. 이 안에서 나와 내 생각은 가볍다. 일상의 책임이 없는 무중력의 세상에서 나는 자유롭게 유영한다.



  명랑한 채팅창에서 나와 그의 짧은 글자 메시지의 핑퐁이 쌓이고 쌓이면 우리는 채팅창에서 나와 차를 마시며 마주 보고 대화를 한다. 서로의 짧은 메시지들이 모여 우리는 각자가 가진 이야기가 어떤 장르인지 알게 되었고, 서로의 호감이 쌓여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된 것이다. 어색했던 글자들이 모이고 쌓인 덕분에 나는 관계를 이루게 된다.



  차마 지인들과 나누지 못한 짧은 생각과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웠던 이야기는 SNS의 짧은 글도, 이렇게 긴 글도 되어준다. 더욱이 나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감사하게도 글을 쓰는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해서 글을 통해 내가 모르던 사람들의 생각에 호기심을 갖게 되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호사를 누린다. 그러다 가끔 내 생각도 남긴다. 자유롭게. 이것만으로도 세상 참 살만한 일인데 게다가 공감을 해주고, 서로의 생각에 위로와 안부를 묻는다.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어색하고 부끄러운 나, 낯선 사람들 앞에서는 특히나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말도 생각이 안나는 지루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내게 글은 세상과 나를 연결해 주는 고마운 손이다. 짧은 핑퐁 채팅도, SNS의 리듬감 있는 짧은 글도, 긴 호흡의 문장들도 내게는 내 목소리를 받아주는 블루투스 스피커와 같다. 적어도 내게 글자는 눈에 보이는 물성을 지닌 구체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물성을 지닌 글자를 만들어 신호를 보낼 수 있고, 받아주는 곳이 있다는 확실한 사실은 내 생각들의 질펀한 누울 자리가 되어준다. 가끔 그 자리에서 투정도 부릴 수 있고, 자랑도 할 수 있고, 지루하고 시시한 생각도 나눌 수 있는 곳이 있다는 확신, 그거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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