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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Dec 14. 2022

평범한 마흔도 가끔은 반짝일 때가 있다.

  처음엔 '보편적인'이라는 단어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보편적인'이라는 단어도 얼마간은 의식적인 꾸밈이 들어있다는 생각에 내려놓았다.


  '평범하다'는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꽤나 납작한 의미를 가진 단어는 나를 설명하기에 적절하다.



  삼 남매 중에 둘째 딸로 태어난 나는 참 평범한 아이였다. 위는 언니, 아래는 남동생. 어쩌면 둘째 딸은 쉬어가는 타임. 여느 둘째가 그렇듯이 첫째 언니가 부모님께 혼나는 행동을 학습하고 자란 탓에 절로 눈치가 생겼다. 그 덕에 나는 스스로 혼날 구석은 알아서 둥글게 깎아버렸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믿음직스러워하셨고 나는 그런 내 행동에 자족했다. 그 과정에서 고유한 나도 깎아버렸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나는 잘하진 않더라도 혼나지는 않는 아이로 자랐다.



  학교에서도 말 잘 듣는 아이, 어느 정도 공부를 하는 아이였어서 선생님들이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학생이었다. 내 의견을 드높이지 않았고, 욕심과 타인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은 탓에 친구들과도 큰 트러블 없이 잘 지냈다. 난 그렇게 손이 안 가는 아이이자 학생이었다.



  평범한 아이는 꿈도 적당했다. 지방광역시에 살면서 서울로 대학을 가고자 하는 꿈과 의지는 다른 친구의 몫인 것 같았다. 담임선생님 책상 앞에서 불과 10분 만에 결정한 지역의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내 지역에서 바로 취직을 했다. 나의 선택에 부모님, 선생님, 나까지 누구 하나 불편한 사람이 없었다. 난 누구를 불편하게 할 만큼 고유한 아이가 아니었다.



    늦은 나이에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이상했다. 남편과의 관계는 학교와 직장생활을 하며 만났던 많은 관계들과 달랐다.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거나 도움을 청하는 것을 꽤나 어려워하는 나는 자연스레 그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남편에게 이런 내가 이상하고 낯설다고 말했더니, 그는 이게 자연스러운 거라며 내 어색함을 어이없어했다. 그 담백한 어이없음이 되려 내 다리를 쭉 뻗게 해 주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부른다. "남편~~~!"



  우리 둘 사이에 작고 소중한 내 사랑, 아이가 태어났다. 또 이상하다. 평범하기만 했던 내 삶의 플랫 한 평면에 작은 균열이 생긴다. 그 균열 사이에 싹이 돋고 작고 사랑스러운 꽃이 피어오른다. 아이와 함께 하는 순간들이 내 삶을 반짝이게 만든다.



  예쁜 내 아이가 웃고, 울고, 화를 낸다. 쌔근쌔근 잠을 자고 밥을 오물오물 먹는다. 내 손을 잡고 올망졸망 걷고, 곧 넘어질 듯이 뛴다. 제 이름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면서 곰 세 마리 노래를 부른다. 아빠에게 딸기 사 오라고 영상 메시지를 보내고, 노란 가방을 메고 노란 버스를 타고선 유치원을 간다. 이제는 어깨가 좁아 팔까지 흘러내리는 네이비 책가방을 메고, 놀이시간에 잘 뛸 수 있는 운동화를 골라 신고 학교에 간다.



    아이의 새로운 시작들을 함께할 때마다 나는 매번 새삼스러워졌다. 대한민국 표준 키에 외모, 보통의 삶을 살던 내게 너무나 작고 소중한, 특별한 이야기들이 생겼다. 어떤 날은 너무 뿌듯했고, 어떤 날은 너무 미안했고, 어떤 날은 보고 있어도 행복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삶은 너무 특별한 삶인 것 같아 내가 이런 행복을 누려도 되는지에 대한 불안이 드는 날도 있었다.



  사랑하는 아이의 모든 시작들 옆에 있을 때 내 삶이 특별해졌다. 아이는 존재 자체도, 그리고 아이의 모든 시작들 옆에 내가 있을 수 있다는 것까지도 내 삶의 가장 큰 행운임을 나는 확실히 안다.



  그 덕에 이렇게 글을 쓴다. 평범한 사람의 삶에 내린 특별한 순간에 대한 보답으로. 잔잔히 반짝이는 그 순간들에 감사하며 글을 쓴다.



  오늘은 첫눈이 내렸다. 아이는 처음 눈을 보던 날, 신기해서 뽀얗고 보드라운 눈을 만져보곤 차가움에 깜짝놀라 앙~울어버렸었다. 그날 이후, 아이와의 이야기를 담은 눈은 이전의 눈과는 질적으로 달라졌다. 내 삶은 이렇게 아이 덕분에 새삼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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