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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Dec 28. 2022

나는 다 계획이 없구나!

  니스에 도착했던 12월의 멋진 겨울날. 나는 한껏 들떠서 이제 갓 남편이 된 그를 보았다. 신혼여행인 데다가 니스라니! 공항에서 내려 니스 해변을 걸을 때부터 내 발은 땅보다 한 뼘은 떠있었다. 상냥한 바람과 만난 다정한 햇살은 가볍고 은은한 빛으로 내게 쏟아졌다. 겨울 늦오후의 여린 햇살이 비치는 은은한 니스의 스모크 블루빛 바다를 닮은 바람이었다. 니스의 나른하면서도 청량한 안녕에 무장해제된 나 역시 내가 가진 모든 안녕들을 모두 가져올 수밖에!



  짐을 풀고 좀 더 간편하게 옷을 입었다. 이제 니스의 저녁거리를 걸을 시간이다. 내 두 발은 한 걸음씩마다 니스의 템포에 맞추어 갈 것이다. 니스의 온화한 기후를 담은 바람은 휘휘 젓는 내 팔과 발그레해진 볼에 닿을 것이다. 빨리 나가고 싶다. 그렇게 갓 남편을 보았다. "나가자!"



  응!? 나의 갓 남편은 불편해 보인다. 연신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검색중이다. 기분이 안 좋은가? 왜? 니스인데! 신혼여행인데! 신나지 않기는, 설레지 않기는 도무지 어려운 지금 왜 저렇지? 나는 빨갛게 빛나는 사과를 깨물었을 때 예상치 못한 찌릿한 풋맛을 만난듯 찡! 하고 흐르는 전류를 느꼈다.  당연함이 당연하지 않은 상황에서 겪는 의아함은 언제나 낯설다.



  "무슨 일 있어? 컨디션이 안 좋아?"

  "응!? 아니야."

  "나가자! 겨울이니 해산물 먹자! 어때? 해산물에 샤블리 마시자! 너무 좋겠지?"

  "아, 좋지. 근데 어디서?"

  "응?"

  "어디서 먹고 싶어?"

  "응? 모르지~"

  "아... 그럼 찾아볼게."

  "나도 찾아볼게!"



  나는 황급히 휴대폰으로 해산물 플래터를 파는 곳을 찾아냈다. 음~여기면 되겠다.

  "여기 가자! 여기 해산물 플래터를 팔아! 합리적인 가격에 신선한 해산물이래!!"

  "좋네. 가자. 어디쯤에 있데? 찾아봐야겠다."

  "응? 멀지 않나 봐. 걸어가자! 걸으면 너무 좋겠지!"

  "길은?"

  "응? 아~길은 걸어가면 다 나와!"

  "그래도 방향은 알아야지 않을까?"

  "음, 가리발디 광장에 있으니 그쪽으로 가면 될 거야. 그리고, 좀 헤매면 어때! 그것도 재밌을 거야. 그리고 가다 보면 다 나와!"



  우리는 니스의 초저녁 밤을 신나게 걸었다. 아니 나는 신나게 두리번거리며 걸었고 그는 주위를 살피며 걸었다. 모든 걸음이 장난 같았다. 그렇게 청량하고 아늑한 니스의 저녁을 걷다 보니 우리의 목적지가 나왔다. Cafe de Turin.



  우리는 오이스터 플래터와 샤블리 한 병을 주문했다. 은회색의 영롱한 오이스터가 2단 트레이에 활짝 피어 나왔다. 잔잔한 금빛 샤블리 한 모금에 오이스터 한 입이 입을 채우는 순간, 충분했다. 오이스터의 짧쪼로함과 수분감이 샤블리의 새콤함과 미네랄과 만나 지어내는 은은한 풍만감은 나를 붕 뜨게 했다. 게다가, 여기는 니스이고, 게다가 우리는 신혼여행 아닌가!



  갓 남편의 표정도 사르르 풀려있다.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어때? 괜찮지?"

  "응, 실은 나 해외여행은 처음이라서 아까 긴장을 정말 많이 했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은 어디인지 알아야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

  "아~그래서 그랬구나. 나는 갓남편이 기분이 안 좋은 줄 알았어. 그런 거면 다행이네."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지. 아까는 낯설어서 부담이 되더라구."

  "히히히, 짠! 하자!"



  기분 좋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더 어두워진 니스의 밤거리를 걸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니스의 골목들은 빨갛고 초록의 포인세티아와 노란 전구들이 길을 잔잔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우리는 그냥 걸었다.



  " 골목으로 가볼까?" 하고 걸어간 곳에는 노랑 파인애플과 연두 키위처럼 설탕에 과일을 절린 콩피즈리를 팔고 있었다. 달콤 상큼한 콩피즈리를  봉지 샀다. 저기 와인샵이다!"하고 들어간 곳에서는 루이자도 샹볼뮤지니를   샀다. 겨울이지만 가을같은 니스에선 피노누아니까! 그리고 여기는 프랑스, 우린 신혼여행이니까! 그렇게 우리의 걸음에 니스의 골목을 묻히며 장난처럼 걸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마세나 광장에는 반짝반짝한 광장에 흥이  사람들 사이로 상쾌한 바람이 불었다. 조용히하고 잔잔한 흥겨움이 스며들어있던 니스의 연말은 너그럽게 반짝였다.



  아마도 난 마음대로, 그냥 걸었지만 갓 남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호텔의 방향을 찍어두고 그 안에서 여기저기를 걸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고, 남편은 그런 사람이다.



  그는 큼지막한 틀을 세우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신나고 무질서하게 뛰어다닌다. 그 틀은 넓고 따뜻한 데다 넘어져도 푸릇한 잔디가 푹신하고 부딪혀도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 만큼의 완충제가 충분하다. 성실하게 그 틀을 가꾸는 그의 부지런함은 꽤나 믿음직스럽다.



  오늘도 나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결정의 순간이 오면 남편에게 묻는다. 어떻게 해볼까? 그러면 그는 여러 경로를 제시해 준다. 나는 그 말을 수긍하기도 하고 반박하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 내가 결정을 한다. 그 결정은 남편의 조언이기도 했고 그 반대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괜찮다고 말한다. 가다 보면 길이 나온다는 아내와 살다 보니 남편도 이제 어느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배짱이 생겼나 보다.



  글을 쓰다 보니, 나는 문득 오늘도 겨울이니 샤블리에 해산물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온 마음을 휘감는다. 오늘은 샤블리에 해산물이어야만 한다. 마침 전화를 걸어온 남편에게 당장 샤블리에 해산물을 먹자고 말했다.

  "수요일이라서 오늘 먹으면 많이 못 먹잖아."

  "응? 난 아닌데!"

  "난 목금토 일해야 하잖아. 토요일에, 2022년 마지막 날에 캠핑장에서 먹자!"

  "그래! 기다려주지!"


 

  나도 계획이 있는 남편과 사는 덕분에 어느 정도 기다림이 생겼다.

  "남편, 토요일에 샤블리에 해산물을 먹기로 했다면, 나는 오늘부터 기쁠 거야."

  나는 오늘, 샤블리에 해산물을 기다리는, 기쁨의 계획을 기다리는 어느 우주의 여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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