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윤 Mar 30. 2023

피아제_불편함의 다른 이름은 기회

  고백을 하나 하자면 저는 단조로운 사람이에요. 매주 토요일 오전이 되면 저는 나른하게 일어나 커피를 내립니다. 그리고 가로로 1번 자른 삶은 달걀 1개, 오른쪽과 왼쪽으로 각각 3번씩 칼집을 내서 빗살무늬를 만들어 구운 엄지손가락만 한 소시지 2개, 꼭지부터 세로로 1번 자른 후 소금과 올리브유를 뿌린 방울토마토 다섯 조각을 접시에 담아요. 그리곤 휴대폰에서 KBS 클래식 FM 앱을 실행한 후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해서 들으며 커피와 준비한 아침을 먹습니다. 라디오에선 첼리스트분이 진행하시는 가정음악이 나오고 저는 느린 포크질의 호사를 누리는 주말 아침을 음미합니다. 그렇게 다음 주도 그다음 주도 늘 같아요. 같은 커피, 달걀, 소시지, 토마토. 금요일 저녁에 마트에서 늘 같은 소시지를 사 오는 저를 보고 남편은 놀립니다. 어쩜 그렇게 똑같냐면서요. 제 남편은 마트에 새로운 과자가 있으면 그걸 꼭 사보는 사람이거든요. 그런 사람이 늘 같은 제품의 같은 메뉴를 먹는 저를 보면 의아하겠죠.



  아는 맛이 무서운 거라고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은 때론 확실한 믿을 구석이 되어주죠. 봄날의 오후, 쇼비뇽블랑을 마시려면 신선한 회가 함께여야 완성이 되듯이  확실한 나의 취향은 그것이 필요한 순간에 딱 들어맞는, 어쩌면 그것이면 안 되는 퍼즐 조각과 같아요. 목이 칼칼한 봄날의 저녁에 내가 아는 맛인 팔팔 끓여진 냉이된장국이 목을 넘어가는 순간, 피로가 풀리며 하루가 보상받는 느낌. 그때는 그 냉이된장국이 아니면 안 되는 순간이거든요. 그런 때 내 삶은 완벽히 웅장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역시는 역시나 이니까요.



  이런 저도 예전엔 그래도 이것저것 시도해 봐야 재미있는 거 아니야?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죠. 삶이 다채로워지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기도 할 텐데. 하면서요. 하지만 결혼을 해서 아이를 돌보고, 제 일을 하느라, 그리고 이제는 나이가 드신 부모님도 가끔은 신경 쓰느라 제 취향을 누릴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해지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확실한 행복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쪽잠을 자듯, 쪽 시간이 나면 나를 확실히 만족시켜 줄 익숙한 장소에서 익숙한 커피를 마시고, 익숙한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죠. 새로운 것에 모험을 하기엔 내 쪽 시간 잔고가 넉넉하지 않거든요.



  나의 취향을 견고하게 다져가고 있을 때, Jean Piaget를 만났어요. Piaget는 인간 발달 연구의 레전드이자 주연배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제나 제일 먼저 나와 임팩트 있게 문을 활짝 열어주거든요. 발달의 세계에 온 걸 환영해요. 배울 준비되셨나요? 하고요. 그러면서 이제 시작이라서 아직은 열리지 않은 배움에 대한 태도를 위해 쾅! 하고 생각의 망치 하나를 던져줍니다. 배움은 불편해야 해. 하고요. 불편하다는 건, 네가 배우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그로 인해 네가 발달하고 있다는 거지. 하고요. 이런 Piaget을 만나고 나면, 만나기 전과 후의 제가 달라집니다. 적어도 마트에서 새로운 소시지 하나 사보게 되는 거죠.



  피아제는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환경을 탐색하는 활동을 통해 인지구조를 발달시킬 수 있다고 보았어요. 피아제는 아동들을 관찰해 보니, 아동들은 미리 접해본 환경에 대해서는 스키마(schema)라고 하는 인지도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그렇게 기존의 스키마를 가지고 살아가는데 여러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환경을 만나죠.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아동은 두 길의 갈림길에 섭니다. 새로운 이 환경을 내가 기존에 가진 스키마로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내 인지구조를 바꿔야 할까? 하고 말이죠. 우리는 먼저 어떤 쪽을 택할까요? 맞아요. 대부분은 내가 기존에 가진 인지도식에 따라 새로운 현상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어떤 경우엔 기존의 인지도식에 따라 이해해도 괜찮았던 순간이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아닌 경우도 있죠.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갑자기 동공지진과 인지도식에 균열이 가는 순간을 맞이한 거예요. 그리고 이건 기회죠.



  클래식한 예를 들어보면 이거예요. 하얀 고양이에 대해 알고 있던 어린아이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옆에 까만 고양이가 있네요? 왜 저 동물은 까맣지? 하고 의아해했어요. 그래서 탐색을 해보니 내가 알던 고양이처럼 사뿐히 걷고, 야옹 소리를 내고, 수염이 보이고, 동그란 눈과 동공의 모양이 내가 알던 고양이랑 같아요. 그러면 기존의 인지도식에 따라 검은색 저 동물도 고양이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어요. 이건 Piaget의 용어로 하면 동화(assimilation)한 거예요. 기존의 인지도식에 따라 새로운 현상을 이해하는 거죠. 그런데 그 아이가 동물원에 가서 호랑이를 본 거에요. 아이는 큰 고양이다! 하고 다가가서 보는데, 내가 알던 고양이랑 좀 달라요. 몸집이 훨씬 크고, 무게도 좀 더 나가고요. 그리고 눈과 동공의 모양도 다른데, 게다가 어흥! 하고 큰 소리를 내는 거예요. 그러면 아이는 놀라죠. 아! 이건 큰 고양이가 아닌가 봐. 그럼 뭐지? 하고 호랑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기존의 고양이 인지도식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죠. 이런 인지적 불평형 (disequilibrium) 상태에 빠진 아이는 혼란스러워요. 그러면 기존의 고양이라는 인지도식으로 설명이 안되기 때문에 호랑이라는 인지도식을 새로 만들거나 고양이라는 인지도식을 확장해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이걸 조절(accommodation)이라고 해요. 이렇게 동화와 조절을 통해 평형화 상태에 이르게 되고 이 과정에서 기존의 인지도식은 그 면적을 넓혀갑니다. 새로운 인지도식 카테고리를 만들거나 기존 인지도식 카테고리에 새로운 도식이라는 가지를 추가하는 정교화를 하는 것이 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 대한 탐색은 세상을 이해하는 해상도를 높이고 삶의 면적을 넓힐 수 있게 해 줍니다.



  어린이만 그럴까요? 우리 어른들도 마찬가지예요. 우린 다 각자의 인지 도식이 있죠.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나만의 도식, 믹스커피를 더 맛있게 제조하는 나만의 도식,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기 위한 나만의 도식 등 우리는 우리의 경험으로 이룬 도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익숙함으로 좀 더 안정적인 삶을 가져오는 것들이죠. 실제로 저는 라면을 맛있게 끓이기 위해 나는 가루 스프를 먼저 넣고 끓이는 데, 티브이에서 미식가 한 분이 특정 라면을 끓일 때 면을 먼저 넣고 가루 스프는 마지막에 툭 넣는걸 본거예요. 왜지? 하고 계속 보는데 그분 말씀은 그 특정 라면은 스프를 먼저 넣으면 그 알싸한 맛이 날아가서 그 라면 특유의 스프 맛을 느낄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 순간, 저는 제가 가진 라면 끓이기 인지도식에 불평형상태가 왔고, 조절과정을 거쳐봤어요. 저도 따라 해본 거죠. 그랬더니 늘 같은 맛이었던 라면에서 새로운 맛이 나더라고요. 저는 그다음부턴 그 라면을 끓일때면 스프를 마지막에 넣어요. 이렇게 제 인지 도식이 좀 더 정교화된 거죠.



  휴대폰도 마찬가지였어요. 전 갤럭시 유저였는데, 아이폰을 구매해 봤죠. 기존에 갤럭시를 사용하던 인지도식에 따라 동화의 과정을 먼저 거쳤어요. 그런데 몇 명 기능은 영 안되는 거죠.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어요. 어쩔 수 있나요. 이것저것 눌러보고 탐색해 보기 시작했어요. 갤럭시 때처럼 첫 화면을 좌우로 밀지 않고, 위아래로 밀었더니 이제야 화면이 나오더라고요. 아~아이폰은 화면 전환이 아래에서 위로 올려야 하는구나. 하고 새로운 도식을 형성했죠. 그렇게 기존의 갤럭시라는 인지도식에서 아이폰이라는 인지도식을 만들고 있는 중이에요. 그리고 머지않아 그 불편함은 점점 사라지고 이제 제 손은 아이폰 위에서 아주 자연스러워졌어요.



  Piaget는 익숙한 삶을 편안하게 살아가는 저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듯했어요. '세상의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즉 너의 인지를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불편한 과정이 필요해.'라고요. 맞아요. 새로움은 불편해요. 하지만 그 불편함이 없으면 내 머릿속에서 세상을 해석하는 인지구조는 점점 쪼그라들 게 분명해요. 새로움이 가져오는 인지적 불평형 상태가 있을 때 내 인지구조는 동화와 조절을 거쳐서 새로운 인지도식을 붙여갈게 분명하니까요. 익숙한 방식대로만 산다는 건 내 발아래 내가 그릴 수 있는 동그란 원을 그리고 그 안에서만 살아가는 것과 같아요. 한 발만 나가면 더 넓은 세상이 있는데 말이죠. Piaget을 만나고 저는 그 원 밖으로 한 발짝을 떼어 보고 싶어 졌어요. 나를 위해서.



  사실 배운다는 건 참 굴욕적인 일이에요. 배우기 위해서는 늘 내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만나야만 하잖아요. 그 인지적 불평형 상태를, 내 마음속의 굴욕과 불편함을 맞닥뜨리는 데는 용기가 필요한 게 사실이에요. 그 용기를 내는 데 Piaget는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며 그럴 수 있다고 말하고는, 그래야 네가 크는 거라며 징검다리 하나를 넘게 해줍니다.

  '새로움 앞에 불편함을 느꼈니? 그건, 네가 발달할 기회를 만났다는 뜻이야. 그 불편함을 네 스타일대로 해석해 봐. 그렇게 네 가능성을 넓혀가는 거야.'

하고요. 이쯤 하면 발달이론의 레전드이자 주연배우로서 그의 입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저 에게는요.

 


  Piaget을 만나며 제 인지구조가 변했으니, 책을 덮으며 저도 다른 사람이 되어야겠지요. 단조로운 저는 그래도 모험을 좀 해볼 수 있는 내 삶의 영역을 떠올려봤어요. 그리고 그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더라고요. 일단 마트에 가서 새우깡, 자갈치 말고 새로운 오징어맛 스틱을 사봤어요. 그 변화가 너무 경미하죠? 오징어도 해산물이니 안정적인 변화라고나 할까요? 과자에 있어 해산물을 선호하는 건 기존의 저이지만 그래도 새우, 문어에서 오징어로 확장해 봤으니 어깨 살짝 으쓱해봅니다.



  오늘은 와인샵에서 새로운 와인을 추천받아 사 왔어요. 와인의 세상은 너무 넓어서 제 입맛에 맞았던 와인이 있으면 그걸로 사 오곤 했었거든요. 넓은 와인의 세계가 저에겐 부담스러웠던 것 같아요. 하지만 오늘은 뉴질랜드 쇼비뇽블랑, 이름을 아는 피노누아라는 제 발 밑의 와인 바운더리에서 한 발짝 나가보았습니다. 언제나 추천해 주셨지만 망설였던 바르바레스코 한 병을 사 왔어요. 처음엔 익숙한 맛이 아니어서 당황하겠죠. 새로움은 불편하니까요. 하지만 그 새로움도 저의 인지구조에 들어오면, 제가 세상을 보는 해상도가 높아지는 거 아니겠어요. 물론, 늘 마시던 쇼비뇽블랑 한 병은 믿을 구석으로 함께 사 온 건 비밀입니다.


  

이전 01화 우리는 인생의 4/5를 성인으로 산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