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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Sep 04. 2022

새로움은 불편하다

  가을학기 개강을 앞둔 늦여름의 오후. 며칠  나는 조급증과 불안함을 마음 깊숙이 숨긴  아이 픽업을 하고 간식을 챙겨주고 있다. 그러다 조급증과 불안함이 ‘ 잊진 않았지?’하고 가볍게 노크만 해도 나는 순간 파르르! 뇌에도 닭살이 돋는다. 나의 조급증과 불안함들이 한번 노크할  바로 노트북에 앉으면 긴장의 날들을 줄일  있어서 좋으련만, 나라는 사람은 닭살의 알람  번에 바로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켜는 민첩한 사람이  된다. 나는 행동을 위해 예열이 필요한 사람이다. 나는  알람에 ‘뭐야하며 반수면 상태에서 알람을 끄고, 연이어 울리는 알람에 ‘벌써?’ 하고 놀라며 다시 한번 알람을 끄곤 하는데  과정에서 나를 예열시키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곤 다시 이어지는 알람에 ‘, 지금은 일어나야 하는구나.’하고 그때서야 몸을 일으켜 세우곤 한다.           



  새로운 문제가 내 앞에 놓였을 때 그 시작에는 알람이 몇 번쯤은 더 필요하다. 막연한 생각에 새로워서 더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은 것은 알겠는데, 그 새로움에 대한 막연함은 나를 더욱 망설이게 만든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 앞에 놓인 양 갈림길에 마주했을 때 아는 길을 갈 때는 주저 않고 확신에 차서 ‘오른쪽!’하고 바로 걸음을 뗄 텐데, 처음 가는 길에는 내 한 발을 왼쪽, 오른쪽 길 중에 어느 길에 놓아야 하는지 한참을 망설이게 되는 것처럼.           



  그런 때 가끔은 스스로가 마음에 안 들기도 한다. ‘그냥 한번 해보지. 뭘 그리 망설이나. 시간만 흐르는 것을.’ 이런 나의 망설임을 만날 때마다 스스로를 책망하기도 한다. 그러다 이윽고 나를 달래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망설임은 신중함으로 얼마간은 나를 보호해주었는지도 모른다고. 알람, 막연함, 책망으로 이어지는 동안 우둘투둘해진 내 마음을 보드랍고 향긋한 핸드크림을 바른 내 손으로 한번 보드랍게 쓸어주고 나면, 이젠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전원을 켠다.          



  새로움을 대면하기 위해서는 늘 나보다 앞서있는 망설임을 걷어내 본다. 긴장되는 손을 뻗어 망설임의 막을 살짝 들추고 눈 한번 질끈 감고 무거운 발을 한 걸음 내디뎌보면 알게 된다. 그 막은 대단히 두툼해서 젖히기 부담스럽기보다는 새로움을 보일 듯 말 듯 살짝 흐리게 가린 정도의 얇은 막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번 학기엔 맡게 된 새로운 강의를 위해 읽고, 찾고, 보고, 정리하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분명히 OT를 먼저 준비하고자 했으나, 언제 시작하나~눈이 빠지게 기다렸던 나의 걱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불쑥 튀어 올라 나의 손가락을 점령했다. 어느덧 나는 OT가 아닌, 내가 가장 부담스럽게 여겼던 챕터인 뇌와 신경계 발달 관련 연구자료와 관련 자료를 검색하고 있었다. 뇌의 구조와 각 영역의 명칭을 의미하는 수십 개의 단어들이 우수수 쏟아져내렸다. 그리고 그 영역들이 하는 역할도 함께 신나게 달라붙었다. 각자 서로 손 들며 나에게 나는 누구누구이고 나는 무슨 일을 잘해. 하고 떠들어대는 통에 ‘기다려봐. 내가 하나씩 정리를 좀 해볼 테니 조금만 기다려봐.’하느라 내 눈과 손은 바빠져만 갔다.     



  이럴 줄 알았다. 이래서 새로운 강의는 부담스러웠고, 그중에서 이 챕터는 지금까지 발달영역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들이기에 빼도 되지 않을까 하며 타협하고 싶었다. 하지만 관련 내용을 읽을 때마다, 뇌 발달과 관련된 내용은 내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도 더 알고 싶었다. 늘 이런 식이다. 나는 늘 이렇게 가끔 어렵게 가곤 한다.          



  고등학교 2학년 중간고사 기간에도 그랬다. 생물 선생님께서는 시험 대비용으로 프린트물을 나누어주셨는데, 그 프린트물에는 약간의 요약과 다수의 문제들이 있었다. 시험 전 프린트물로 열심히 수업을 해주셨고, 잘 보라고 당부까지 해주셨다. 그러면 그 말을 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원래 잘하지 못했던 생물 과목이기에 ‘공부’해서 이해를 해야 시험을 잘 볼 것으로 생각했다. 친구들이 프린트물을 볼 동안, 나는 교과서와 참고서를 보았다. 시험은 프린트물에서 대부분 출제되었고 생물 평균점수는 사상 최대로 높았다. 그리고 내 점수는 그 밑이었다.



  그 당시는 성적표에 점수를 확정하기 전, 학생들에게 먼저 OMR 채점 결과를 보여주고 오류가 있으면 학생이 정정 신청을 하곤 했다. 우리 학급은 반 전체의 이름과 점수가 기재된 성적 명렬표를 돌려가며 자신의 점수를 확인해왔었다. 나는 어느 정도 학급 내 상대적 위치가 고정이 되어있는 고2 후반기였고, 입시위주의 상대평가에 굳은살이 배겨있던 터라 내 점수를 친구들이 아는 것도 대수롭지 않았다. 그런데 반에서 상위권에 속하던 나의 생물 점수가 평균 이하였다. 친한 친구들이 의아해하는 도중에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지난날의 어떤 장면은 그때의 공기, 상대의 표정, 그리고 그 당시의 내 마음까지 선명하게 저장되어 문득 그때 그 시간대로 재생되곤 한다. 그날 오후, 나는 교실 뒤편의 선생님 책상에서 평소 하는 말의 절반 이상이 유머이고 장난이셨던 담임선생님께서 호의적이나 우려스러운 진지한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건네신 그 문장과 뉘앙스를 기억한다.

  “이 점수가 맞는 거야?”

  “네, 맞아요.”     



  그리고 그때의 나도 기억한다. 나는 받아들였다. 이 점수가 내 실력이 맞았다. 평소 어려워했던 생물 과목이었고, 나는 교과서와 참고서로 공부했다. 해당 시험 범위의 생물 교과에 대한 내 이해정도를 묻는다면 나는 절대적으로 이 점수가 맞다고 생각했다. 나는 프린트 물을 왜 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공부해서 맞을 수 있는 점수는 이 점수가 분명했다.          



  어쩌면 그 점수에는 내 행동이나 선택의 패턴이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이후 삶에서 이루어진 나의 배움에 대한 선택 중 일부는 편하고 빠른 고속도로인 프린트물 대신 구불구불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지방국도와 같은 교과서와 참고서를 공부하던 그때를 닮아있었다. 다른 것보다 내 공부를 할 때, 나는 더욱 그랬다. 논문을 쓰겠다고 지도 교수님을 찾아뵙고 내가 쓰고자 하는 주제를 설명드리자 교수님께서는 조심스레 말씀하셨다.

  “있지. 많은 사람들이 다루었다는 것은 흔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주제나 변인이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해. 새로운 것도 좋지. 그런데 너무 어렵게 가려고 하지 마.”      



  마음을 써주신 조언에 나는 고속도로 쪽으로 핸들을 틀기보다는 내 계획을 좀 더 정교하게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러 문헌을 찾았다. 초기의 들뜬 아이디어를 하나씩 핀셋으로 잡아 지도에 표시하고 논문으로 가는 길을 그려나갔다. 가는 길에 특히 조심해야 하는 논밭 도로에서는 속도를 낮추기도 하고, 구불구불한 길에서는 멀미가 날 뻔도 했다. 느릿한 농기계가 내 앞을 가로막을 때는 급한 마음을 달래 가며 속도를 줄여야 하기도 했고, 계속 보다가 옆 자선에 차가 없으면 신속하게 추월을 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브레이크와 액셀을 밟는 내 발은 민감해야 했고 피로했다. 하지만 그 국도를 달릴 때 힘이 들어 열었던 창 밖으로 불어온 초록 바람, 살짝 떨어지는 빗방울, 속없이 신나기만 한 풀벌레와 새소리가 나를 달래주었다.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은 날이 대부분이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푸른 하늘과 초록의 나무들과 풀꽃들의 모습이 가끔 눈에 들어온 날은 그 잠깐의 시간이 많은 피로의 시간을 다독여주었다.       


    

  그 지난한 국도의 시간을 지나 드디어 도착한 곳에서 나는 두 개의 감정을 느꼈다. 하나는 울렁이는 감격스러움. 이 감정은 지난 시간을 겪어온 나에 대한 대견함에서 비롯되었다. 또 다른 하나는 나에 대한 희망이었다. 그것은 난 이 국도를 운전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 이제 또 다른 국도도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었다. 나에 대한 이 믿음은 앞으로 내가 선택해 갈 삶에 대한 희망과 낙관으로 이어졌다.      


     

  이후 학술지 논문에서 나는 내가 배웠으나 시도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통계방법을 시도해보았고, 그 통계방법이 가진 명쾌함에 반했다. 깊은 밤, 새벽까지 몇 번을 계산 결과가 틀려서 다시 점검하고 다시 해보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때마다 진심으로 좌절해왔지만 다행히 멈추지 않은 덕분에 도착점에 안착할 수 있었다. 그 구불구불한 시간을 경험한 그때부터 나는 그 길을 가본 사람이 되었다. 비록 나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경험자가 될 수 있었다.           



  그 마음으로 새로운 강의를 시작한다. 새롭고 모르는 분야라서 스스로에게 부담스러운 챕터를 준비하고 있다. 언제나 결과물은 심플한데, 그 심플하고 정련된 결과물을 구성하기까지는 너무나 많은 쓸데없는 시간과 실수하는 시간을 거쳐서 짜임새 있게 준비하는 시간까지 수많은 시도들이 한 트럭이다. 그 관련이 있어 보이는 것들 중에 정말 도움이 되는 명료한 하나를 찾기 위한 시도들을 하다 보면 관련이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은데 괜히 나를 자극하는 샛길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면 가끔은 그런 유혹에 흔쾌히 응하기도 한다. 오늘도 관련 자료를 찾다 보니 내가 보아도 흥미로운 뇌와 관련된 영상에 50여분을 할애했다. 그 영상을 보고 주변 몇몇 사람들에게 갑자기 공유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샛길로 새면서 뇌와 신경계 발달에 관한 강의안을 구성해본다. 결국 내 호기심이 조금씩 채워지는 느낌이다.           



  배움은 참 불편한 과정이 맞다. 그런데 불편해야 배우는 것도 맞다. 오늘은 편한 길을 두고 쓸데없이 어렵게 가는 길을 선택하는 내 답답함이 조금은 마음에 든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강의안을 만드는 데 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내게 관대한 것 같다. 그 덕분에 오늘 나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또 내가 모르던 새로운 영역에 대한 경험자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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