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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Apr 08. 2023

칭찬의 나라

  창밖엔 3월 말의 하얀 벚꽃이 봄바람을 만나 꽃비를 내려주고 있었다. 봄이 오셨구나! 나는 이제야 창을 열어 뒤늦게 봄을 맞이한다. 투명한 직사각형 창문 밖에서 수줍게 서성거리던 봄이 훅 들어왔다. 상냥하기도 하지. 봄햇살에 기분 좋게 데워진 봄바람의 온기가 닿을 때마다 내 마음에도 톡톡 새잎이 방긋하고 웃었다. 그렇게 봄의 연둣빛은 그 면적을 더해갔다.



  어! 상냥하기만 한 줄 알았던 봄은 명랑하기까지 하다. 봄바람은 하얗고 반듯하기만 한 직사각형 실내 여기저기를 가볍고 경쾌하게 돌아다닌다. 구김 없이 사랑받고 자란 아이의 웃음 같은 봄바람에 내 마음에도 연분홍 웃음이 피어난다. 그렇게 아름다운 봄날, 봄바람보다 살짝 높은 온도를 가진 따뜻한 커피잔을 책상 위에 놓고 드디어 의자에 등을 기댔다. 완벽한 봄날 오후였다.    


       

  새로운 사건의 극적인 효과는 이전에 깔린 평화로운 서사가 만든다. 봄의 연둣빛 천진난만함이 마음을 채워 찰랑거리는 순간 메시지가 왔다.

  “어머니, 원어민 선생님께서 작성해 주신 3월 피드백 보내드립니다.”          



 기관에 다니던 유치원시절부터 지금까지 선생님들과의 통화는 편안했다. 우려스러운 부분을 말씀해 주시면 나는 세심히 알려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집에서 잘 살피겠다는 대답을 드렸다. 대부분 그 내용은 주윤이가 밥 먹는 속도가 느린 것이 주된 내용이었는데,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네, 그렇죠 선생님. 주윤이가 속도도 느리고 새로운 반찬 먹는 걸 주저하죠. 저도 집에서 연습을 더 잘 시켜볼게요. 혹시나 너무 늦으면 정리해 주셔도 괜찮아요. 집에서 더 잘 먹일게요. 다만 늦게 먹으니 친구들과 놀 시간이 없어서 교우관계가 어려워지지는 않을지 걱정이에요.”      


     

  평소 나는 내 약점은 내가 쥐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유머를 섞어 내 약점을 먼저 말하는 것은 고급유머라 여기기도 한다. 내 약점을 수용한 나는 친구가 “김주윤 사람 된 줄 알았는데 아니네?”하고 말할 때, “그러니까. 또 들켰어.”하며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었다. “결혼은 언제 할 거야.”하고 내 나이걱정을 해주는 분에게는 “그러니까요.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할게요.”하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먼저 내 약점을 가볍게 내밀었을 때 친절한 타인은 내게 도움을 주기도 하는데, 이때 그와 나의 의미 있는 관계는 더욱 돈독해지곤 했다. 나는 내 약점을 들킬까 전전긍긍하거나 타인의 말에 당황하기보다 내 약점을 내가 알고 내가 사용하는 게 편했다.          



  그래서 괜찮았다. 선생님들께서 해주시는 주윤이의 행동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부분들이었기에 나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선생님과 나는 그 이후엔 늘 그렇듯 주윤이가 잘 해온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득 나누었다. 우리의 대화엔 칭찬과 웃음과 감사함이 가득했고, 그 사이 내 마음과 어깨는 웅장해져 갔다.      


    

  “His behavior this month has been a bit concerning.”

로 시작한 메시지를 한 줄 내려 읽을 때마다 마음이 두근거렸다. 선생님께 빌려 쓴 지우개를 훼손시킨 점에서 자신의 행동이 타인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점. 수업시간에 연필을 쥐지 않는 왼손을 꼬물꼬물 움직이는 모습에서 산만해 보이는 점. 그런 주윤이의 행동에 교사의 주의가 주어지는데 이것이 수업 흐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점. 이렇게 세 모습이 그것이었다. 한 줄 내려갈 때마다 놀란 가슴을 달래기가 어려웠다. 마치 평화롭게 운전하던 골목길에서 주정차된 차들이 갑자기 툭툭 튀어나오는 듯했다. 물론 언제나 긍정적이고 쾌활한 에너지가 돋보인다는 코멘트는 이미 휘발된 지 오래다. 내 마음속엔 우려행동만 묵직하게 자리 잡았다.          



  불쑥 튀어나온 진심.

  ‘뭘 안다고. 2학년은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가진 게 정상 발달이야.’

  ‘2학년이 한 시간 수업을 하는 데 계속 집중하는 게 가능해?’

  ‘피드백이 편향적인 게, 한 달 동안 향상된 점은 구체적인 기술이 없고, 우려 행동은 구체적이지?’

  ‘주윤이를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거 아니야? 그런 선생님에게 배우는 데 주윤이 정서에 좋을까?’  



  나는 최대한 마음을 눌러가며 회신 메시지를 적었다. 집에서 지도할 테니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이 또래에 비해 큰 문제인지, 그리고 3월 한 달 동안 성장한 부분에 대한 코멘트는 없는데 그 부분은 무엇인지 묻는 내용이었다.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이성적인 엄마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화가 나지 않은 척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는 도중, 또 불쑥 하나의 생각이 튀어 올랐다.


  ‘2학년인 지금 고쳐야 할 행동을 알려주니 좋은 거 아닌가?’         



  나는 칭찬의 나라에 살고 있다.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 늘 잘한다고 말씀하셨다. 학업에서도 어려움이 없을 것이고 고운 말을 참 잘 쓰며 배려가 많은 모습이 돋보인다고 하셨다. 내가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 먼저 말씀을 드리면 상처에 보드라운 연고를 발라주시듯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하셨고, 마지막 마무리로 밴드를 붙이듯 또 다른 칭찬의 말씀을 해주셨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 카페엔 학기 말이 되면 학교 통지표에 선생님이 써주신 멘트들이 올라온다. 다 무엇을 잘하고, 어떤 태도가 뛰어나고, 돋보인다. 이 정도면 우리 어린이들은 모두 위인전 속의 인물이다. 이런 어린이들이 가득한 교실에 사소한 다툼은 물론이거니와 학교폭력은 언감생심 어이쿠야! 하고 손사래 칠 일이다.      



  정신이 빠짝 차려졌다. 나도 알고 있다. 집에서 숙제를 할 때, 오른손잡이인 주윤이는 왼손으로 책 모서리를 접었다 펴거나 지우개를 만지작거리거나 심지어 큐브를 쥐고 있을 때도 있다. 이 행동은 주의력을 흐트러트리는 행동이 분명해서 나도 여러 번 주의를 주었고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생각해 보니 유치원 때도 학습태도를 중요하게 여기던 어떤 선생님에게도 이런 행동으로 주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또 지우개에 연필 심을 꽂아 구멍을 내기도 하는데, 아마 선생님께 빌린 지우개에도 그런 행동을 한 게 틀림없다. 남의 물건은 소중히 다루고, 그대로 돌려주는 건 상식이 맞다. 수업 중간에 이런 행동은 수업 흐름을 순간 정지시키는 일도 맞다. 선생님의 마지막 멘트도 그랬다. 사소한 행동이지만 이 행동들이 고쳐져서 주윤이의 학습과 전반적 성장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 하셨다.



  나도 알고 있었다. 다만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합리화했던 것뿐! 나는 주윤이가 아홉 살이라는 생각에 아주 느긋했다. 주윤이가 언제까지 어릴 텐가. 내가 진정 바라는 주윤이는 상황에 적절한 행동을 갖추어 그의 세계에서 타인들과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이 코멘트는 중요한 시그널이 맞고, 나는 잡아야 한다.



  선생님께 드리던 회신을 모두 지우고 다시 썼다. 세심히 지켜봐 주신 점, 그리고 저학년인 이때 알려주셔서 빨리 고쳐나갈 수 있게 해 주신 점에 감사드렸다. 무엇보다 아이에 대한 판단의 말에 구체적인 행동을 읽어주셔서 이해가 더 잘 되었다는 점을 더했다. 그리고 혹시나 주변에 주는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어서 시그널을 주시는 건데 모르고 계속 보내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에 그런 상황이면 가정학습을 할 테니 꼭 말씀해 달라고 다시 부탁드렸다.



  칭찬의 나라는 아름답다. 대화에는 감탄과 웃음, 멋쩍은 감사로 가득하다. 칭찬들이 쌓이면 그것은 확실한 사실이 된다. 칭찬할 거리를 많이 나열하는 사람은 애정과 관심이 많고 밝은 눈을 가진 좋은 사람이 된다. 이런 나라에서 고쳐야 할 점을 자세히 말하는 사람은 애정과 배려가 없어 남에게 상처를 주는 부정적인 사람이다. 칭찬의 나라에서는 칭찬을 해야 한다. 모두의 편안한 안녕을 위해서.




  “주윤아, 선생님은 주윤이가 오른손으로는 연필을 잘 쥐고, 왼손은 책을 누르면서 쓰기에 집중하는 게 바른 태도라고 생각하신대. 주윤이 왼손은 수업시간에 어때? “



  오늘 그 칭찬을 조금 걷어보았다. 다 걷기에는 아직 용기가 부족하다. 혼자 있는 집에서는 아무렇지 않았던 태도가 교실이라는 상황에는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칭찬을 걷으니 아이가 더 선명하게 보인다.



  약점은 내가 알고, 내가 쥐고 있어야 한다. 약점 앞에 흐린 눈을 하거나, 감추려 하는 건 비겁하다. 무엇보다 그 이상의 힘을 갖출 수 없다. 내 약점도 잘 쓰면 유머도 되고 인간적인 면도 되는데 이런 쓸모 있는 약점을 감출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주윤이의 모든 면이 주윤이의 힘이 되기 위해 선명한 눈으로 주윤이를 본다. 아무리 해도 탈착 되지 못하는 엄마의 애정렌즈는 오늘도 주윤이를 핑크빛으로 볼 수밖에 없지만, 선생님의 코멘트 덕분에 노력해 본다. 그렇게 칭찬의 나라의 관성에서 내쪽으로 살짝 추를 기울여본다.

  


  그 기울어진 마음에 한 가지 물음이 남는다. 칭찬의 나라에서 나의 약점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과연 누가 어떻게 말해주어야 내가 더 나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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